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녀를 죽인 것은 당신들이다

성추행 국회의원 두둔하는 ‘관대함’

최김희정 | 기사입력 2006/03/06 [21:30]

[기고] 소녀를 죽인 것은 당신들이다

성추행 국회의원 두둔하는 ‘관대함’

최김희정 | 입력 : 2006/03/06 [21:30]
<필자 최김희정님은 서강대 K교수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이며, ‘몸과 마음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일다에 글을 기고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5일 새벽. 잠이 오지 않았다. 최연희 국회의원 성추행 사건 이후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마 나뿐만 아닐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분노, 이후의 시간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가해자를 두둔하고 망치로 폭탄주를 깨트리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할 말을 잃는다. 피해자의 가슴을 만진 것은 손이니, 손을 망치로 두드릴 것이지 왜 애꿎은 술잔을 깨뜨리는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이성을 비난하며 뇌를 망치로 두드릴 것이지, 왜 애꿎은 술잔을 깨뜨리는가?

신경외과의 출신인 H국회의원이 술이 약한 사람이 주량을 훨씬 넘는 술을 마셔 급성알콜중독 증세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두둔한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상처를 헤집어대는 사람들이 있구나. 어쩜 저렇게 똑같을까? 가해자를 두둔하는 시나리오들은. 아마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나처럼 분노하고 있겠지.

나의 가해자인 K교수도 그랬다. 소주 2홉들이 반 병이 평소 주량인데, 그날은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셨고, 감기증세가 있어서 약을 먹은 탓에 취기가 빨리 돌았다고 진술했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실수를 했단다. 같은 사건인데도, 형사소송에서는 소주 반 병이었던 주량이 민사소송에서는 소주 한 병으로 늘려 답변서를 제출했다. 최연희 성추행 사건 이후 국회의원들의 작태를 보면서 그 기억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일련의 보도들을 접하는 피해당사자의 심정은 어떠할까? 자신들이 하는 짓이 어떤 것인지 국회의원들은 알까? 기자들은 알까? 왜 성추행, 성폭력이 엄정히 처벌 받아야 하는 범죄인지를 판단하려면 피해자의 경험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텐데, 국회의원들의 공방만 선정적으로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많은 기사들 속에서 피해자의 심정은 어떤지, 혹여 자신의 진로에 타격을 받게 되지는 않을지 누구 하나 걱정해주는 이 없다. 4년도 훨씬 전 내가 스스로에게 “반드시 다시 일어서야 해.”라고 다짐하며 공론화를 결심했을 때가 떠오른다. 모쪼록 피해자가 재차 피해를 입게 되는 일이 없길 바라며, 그에게 지지를 보내고 싶다.

얼마 전 11살짜리 소녀가 신발가게 아저씨한테 성폭행 당하고 살해당했다. 국회의원들이 가해자에게 전자팔찌를 착용시키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둥 하며 난리를 피웠다. 그리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최연희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여야의원들이 남성들의 술 문화를 옹호하고 급성알콜중독 운운하며 가해자를 옹호한다. 우리 사회에선 성폭력 사건 대응에 대해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 줍고 있다’는 발언을 한 사람이 장관으로 내정된다. 성추행 사실에 대해 추궁 받자 ‘식당주인인줄 알고 만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추행, 성폭력에 대해 관대하다.

피해자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보는가. 노출이 심한 옷, 향기를 뿜어내는 그 요염한 자태에 남성의 취기가 발동하고 성욕이 자극 받아, 건드리고 꺾어도 꽃이니까 아무 말도 없이 따라야 한다. 그러한 남성중심적 문화가 있었기에, 소녀의 가해자가 그 이전에도 성추행으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이다. 소녀 성폭행 살해사건과 최연희 성추행 사건은 별개로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가 성추행에 대해 관대하고, 우리가 그 관대함에 더 강하게 항의하지 못했기에, 소녀는 결국 죽었다. 소녀는 부활하지 못한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또 다른 이들이 살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살아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시간이 어떠한지 돌아봐주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위에 참으로 많은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들이, 이 사회의 약자들이 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을 경험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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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월 2006/03/15 [17:27] 수정 | 삭제
  • 기억 나지 않는다,
    술을 먹었다,
    만약 그랬다면 실수였다,

    피해자와 지원자들의 억장 무너지게 만드는 가해자들의 말들
    그 말들을 믿어주고 용서해주는 사회

    엿같다
    한나라당도 너무 짜증난다
  • eye 2006/03/11 [14:18] 수정 | 삭제
  • 성추행 국회의원, 성추행 국회의원을 두둔하는 국회의원들,
    다 국민이 심판해야 하는데,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또한 문젭니다.
    이번에는 좀 다를까요?
    많은 분노가 모아져서 실체를 드러냈으면 좋겠습니다.
  • 딜레마 2006/03/11 [02:52] 수정 | 삭제
  • 가정에서 그렇고 교육에서 그렇고...사회에서 그게 재발견 혹은 진화되고(변태라는 단어가 어울릴듯)
    성폭력 뿐만 아니라 모든 폭력의 범주에 한국은 관대합니다.
    폭력의 주범이 누구라고 보십니까?!
    콕 찝어 누구라기 보담 전반적으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힘이 있다면 누구를 지배 할 수 있다는 우월성과 당위성이 존재하는 권력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걸 앞장서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죠.
    한국이 마초국가로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명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무엇이 진실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진실이다란 독단이겠죠.
    그나마 이런것이 까발려지고 논해지는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라고 봅니다.
    저질의 유흥문화로 인해 남자들이 여성을 대하는 인식에 편견을 갖는다는 아랫 기사에 심히 공감합니다.
    여자친구나 나의 부인이 아니면 모두 물건취급하는 인식의 싹은 분명 성매매와 같은 저질 유흥문화일겁니다.
    그리고 그걸 관대하게 보는 사회적인 시각을 조성한건 우리의 성교육이 엄청나게 실패했다는 증거인 셈이구요. 그 잘못된 성교육은 가부장제 아래의 인성교육이 일조했다고 보고 공교육은 그걸 방치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겠네요.
    아버지들의 자녀에 대한 무책임에 가까운 대화의 단절...
    오로지 가장으로서의 권위로 남자들이 그 안에서 배우는건 강해져야 한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왜 강해져야 하는는지 그 어떤 이유도!! 남과 달라야 한다는 이유도!! 없이 말이죠.
    남 보다 강해져서 그 위에 군림하면 그걸로 땡...
    마초국가의 현주소입니다.
  • leslie 2006/03/10 [21:11] 수정 | 삭제
  • 동아일보 기자가 고소한다고 하는데 피해자에게 힘을 보태고 싶네요.
  • leslie 2006/03/10 [21:11] 수정 | 삭제
  • 최 의원 지지한다는 사람들은 자식들에게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추행 그거 별 거 아니란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딸에게도 그럴까요?
  • 창고 2006/03/09 [16:20] 수정 | 삭제
  • 이렇게나 관대한 사회가, 성추행 국회의원 편을 드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소녀를 죽였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아동성폭력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죠. 성폭력의 대상 중의 더 취약한 대상일 뿐입니다. 강간도 성추행에서 시작되는 것이고요.
    자신들이 정말 무서운 짓들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할텐데..
  • 미미 2006/03/08 [01:58] 수정 | 삭제
  • 한국 남자들 힘이 없어졌다고 엄살이지만
    제 생각에 한국 사회 문제는 아직도 힘과 권력이 남자들에게 집중된 것입니다.
    그러니 정치하는 아저씨는 성추행해도 괞챦은거고 힘없는 여자애들은 성폭력에 노출되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는거죠. 가부장제에서 성추행쯤은 괞챦은거고 공론화 되기도 힘드니까요. 이런 사람이 버젓이 잘 먹고 잘사는 사회..이대로 좋은겁니까...속이 터집니다.

    추가로 동해시 여성계가 최의원을 두둔한다는 기사
    무슨 여성계인지 이 사모님들 무슨 이해관계에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여성의 이름을 걸고 그러고 살고 싶을지..
    제발 상식이 통하고 도덕이 살아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네요.
  • .. 2006/03/07 [13:08] 수정 | 삭제
  • 더구나 성범죄를 저지른 의원을 사퇴반대하는 시위까지 생기다니


    무섭고 살기 싫은 나라에요.
  • 리아 2006/03/07 [01:06] 수정 | 삭제
  • 애꿎은 술은 왜 걸고 넘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지, 술이 성추행을 합니까?
    성추행 문제만 나오면 술 탓하는 거,
    실제로 경찰조서 꾸밀때 봐주기한다면서요?
    담부터 술 조심해라 하면서 물타기 한다고 하더군요.
    아직도 사표 안내고 있는 거 기가 막힙니다.
  • ring 2006/03/07 [00:17] 수정 | 삭제
  • 대놓고 성추행 두둔하는 국회의원들 제정신 가진 인간들인지 의심스럽다.
    의원들이 그 수준이니 국회가 그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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