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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성의 삶은 어떠했을까
연극 <열혈녀자 빙허각>의 재해석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조이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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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신씨. 그는 자신이 직접 호를 지어 붙일 정도로 자아가 강한 여성이었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신사임당>이란 이름으로 접할 수 있었던 정보들은 한결같이 현모양처로서의 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사임당은 아마도 현명한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원도 강릉의 오죽헌에 있는 사임당의 서체와 그림들을 보고 나면, 그를 더 이상 현모양처라 불러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빙허각 이씨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서 사임당 신씨를 떠올렸습니다. 빙허각이 사임당에 비해 훨씬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에겐 율곡과 같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편 본명은 알려지지도 않은 그의 이름이 역사 속에 아주 묻혀버리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시동생이 유명한 실학자 서유구였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임원경제지>를 저술한 서유구가 어린 시절 형수로부터 학문을 전수 받은 것으로 전해지니까요.

그렇게 보면 허난설헌도 동생 허균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오늘날 작품 한 점이라도 전해졌을까 의구심이 생기지요. 이것이 지난 시절 천부적 재능을 지녔으며 값진 문화유산을 남긴 여성들의 자취를 찾는 과정이라는 것은 비극적인 일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남성들의 인생에서 여성들은 보조자이자 들러리일 뿐이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주위 남성들의 명성이나 성품에 의해 존재 자체가 좌지우지됩니다. 실제로 역사 속 여성들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고, 후대의 사람들 역시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의 존재를 논하고 평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속 여성들의 흔적을 찾아 조합해보고, 당시의 시대적 토대 위에서 실제 그 여성의 삶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보고, 남겨진 자료를 새롭게 해석하여 기록하고 전달하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과제입니다. 지난 주말 안산예술의전당의 한 극장에서 보았던 <열혈녀자 빙허각>(제작/기획ㆍ명랑씨어터 수박)은 젊은 여성연극인들이 빙허각 이씨의 삶을 역사 속에서 건져내 와 새롭게 조명한 작품이었습니다.

빙허각 이씨는 당시 여성들의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총체적으로 담아 정리, 기록한 <규합총서>의 저자입니다. 저술방식은 해당 정보들의 출처가 무엇인지 밝히고, 그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으며, 실제 이 정보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읽히도록 하기 위해 ‘언문’으로 기록했으니 당대 새로운 학문이었던 실학의 의의를 제대로 살린 집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당극 형식으로 진행된 연극은 극히 일부만이 남아 있는 <규합총서>와 빙허각 이씨를 언급한 사료들을 토대로, 실존인물인 빙허각의 성격과 일생을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열혈녀자 빙허각>은 그의 결혼생활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학문적 동지이자 친구였던 남편 서유본과의 관계를 부각시킨 이유를 주목해볼 만합니다. 빙허각 이씨가 남편이 죽고 나서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에 이르렀던, 어찌 보면 “열녀문”을 세울만한 행적을 보였기 때문이지요. 연극은 빙허각이 ‘열녀’로 기억되어선 안 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열혈녀자’라는 칭호를 부여합니다.

빙허각 이씨는 <규합총서>를 통해 술과 음식, 바느질과 길쌈, 병 다스리기 등에 관련한 지식을 기록하던 중에 “열녀”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밝히고 있습니다. 효부, 열부만 열녀가 아니라 지식이나 충의, 예술적 재능, 학문적 성취를 이룬 여성, 여장부들도 열녀라고 말입니다. 이 짧은 글귀를 통해 빙허각 이씨가 자신의 삶과 남존여비의 사회적 윤리 속에서 무엇을 고민했으며, 다른 여성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어했던가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희곡을 쓰고 연출을 한 추민주씨를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남편을 따라 죽은 빙허각의 삶에 대해 혹자는 “한계”라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하더군요. 연극에서는 낮은 벼슬자리도 지키지 못한 남편이 결국 ‘세상의 명예’라는 헛된 꿈을 버리고 아내의 가치관과 학문관을 좇아 시골에서 함께 실학을 연구하고 실천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남편과 함께 학문을 하는 것을 삶의 의미로 삼았던 빙허각은 그 의미가 사라지자 고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빙허각 이씨를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은 그를 서유구나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의 실학자 명단에 나란히 올려놓는 것 이상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날 스스로 지어 붙인 이름 빙허각(憑虛閣: 텅 빈 문설주에 기대다)의 뜻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여성의 몸이라는 제약으로 인해 과거시험을 보거나 권력을 얻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당시 학문을 하는 남성들보다 한층 성숙한 삶의 철학을 일찍이 깨우쳤습니다.

권력을 좇는 이들은 실제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학문에 뜻을 두지 않거니와, 여성들의 일상에는 관심조차 없으며, ‘귀한’ 문자인 한문을 두고 누구나 알기 쉬운 언문으로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도, 남편에게도, 아들에게도 기대지 않고 텅 빈 문설주에 기대어 스스로 깨우치고 다른 여성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에 열정을 쏟았던 빙허각의 삶은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철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규합총서>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시골살림의 즐거움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빙허각 이씨의 실제 삶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호기심 많고 자존심 강하고 고집이 셌으며 학문을 사랑했던 그가 세상의 권력에 기대지 않았을 때 삶이 더욱 가치 있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현자였으리라는 즐거운 추측을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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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0/18 [04:06]  최종편집: ⓒ 일다
 
girl 05/10/18 [10:18] 수정 삭제  
  그런 멋진 여성에 대해서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봉이 05/10/18 [12:46] 수정 삭제  
  열혈녀자 빙허각이라는 흥미로운 연극이었는데, 그걸 보니까 규합총서의 내용을 찾아읽고 싶어졌지요. 열녀에 대한 견해는 당시로선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로서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펼치지 못하거나 남기지 못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되네요. 현자에 대한 님의 해석에도 깊은 동의를.
송충이 05/10/19 [02:26] 수정 삭제  
  단숨에 읽었습니다.
역사 속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거든요.
빙허각 이씨에 대한 얘기도 들은 적이 있지만, 실학자였다는 것밖에 다른 얘긴..
그녀가 하늘에서 본다면 이 글을 보고 가슴 뿌듯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사임당도 현모양처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수박 05/10/19 [02:36] 수정 삭제  
  세상의 권력에 기대는 대신, 텅빈 문설주에 기대어서도 사람들을 이롭게 한 빙허각..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아름답군요. 버려진 진흙을 파내어 훌륭한 도자기를 굽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편집장 메일'을 쓰시는 여울님의 모습도 겹쳐지네요. *^^*


해리 05/10/19 [12:59] 수정 삭제  
 
역사 속의 여성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고인이 된 당사자보다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사임당을 현모양처로, 빙허각을 열녀로 기억하는 사회는 남존여비의 조선 질서를 현재에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편집장께서 재해석해서 보는 빙허각의 삶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군요. 사임당의 서체와 그림들이 있다는 오죽헌에도 다녀와보고 싶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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