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KTX여승무원들이 다시 서울역 농성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진행한 농성이 2006년 재계약을 선별해서 맺겠다는 문제 때문이었다면, 이번 농성은 철도유통이 KTX여승무원 위탁업무를 철도공사에 반납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승무원들은 이 기회에 철도공사에서 직접 KTX여승무원 운영을 맡으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 때와 지금 이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불씨는 다를지 모르지만, 이유는 한 가지다. KTX여승무원들을 철도공사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것이다.
“철도공사 정규직으로 고용하라” 요구 KTX여승무원들이 싸움을 시작한 때는 지난 해 9월, KTX가 운행을 시작한 지 2년 반이 되던 때였다. 시발점이 된 것은 2년 반 동안의 업무 과중이었다. 부족한 인원으로 무리하게 승무 운영을 하다 보니 휴일도 없이 주 7일을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보건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여승무원들이 열차 안에서 하는 업무는 출발 전 객차 점검, 영접 및 환송 인사, 특실 깨우미 서비스, 방송기기 및 영상 수신장치 점검, 어린이가 혼자 여행하는 경우 내리는 역에서 안전하게 인계, 열차 안 방송, 특실 음료 서비스, 정차역 및 종착역 승강문 개폐 및 발판 확인, 장애인 승하차 도우미, 노약자 보살피기, 유실물 인계, 환자 구호, 순회 서비스, 테러 발생에 대비한 의심물품 점검, 차내 편의시설 이용 안내 등이다. 열차 운행에 필요한 거의 모든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 18량인 이 열차에서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는 여승무원 인원은 3명인데, 이 인원마저도 인력 부족을 이유로 2명으로 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인원부족 문제는 말 그대로 싸움의 시발점이었을 뿐이다. 지나친 노동강도와 낮은 임금, 거기에 임금 체불과 언어폭력 등의 인권침해, 승무원 운영 경험이 전혀 없는 데서 온 비합리적인 업무 분장 등 철도유통(구 홍익회)이 승무원 업무를 위탁 받아 운영하는 과정에서 쌓이고 쌓인 문제점들이 터져 나오면서 이들의 투쟁은 시작된 것이다. 여승무원들은 처음에는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전단지를 배포하고 리본을 다는 등 소극적 방식이나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철도공사에서 여승무원을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이 핵심 요구사항이었다. 사측에선 노사협의 신청을 무조건 거부하고 일방적인 지시만 하거나, 조합원 상대로 꼬투리를 잡아 경위서나 해명서를 요구하는 등 구체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또 직위 해제, 승무 정지, 해고 등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승무원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철도유통 노조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철도유통 노조는 여승무원들이 입사하자 노조 형태를 유니온샵으로 바꿔 여승무원들을 전부 가입시켜놓고는, 노조 활동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측 편에 서서 이들의 행보에 발목을 잡았다. 여승무원들은 지난 해 11월 말 투표를 거쳐 철도유통 노조에서 탈퇴하고 전원 철도공사 노조로 재가입 했다. 철도공사 노조가 이들의 투쟁에 연대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승무원들의 투쟁이 계속되자 지난 해 12월, 사측은 2006년 재계약을 앞두고 투쟁에 적극 가담한 승무원들을 재계약 대상에서 제외시키려 했다. 여승무원들은 이에 반대하며 서울역에서 농성에 들어갔고, 철도유통 쪽에서는 올해 1월 KTX여승무원 위탁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준공무원 대우해준다더니 KTX여승무원들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제공한 곳은 바로 철도공사다. 철도공사는 KTX를 개통하면서 유일하게 여승무원만을 철도유통에 위탁해서 파견직으로 채용했다. KTX여승무원이 철도공사 직원이 아닌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철도유통 소속 계약 파견직이라는 사실을 아는 승객은 거의 없다. 현재 철도공사에 파견직은 KTX여승무원뿐이다. KTX를 운행할 때 한 차에 타게 되는 승무원은 승무원 팀장 1명과 여승무원 3명(지금은 2명)인데, 팀장은 남자로 철도공사 소속이다. 이렇게 남성승무원은 철도공사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유독 여승무원만 파견직으로 채용한 것은 명백히 고용에 있어서의 성차별이다. 철도공사가 이런 식으로 고용에 있어 부당한 성차별을 행한 경우는 KTX여승무원이 처음은 아니다. 파견직은 아니지만 새마을호 여승무원 또한 철도공사에 계약직으로 고용되어 있었는데, 2004년 3월 전체 88명의 여승무원 가운데 31명을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했다. 이에 새마을호 여승무원들도 정규직화 투쟁을 벌였고, 2004년 12월 계약을 1년 연장하는 선에서 일단 투쟁을 마무리했다. 공공기관이라 할 수 있는 철도공사가 여성이 집중된 직종을 비정규직화하면서 성차별 고용을 하는 것은 공사의 공공성을 부정하는 행위다. 비정규직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하는 것도 문제인데, 이것이 여성차별 고용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KTX여승무원들을 보고 ‘너 계약직인 거 모르고 들어왔냐, 소속이 홍익회(철도유통)인 거 모르고 들어왔냐’ 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계약직이 뭔지, 파견직이 어떤 노동 형태인지에 대한 지식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철도유통 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은 “대부분 여승무원들이 철도유통이나 철도공사나 같은 곳인 줄 알고, 비정규직이라도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철도유통 또한 홍보하기를, 무늬만 계약직이지 준공무원 대우해주겠다, 정년 보장된다, 항공사 승무원 수준에 버금가게 대우해줘서 프라이드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는데 정작 입사하고 보니 약속은 온데간데 없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보도 주지 않고 허위 광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직인지를 알고 들어왔는지 모르고 들어왔는지를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비정규직이 겪고 있는 이런 문제들은 비단 KTX여승무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비정규직 여성들이 노동 형태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정규직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열악한 근무조건을 감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자본가들은 악용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어느 정도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공사가 여성노동 비정규직화 합세 안될 일 철도유통이 KTX여승무원 위탁업무를 포기한 지금, 철도공사는 정원에 묶여 있어 더 이상 인력 채용을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여승무원 위탁업무를 다른 자회사로 넘기거나, 새로운 자회사를 만들어 위탁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KTX여승무원들의 업무가 한시적인 것도 아니고 KTX 운행에서 비중이 적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사에서 직접 운영을 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인원을 지금이라도 정원에 포함시켜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철도공사는 KTX여승무원들이 자기네 소속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들이 투쟁하는 동안 협상의 통로를 열어준 적이 없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철도공사와의 통로를 찾지 못해 KTX여승무원들의 투쟁이 더욱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KTX여승무원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이번 기회에 철도공사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른 자회사로 편입되어봐야 지금과 상황이 전혀 달라질 리 없고,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자회사가 승무 운영을 철도유통보다 더 잘하라는 보장 또한 없다. 그렇다면 이들의 싸움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철도공사는 KTX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화 요구를 수용하고 공공기관으로서 자신들의 공공성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여승무원들의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하는 것으로 문제가 회피해선 안 된다. 철도유통 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주목 받는 위치에 있는 KTX여승무원들이 정규직화 투쟁에서 승리한다면, 억울함을 품고 근무하는, 인권유린과 성희롱을 당해도 어디 호소할 데 없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처지를 바꿀 수 있는 물꼬를 틀 수 있을 거다.” 이런 당당함으로, 자신들의 처지만이 아니라 다른 비정규직 여성까지도 끌어안는 마음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투쟁이 꼭 승리의 결실을 맺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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