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지역에 뿌리내리다

민우회 5개 지부 사례를 중심으로

박희정 | 기사입력 2005/12/26 [23:06]

여성주의, 지역에 뿌리내리다

민우회 5개 지부 사례를 중심으로

박희정 | 입력 : 2005/12/26 [23:06]
“보수적인 춘천 지역 분위기 속에서 민우여성학교를 통해 지역 여성들을 만났다. 부모교육, 환경교육,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나갔다.” (춘천여성민우회 손영옥 사무국장)

“민우회가 (활동을) 시작하면 ‘진주시에서 처음 하는 활동’이 될 정도로 지역 여성들의 활동이 미흡했었다. 창립 초기엔 외부 여성들 중심이었지만, 점차 지역 여성 회원들이 증가했으며 이는 대중적 지지의 결과라고 본다.” (진주여성민우회 서은애 대표)

보수적인 지역사회에서 ‘목소리’ 내

지난 20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민우회 지역자치 활동을 통해 본 지방자치 현재와 미래> 토론회에서 춘천, 진주, 고양, 서울 남서, 서울동북 등 한국여성민우회의 다섯 지부가 지역운동 사례들을 발표하며 “여성주의와 지역자치”가 어떻게 만나왔는지 과정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민우회는 2006년 지방자치 선거를 앞 둔 상황에서 “민우회의 지역운동 사례들을 통해서 지방자치의 발전과 한계점, 그리고 대안을 만들어보고자 한다”는 의도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여성들의 지역자치활동이 회원들과 지역주민, 그리고 지방정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례 발표에 따르면 춘천민우회는 “여성정책과 예산을 분석해서 대안을 제시하는 등 ‘의정모니터단’ 활동으로 지방정부를 견제해 왔다.” 이러한 활동은 그간 정책에서 소외되어 왔던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평가할 만 하다. 손영옥 사무국장은 “앞으로 지역자치 활동의 대상을 넓힐 것”이라며, “단체가 ‘대변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마을, 프로그램 단위로 사람들을 모으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주민우회의 경우 ‘여성축구단’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대중적 사업을 통해 주민참여를 이끌어낸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은애 대표는 여성정책과 예산분석 사업에 대해 “(민우회) 본부에서 일괄한 사업 속에 함께 한 것은 아쉬웠다”며, “여성발전조례 제정운동과 여성발전기금 조성활동이 이루어진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이러한 운동을 통해 지자체에 ‘성인지적 여성정책’의 화두를 던졌다는 것이다.

의회와의 싸움에서 시작해 시의원 배출

한편 고양 지역의 여성들의 활동은 “의회와의 싸움으로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양민우회 김인숙 지역자치위원장은 “쓰레기 분리수거 활동부터 시작했는데 5백여 명의 지역 주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서 자료를 만들어 가져갔더니 관련공무원들이 깜짝 놀라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의회를) 방청하면서 시의 살림살이를 알게 되고, 1998년 시의원 후보를 내면서 그 내용을 피켓으로 만들어서 퇴근길에 서 있었다. 시민들이 ‘몰랐던 일’이라며 호응했고, 그 결과로 후보 2명 중에 한 명은 전국 최다득표, 다른 한 명은 지역유지를 두 배의 표 차이로 제치며 당선됐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고양민우회는 러브호텔 난립 저지운동, 예산감시운동, 지역네트워크 과정을 통해 회원이 1천7백여 명으로 증가했다. 김인숙씨는 “지역운동을 지역주민들이 평가한 것”이라며 “지역문제는 공무원도, 의회도 아닌 우리가 해결할 일이라는 값진 교훈을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앞으로 “보다 많은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고, 지역과제를 능동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녹색가게, 생협 등을 통해 ‘대중화’ 시도

서울남서민우회의 경우는 지역주민들 중에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진 이가 많다는 특성을 살려 ‘녹색가게 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김동엽 대표는 이 과정에서 “지역 여성네트워크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고 말했다. “성격이 다른 2개 단체와 함께 해서 어려움이 많았으나 그 과정에서 연대와 지속이 가져오는 장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또 “지역의 특성과 주민욕구를 반영하여 주민참여를 끌어낸 난개발 저지 활동,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 생활정치 참여 활성화 등이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했다”며, “이를 토대로 지방정부의 제도변화를 가져오게 한 점”을 큰 성과로 평가했다.

한편 민우회 첫 번째 지부인 서울동북민우회는 ‘생협 활동’을 근간으로 활동을 꾸려왔다. 김인숙 대표는 “여성운동 대중화를 위한 방법으로 설립했고, 지역여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통해 접근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역에서 여성주의를 확산시키는 핵심은 “여성, 개인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라며, “공동체 이념과 여성주의 이념, 그리고 생활정치 이념을 실현한다는 지향점을 회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도 ‘변화된 개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북민우회는 3회에 걸쳐 배출한 기초, 광역의회 여성의원과 ‘바른 의정을 위한 여성모임’ 등 여성의 정치참여 활동을 소개했다. 동북민우회 측은 “이러한 활동을 여성단체의 이슈를 의회 정책에 반영했다고 자신하긴 어려우나, 여성이 지역정치에 주인이어야 함을 지역민에 설파하는 역할은 한 것”으로 평가했다. 김인숙씨는 “이제 배출한 여성의원들에 대해 의정평가를 할 시점”이라며 “여성주의적 측면에서 의정활동에 대해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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