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저출산대책은 독재의 산물

국가주도 가족계획, 독재의 기억-3

박희정 | 기사입력 2006/02/07 [00:11]

정부 저출산대책은 독재의 산물

국가주도 가족계획, 독재의 기억-3

박희정 | 입력 : 2006/02/07 [00:11]
우리는 아픈 현대사에서 ‘반공’과 ‘경제성장’의 기치아래 군부독재정치가 자행됐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독재’가 남긴 유산이 과거의 것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이며, 국가권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의 문화 속에 스며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밀려, ‘독재’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판단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뿌리깊게 자리하지 못했다.
 
<일다>는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독재’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독재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독재란 과연 무엇이며 현재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개인의 일상을 통해 조명해나갈 계획이다. -편집자 주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

2차 베이비붐 세대의 막차를 탄 1970년대 생으로서 산아제한을 외치는 가족계획 표어는 매우 익숙한 존재였다. 더구나 초등, 중학교 시절은 “둘도 많다”며 “하나만 낳자”고 외치던 가족계획의 절정기였다. 형제, 자매가 많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었던 때였다.

군부독재시절 출산력 통제의 역사

아버지 어머니 세대만 해도 일반적으로 형제, 자매들이 넷 이상은 됐다. 일곱, 여덟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명절 때마다 친가와 외가를 오가며 인사라도 드릴라 치면 촌수와 얼굴과 이름을 매치하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내 또래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두 자녀 혹은 세 자녀 가정의 아이들이다. 한 자녀 가정도 심심치 않게 눈에 뜨인다. ‘1960년 전체 출산율 6.0, 1990년에 1.5’라는 명확한 수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불과 한 세대만에 출산율에 엄청난 가시적 변화가 왔던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출산율의 변화는 사회변화와 인식변화에 따른 개인의 선택도 큰 요인이지만, 출산력 통제를 위한 국가의 개입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유추해 볼 수 있게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가족계획이 국가가 설정한 목표치에 맞추어 개인의 권리, 특히 여성의 몸과 권리에 대한 고려가 없이 시행됐다는 데 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면서 시작됐다는 국가주도 가족계획정책은 경제성장과 산아제한을 연결시켜서 전국 단위로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피임시술과 피임약 보급, 그리고 불임수술을 한 부부에게 주택융자 우선권까지 주어가며 강력하게 진행됐다. 당시 불임수술을 한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위에서부터 내리누르는 방식으로 진행된 출산통제로 말미암아 여성 몸의 건강이나 재생산 권리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아주 미흡했다. (일다 2004년 8월 8일자 기사 참고)

어릴 때 TV를 보다 보면 불임수술이 드라마나 코미디의 소재로 등장하곤 했다. 부부 중 누가 불임수술을 받을 것인가로 고민하는 부부나, 예비군 훈련을 면제 받으려고 정관수술을 하고 오는 남성, 정관수술이나 난관수술이 풀어져 임신하게 된 사례 등이 종종 소재로 사용됐다. 한 드라마에서는 첫 아이를 낳고 불임수술을 한 여성이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고 나서 괴로워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기도 했다. 부모 세대에게 불임수술은 일상적인 행위였다.

교과서에 2자녀 이상 가정 표준화?

그리고 2003년 출산율 1.17이라는 통계청의 발표 이후 저출산 시대에 대한 위기의식이 급속하게 고조되면서 정부는 출산율 증가를 위한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2004년 4월 ‘산아제한’을 주도하던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옛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는 새롭게 ‘출산장려’를 위한 표어를 공모했고,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결혼과 자녀출산,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 등이 산아제한을 외치던 표어들을 대신하고 있다.

또 정부는 올해 소수공제자 추가공제 폐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등 다자녀 가구에 유리한 세제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심지어 교육부는 앞으로 개편될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저출산 문제를 다룬다는 방침을 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가정 모델에서 1자녀 가정은 배제하고 2자녀 이상 가정을 표준화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싱글로 살아가는 사람들, ‘정상가족’ 틀을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서 2자녀 이상 가정모델을 주입시키겠다니 민주주의 사회의 발상은 아닌 것 같다.

저출산이 진정 위기인가도 논란이 있지만, 이러한 가족계획정책이 국민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측면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 문제다. 여성에게만 짐 지워진 양육과 가사노동의 문제, 열악한 여성노동권, 정상가정 틀 안의 복지정책 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는 노력 없이 출산장려표어를 만들고, 출산장려금과 양육보조금을 지급하고, 교과서에 다자녀 가정을 등장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 국가가 애 낳으라고 계획을 내놓으면 국민들이 애를 낳을 거라는 생각, 경제성장이라는 명분 앞에서 여성의 권리는 부차적 문제로 취급하는 것은 개발독재시절의 가족계획 정책의 틀을 답습하고 있다.

사람들의 삶은 변했다. 사람들의 생각도 변했다.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국가 주도의 출산장려정책을 고심하고 있는 2006년 한국사회. 저출산 위기감을 조장하며 ‘논의’와 ‘설득’이 아닌 ‘강제’와 ‘주입’의 과정을 개개인이 행복보다 국가경쟁력을 앞세워 주입하려 하는 현 시도들은 독재정권 시절의 통치철학의 산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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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선 2011/01/26 [10:22] 수정 | 삭제
  • 지하철 광고 같은 데서 아이 여러명 있고 임산부가 배 만지고 있는 그림 보면 역겨워서 토하고 싶은 기분.
  • 파뿌리 2006/02/08 [18:18] 수정 | 삭제
  • 저출산 위기론 좀 그만 조장했으면 좋겠다.
    태어나는 애들만 국민이고 지금 살아가고 노동하는 사람들은 국민도 아닌가.
  • donuts 2006/02/08 [13:14] 수정 | 삭제
  • 근데 국가가 조장하는 경쟁력 논리가 국민 다수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논리가 아닐까요.
    국가주의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느낌 2006/02/07 [18:35] 수정 | 삭제
  • 정부가 기본적으로 아기를 노동력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여성을 아기 낳는 사람, 노동력을 만드는 사람으로 보고 있고 말이지요.

    출산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출산을 선택보다 강요에 가깝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는 것을 보면, 사회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
  • 은숙 2006/02/07 [08:47] 수정 | 삭제
  • 편지 쓸 때 봉투에 많이 붙여봤던 거다.
    근데 한 번도 그게 가족계획 표어인 줄 몰랐네.
    어렸을 때라 그런가?
    국가적으로 표어 만들고 주입하는 건 유치한 일인데,
    출산 장려한다고 저출산 표어부터 만드는 거 보고 좀 놀랐다.
    독재의 산물인가? 하던 대로 하는 거겠지 뭐.
  • choi 2006/02/07 [06:32] 수정 | 삭제
  • 교과서 등장인물 바꾼다는 얘기는 충격적이네요.
    어린 아이들부터 통제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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