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폭력에 관한 통계를 보면, 아내폭력을 겪는 여성의 80%가 결혼한 지 1년 이내에 첫 번째 폭력을 겪고, 스스로를 ‘매맞는’ 아내라고 인식하고 상담을 요청하는 시기는 결혼 10년 내외인 것으로 나타난다. 즉 시간 상으로 약 9~10년의 간격이 있다. 그만큼 아내들은 남편의 초기 가해를 ‘아내폭력’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며, 10년이나 지난 후 이미 폭력관계가 습관처럼 굳어진 뒤에야 땅을 치게 된다.
‘매맞는 몸’으로 아내폭력 설명해선 안돼 그것은 아내들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아내의 일상생활과 ‘매맞는 아내’의 일상생활을 분리시키고 있는 아내폭력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 때문일 수 있다. ‘멍든 몸’과 같은 대표적인 아내폭력 이미지들은 아내들로 하여금 ‘내 몸은 저 정도로 심각하게 멍들지 않았다’, ‘나는 저 여자처럼 자주 맞지 않는다’, ‘내 남편은 알코올 중독은커녕 멀쩡한 회사원이다’, 이런 식으로 매맞는 아내와 자신이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내폭력’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전적으로 남편의 가해 행위에 의존해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막상 현실에서 매맞는 아내의 삶과 매맞지 않는 아내의 삶은 그렇게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실제로 만나 본 매맞는 아내들은 자신의 피해에 대해서 ‘맞아서 아프다’거나, ‘시퍼렇게 멍이 들었어요’, ‘어디가 부러졌어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답변은 구체적인 가해의 정도나 빈도 등을 질문할 때 나오는 것일 뿐, 이것이 아내가 말하고자 하는 고통의 전부는 아니었다. “새벽에는 우유배달하고 낮에는 건축사무실에 나가고 집에 와서는 주부가 해야 되는 거, 밥하고 빨래하고, 애들 숙제 봐주고 그랬어요.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하니까 허리가 아프고 그러잖아요. (그럼요, 새벽부터 저녁까지 힘들죠) 그러면 새벽에는 되게 아파요. 새벽에 아파서 아프다고 그러면 아무 관심이 없어요. 병원 가자는 말도 안하고. 그냥 그래요. 몸조리 못한 게 30대가 되니까 나타나더라구요. 그때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프더라구요. 근데 개인적으로 나는 억울하잖아요. 남편은 저그 엄마밖에 모르고 나는 어쩌거나 말거나. 그 담에 아플 때도요 자기 엄마 정기 검진이다 뭐다 생각은 다해요. 나는 병원에 (데려)갈 생각도 안 하더라고. 그래서 내 혼자 병원 가고 혼자 다하고 그러죠. 뭐. 아무리 아파도. 목 디스크 걸렸을 때도 MRA혼자 다 찍고. 남편은 매형이 술병이 났는데도 휴가 내고 가서 병원에 모시고 가는 사람이에요. 자기 사촌 누구가 아프면 휴가 내서 달려가고 그래요. 근데 아이가 아프거나 아내가 아프면 거들떠도 안보는 거예요. 그게 10년이 쌓인 거죠.” (승리, 자녀 2명, 공무원 남편, 34세 취업주부) 취업 주부가 밥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병원에 혼자 가고, 남편이 양육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아내폭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승리씨는 남편이 때렸다거나 의자로 내리쳤다거나 칼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거나 하는 말들로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남편의 가해행위로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법정에선 필요하겠지만, 승리씨에게 그런 행위들은 피해의 일부분일 뿐이다. 아내는 남편에 의해 행해진 몇 번의 물리적인 가해(구타)로 우울증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공유하는 일상의 곳곳에서 마음의 병을 쌓아간다. 실재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주부 우울증’과, 특수한 경험인 것처럼 알려진 ‘매맞는 아내의 우울증’은 그 처음과 끝이 온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내의 우울증은 일상적으로 이어져온 남편의 가해행위들-아내 인격에 대한 사소화, 무관심, 양육에 대한 일관된 무관심과 무책임, 아내 무시-을 드러낼 수 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아내의 피해경험은 아내의 일상생활과 떨어져있지 않으며, 아내폭력을 특수한 이미지로 만들어버릴 때 많은 아내들이 피해경험은 묻혀버리게 된다. 피해와 가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에 주목해야 또 한 가지 ‘아내폭력’을 바라보는 기존 시각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내를 늘 ‘당하는’ 존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시각으로만 아내폭력 문제를 바라보면, 피해를 겪는 아내들은 어떻게 ‘해줘야’ 하는 대상일 뿐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 만나본 ‘매맞는 아내’들은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데 있어서 피해의 경험이 저항의 경험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아내는 일상의 곳곳에서 ‘아내폭력’을 경험하는데, 그 과정에선 일방적인 피해경험이 아니라 피해와 가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아내가 말하는 ‘아내폭력’은 남편의 일방적인 구타라고만 설명할 수 없으며, 남편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피해를 경험하며 각자의 방식에 따라 남편과의 ‘폭력관계’를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하고 ‘폭력관계’를 끊어내는데 힘을 다하기도 한다. “그걸 아예 없었던 것처럼 내 스스로 그렇게 하고싶은 거지. 나도 그걸 아니까 나는 울고싶지 않고. 울면은 내 자신이 비참할 거 같애. 내가 아니까. 내가 본인은 본인 성격을 다 알잖아. 본인 스스로 내 혼자 컨트롤 시킬려고 나름대로 조절을 하는데 그게 안될 때도 있잖아. 그럴 때는 혼자 막 머리 싸매고 머리 박고 싶은데. 그럴 때는 진짜 계속 잠을 자는 거야.” (지현) “큰 걸 봤을 때는 폭력이 큰 문제는 아닌데… 내가 진짜로… 애정이 전혀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애정이 없으니까 이것조차도 나한테 무의미하다는 거지. 그래, 니가 때릴라면 때려라, 나는 내 나름대로의 내 방식대로 살겠다, 그런 게 점점점 커진다니까.” (정은) ‘폭력관계’는 남편의 상습적인 가해가 일어나는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상습적인 가해가 일어나는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아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광범위한 관계 변화의 차이를 가져온다. 지현씨와 정은씨는 자신의 피해경험을 ‘아예 없었던 것처럼’ 망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즉 남편의 일상적인 가해에 대해 저항하기 보다, 남편 개인의 성격 문제로 축소하거나 현재 남편과의 관계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폭력관계’가 지속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다. 지현씨와 정은씨의 피해는 멈추지 않고 지속되고 있었다. 흔히 ‘아내폭력’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이혼이나 별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편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해결책은 아니다. 남편-아이 아버지라는 울타리가 필요한 아내들은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게 된다. 지금까지 만난 ‘매맞는 아내들’ 중 이혼이나 별거를 한 네 사람 중에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남편에게 돌아갔고 여전히 폭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부부간 성별권력관계에 저항하는 아내들 반면, 남편의 가해를 자신에 대한 ‘권력’으로 인식하고 저항하는 아내들도 있다. “말도 안 되죠. 그거는(화나는 건) 그 쪽 문제지 그걸 내가 왜 받아줘야 되는 거예요. 하하. 그리고 폭력이라는 것은 있잖아요. 자기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거는 말도 안 되는 게 자기가 그런다고 해서 대통령한테 그렇게 하겠어요? 대통령 앞에 있다고? 안 그러잖아요. 이거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봤을 때 권력적으로 약자고 만만하니까 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보다 더 강한 사람인 걸 보여주면 되는 거죠.” (해리) “내가 “야”라는 말을 쓰지 마라, 그랬더니 자기는 “야”라는 말이 왜 나쁜지 이해를 못해요. 왜 나쁘냐 야가, 니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그런 거다, 그럼 나는 왜 니보고 야라는 말을 못하냐, 니가 나보다 어리지 않냐. 부부가 동등첸데 내가 니보고 야라 그러면 좋겠냐 난 굉장히 듣기 싫다, 듣기 기분 나쁘다. 사람을 무시하고 막 대하는 거 같다. (중략) 소리지른다 그러면, 기분이 나쁘다든가 그 얘기를 하면 자존심 상해서 그거를, “그래 내가 문제가 있다”라고 말 안했어요.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애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을지 모르지만 입밖으로 그거를 인정을 안 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인정은 하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바뀌었더라구요. 인정을 하고 나면 고치기 쉬우니까 더.” (지영) 해리씨와 지영씨는 ‘폭력관계’가 남편의 아내에 대한 가부장적 성별 권력관계의 반영이라는 점과, 자신들이 남편에 비해 ‘낮은 지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두 사람은 남편과의 관계에 저항하면서 점차 부부 간 상하권력관계를 변화시켜나가고 있다. 그에 따라 이들이 피해를 경험하는 방식도 두려움보다는 당당함과 용기로 변화하고 있다. 지현씨와 정은씨, 해리씨와 지영씨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남편의 가해를 ‘성별권력관계’라고 파악하느냐 그렇지 않고 묵인하느냐에 있다. 일상적인 남편의 권력행사를 단순히 무시하거나 별 것 아닌 일로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무시해도 된다는 가부장적 의식에 적극적으로 맞설 때 그때서야 부부 간 ‘폭력관계’는 변화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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