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이안소영님은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꿈지모(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 회원입니다. -편집자 주>
2005년 1월 조산원에서 딸을 낳았다. 초산인 여자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임신과 출산과정은 아주 어색하고 낯선 경험이었다. 평소 추구하던 삶처럼 되도록이면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요란 떨지 않고 소박하게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대부분 그대로 행했지만 조금씩 삐걱거리고 불안하기도 했다. 임신기간 동안 가능하면 병원에 가지 않으려 애썼다. 임신사실을 확인하러 간 것까지 합쳐 모두 3번 산부인과에 들렀고, 임신 5개월째를 마지막으로 병원엔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불안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입덧도 하지 않았고 밥도 잘 먹었으며 내 몸엔 별다른 이상증세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를 믿었다. 임신 자체는 병이 아니니까. 다만, 막달에도 태동이 자꾸 배 아래쪽에서 느껴져 혹시 아기가 하늘을 보거나 거꾸로 있는 건 아닌가 걱정되어 근처 보건소에 들러 공짜로 초음파를 찍어 달랬다. 솔직해지기엔 너무 신성한 임신 그런데 병원의 산전 검사에 의지하지 않고도 건강하게 임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과는 달리, 임신한 내 몸을 대하는 주변의 시선은 좀 부담스러웠다. 나는 전혀 계획적이지 않게 ‘얼떨결에’ 임신을 했다. 그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고, 임신한 몸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여러 가지 즐거운 일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 나를 힘들게 했다. 자칭 타칭 ‘에코페미니스트가 지향’인 나는 내 몸으로 들어온 이 자그마한 생명을 경외감과 감사함으로 대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지만 진심으로 기뻐하기 힘들었고, ‘임신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종종 내 임신을 설명하면서 “사실, 계획에 없던 아이긴 하지만” 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뱃속의 아이가 듣는다고 말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말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임신으로 인해 당황하고 있으며 서툴고 어색하며 불안해하고 있는지 공감 받고 위로 받고 싶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어떻게 여성에게 완전무결한 축복이 될 수 있는가? 하지만 나의 이런 불안감과 이해 받고 싶은 욕구는 ‘신성한’ 임신 앞에 감히 발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 몸 속에 아이가 있고, 나와 아이는 둘이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것 같아 불편했다. 게다가 남편은 늘 옆에서 내가 무엇을 먹고, 먹지 않아야 하는지 말해 주었다. 나와 남편은 나름대로 오랜 동안 생태적으로 먹고 살고자 노력해왔다. 다행히도 임신 전에 오랫동안 피워왔던 담배도 끊은 지 몇 년 되었고, 좋아하던 커피도 비타민C가 많은 감잎차로 바꾸고, 인스턴트 식품이나 육식은 거의 먹지 않던 상태였으며, 흰쌀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현미잡곡을 먹고 있었다. 임신한 뒤로는 매일 밤 기체조를 했고, 마사지도 했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가 어느 날 순식간에 ‘완벽하게’ 바뀔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가끔씩 여전히 커피를 마시고 싶었고, 거의 먹지 않던 삼겹살도 임신 중에는 왠지 몇 번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쩌다 한 모금씩 얻어먹는 커피에도 남편은 눈을 흘겼고, 당장의 욕구에 못 이겨 아이를 해할 선택을 서슴지 않는 ‘철없거나 모진 모성’인 것처럼 비난했다. 남편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내 몸이 마치 내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아이의 것이며 내 몸에 들어있는 아이의 건강한 몸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된 것 같아 서운하고 화가 났다. 35년간 온전히 나의 몸이었던 내 몸은 이전까지와는 달리 나의 몸이 아니라, 산부인과 의사가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어떤 여자의 몸이거나, 남편이 생태적으로 소중하게 키워야 할 미래 아이의 몸이었다. 이런 사실에 매우 당황했다. 아이를 위해 조금만 추워도 옷을 걸쳐야 했고, 아이를 위해 내가 천정을 보고 똑바로 누워 자고 싶어도 왼쪽으로 돌아누워 자야 했다. 어디서건 내 몸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확인 받고 싶어지기도 했다. 임신보다 낯선 출산의 경험 아이는 처음부터 망설임 없이 조산원에서 낳기로 했다. 모든 여자와 아이가 같은 속도나 신체리듬을 가진 것이 아니므로, 아이를 낳는 자세나 시간 또한 천양지차일 것이다. 소리 몇 번 지르고 순풍 낳는 여자, 이삼 일 진통하고도 소리소리 지르며 낳는 여자, 출산을 축제처럼 즐겁게 치르고 싶은 여자,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시간으로 지키고 싶은 여자…. 출산과정에서 이렇게 다양한 여자 몸의 개별적 특성과 그 여자가 살아 온 삶의 역사가 존중 받고 배려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 병원은 너무 복잡한 공간과 절차를 가지고 있고, 고비용이 투입되어 있다. 그래서 조산원을 택했다. 출산은 임신보다 좀더 힘들고 낯선 경험이었다. 건강한 여자라면 누구든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몸이고, 아기와 여성의 몸이 알려주는 지혜에 기대어 몸이 가르쳐 주는 대로 집중하면 수월하게 낳을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몸과 소통하는 법을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몸의 목소리를 ‘이성-객관-과학’의 권위로 억누르는 법만 배워온 우리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 또한 그렇게 믿었다. 그 이면에는 여전히 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존재했지만 의연한 척 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나는 꽤 ‘성공적으로’ 아이를 낳았다. 진통이 길긴 했지만, 낳기 한 달 전부터 다닌 출산준비 부부교실에서 배운 대로 ‘히히히후’ 하는 라마즈 호흡법을, 남편이 맞춰주는 박자대로 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 덕에, 병원에서는 사전에 산모에게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절개해버리고 조산원에서도 웬만하면 조금씩 찢어지는 회음부도 손상 없이 깨끗하게 잘 낳았다. 나는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이도 건강했다. 태아와 여성의 권리는 평행선인가 아이를 낳은 지 일년하고도 두 달이 지나가고 있다. 아이를 낳고 몇 달 뒤에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처음 건넨 말은 “(아이를 낳아 기르니까) 너무 좋죠?”였다. 나는 어정쩡하게 “…예~”했다. 1년간 육아휴직하고, 집에서 모든 것을 나에게 의존해야 하는 아이를 돌보느라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인간적인 삶(밥 세끼를 먹고, 가고 싶을 때 화장실 가고,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을 누릴 수 없었던 내게, 출산과 육아가 마냥 기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내게 그럴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고 머뭇거림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틈새 틈새에 기쁨과 즐거움과 당연히 숨어 있었으며 날이 갈수록 배가 된다.) 임신과 출산 과정 내내 나는 임신한 나를 가로지르는 태아중심적 사고와 여성중심적 사고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고 지금도 그렇다. 여성은 아이를 나르는 도구가 아니어야 하며, 어느 순간에도 여성 몸의 욕구와 바램은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생의 한번쯤 누군가(아기)를 위해 도구가 되면 또 어떤가라는 생각을 저버리기도 쉽지 않다. 수단과 목적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일까? 여성이 보장되어야 할 몸의 권리는 내 몸을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내 몸에 행해지는 처치에 대해 알고, 선택하고, 거부할 권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출산과정에서도 내 몸을 내 맘대로 조절하고 싶었고, 그래서 출산 내내 호흡을 ‘틀리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러느라, 이성의 목소리에 잠식된 내 몸의 직관과 지혜와 동물적 감각은 숨죽이고 경직되어, 그렇게 오랜 시간 진통해야 하지 않았을까? 여성의 몸은 온전히 여성 개인의 몸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여성의 몸에 아로새겨진 사회적 욕망과 기대가 너무나 선명하고 많으며, 대부분의 경우 부당하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내내 여기에 저항하고자 했고, 그것 때문에 매 순간 갈등했으며 불편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몸의 권리가 무엇인지 고민스럽다. 몸이 무엇이고, ‘타자-아기-사회’와 내가 어떻게 분리되고 연결되는지 헷갈린다. 생명은 기쁨인 동시에 고통이며, 창조인 동시에 파괴다. 존재의 상호연결성과, 부당하게 사회적 몸이 될 것을 너무나 자주 요구 받는 여성 몸의 권리는 어떻게 조화롭게 함께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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