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아이들은 출생률에도 포함되지 않는다잖아요? 미혼모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류춘신(29세)씨는 현재 비혼모인권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비혼모로 살아가며 “정상가족이 아니었을 때 받는 온갖 차별”을 다 겪기도 했거니와,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을 보면서 비혼모 인권을 위한 활동이 시급함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는 비혼모들 생계 막막 한국 비혼모들의 수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그가 가입해 있는 한 온라인카페 회원수만 하더라도 4~5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차별문제가 과히 적은 인원이 겪는 문제가 아님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비혼모들의 존재는 철저히 가려져있어, 그 수나 비혼모 가정들이 처한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표면으로는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출산장려정책으로 불임부부의 불임시술 지원사업에 총 6천43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고액의 불임시술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비혼모에 대한 지원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혼모 가정의 경우 사회적 편견뿐 아니라, 여성가장으로서 아이 양육과 임금노동을 동시에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일자리가 있어도 아이 맡길 곳이 없는 경우엔 비혼모 가정은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처하게 돼, 사회적 지원이 없을 땐 생존마저 위협 받는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양육을 원하는 미혼모시설’을 현재 9곳에서 16곳으로 확대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설을 몇 곳 더 늘리는 정도 지원은 현재 양육을 원하는 비혼모들의 수와 이들의 실태, 그리고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대책이다. 혼인제도 바깥의 가족도 인정해야 류춘신씨는 4살 난 딸을 키우고 있다. 현재 직장이 없는 그가 여성가장으로서 받는 혜택은 모.부자가정에 지원하는 월 5만원이 전부다. “액수가 너무 적고, 형식적으로 지원되는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보다 아이가 아플 때 건강보험 혜택 같은 실질적인 혜택을 해주거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 좋을 텐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 수급권 요건으로 따지자면, 그는 저소득층 혹은 실직 여성가장으로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 여성’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류춘신씨는 관공서 서류상으로는 공무원 아버지의 딸로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요건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가 된 후부터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한 푼의 경제적 지원도 받아본 적이 없다. “미혼인 딸이 아이를 낳았다”며 아버지의 냉대로 인해 몇 년째 왕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신분’인 아버지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갈수록 결혼 제도권 밖에 있는 비혼모 중 “양육을 원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고 있고, 그만큼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한 여성단체 실무자는 이번 달에 ‘출산 후 양육을 원하는 비혼모’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시설 입소가 아닌 일반가정에서 출산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지원혜택을 찾아봤더니 ‘없었다’고 한다. “산후도우미제도를 지원하고 있는 지자체의 경우도 결혼제도 안에서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 정도라서 미혼모는 해당사항이 없고, 출산 후에는 모.부자가정 지원 5만원이 전부더라”는 것이다. 출산장려책에서조차 소외시켜 2002년에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205명 미혼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쪽에선 생산활동인구가 없어서 큰일이라고 하고, 한쪽에선 매해 2천명의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는데 그 아이들 중 상당수가 미혼모의 아이들”이라며 양육을 원하는 비혼모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해 저출산 대책에 비혼모 가정을 적극 포함시켜서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가족부 또한 지난해인 2005년 전국 미혼모시설 11개소에 입소한 미혼모 238명을 대상으로 ‘미혼모 현황 및 욕구조사’를 실시한 결과, “출산 후 31.7%의 미혼모가 아이의 양육을 원했고” 입양을 선택한 여성이라 하더라도 “경제적 지원이 이뤄진다면 38%가 아이의 양육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실 조사할 때에 비해 아이 양육을 원하는 비혼모가 훨씬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2002년과 2005년 조사에서 동일하게 비혼모들이 아동 양육을 결정할 때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생계비, 주거비 등 경제적 지원’으로 나타났다. 당시 김홍신 의원은 “미혼모들은 출산 전 프로그램은 많은데 출산 후 양육지원프로그램이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양육을 결정한 미혼모들에게 직업훈련 취업지원, 양육지원금, 양육방법 및 정서적지지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10대 중퇴 미혼모를 위한 학업지속 학업연계 프로그램 지원”도 모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지난 2월 28일 열린우리당 김춘진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미혼모 가정도 우리사회의 또 하나의 가정 형태”라며, “미혼모와 그 자녀가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미혼모 가정을 일정기간 동안 국민기초생활보장 특례가구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미 정치권에서 제시된 방안만이라도 양육을 원하는 비혼모 가정에 긴급하게 지원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결혼 안 하고 아이를? 인권침해 심각 비혼모들의 출산, 출산 후의 아이의 양육, 구직 및 취업 등에 관련된 체계적인 지원만큼이나 시급한 것은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류춘신씨는 “여성가장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라고 하면 사람들은 몸을 함부로 굴린 여성이라는 식의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토로했다. 그 또한 일자리를 구하러 몇 곳을 다녔지만 “미혼모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업주들은 고용을 꺼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류씨는 다소 사회적 편견이 덜한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싶어, 한 단체에서 간사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열악한 사회단체에서는 여성가장으로서 아이를 양육하는 상황을 배려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그곳에서조차 “아이가 있는 너는 힘들다”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그는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 있는 업종을 찾고 있다.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소에서 양재수선반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중이다. 류춘신씨는 자신이 비혼모임을 당당하게 밝히며 “비혼모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비혼모인권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아이를 혼자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받은 차별은 심각하게 폭력적이었다. 어느 날 어디서 어떻게 이유 없이 지탄과 수모를 겪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도처에 깔린 폭력적인 시선과 차별적인 언행에 맞부딪쳐야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대안가정운동본부 김명희 사무국장은 가정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무엇보다 정부의 다양한 가족제도를 인정하는 태도와 지원 방안에서 시작될 것”이라며, “정부의 가족에 대한 규정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식의 변화를 정부가 먼저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변화를 꾀하기는커녕, 보건복지부의 출산장려정책은 지극히 혈연중심적이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정책을 펴고 있어 실질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저소득 한부모 가정’이나 ‘비혼모 가정’들을 더욱 궁지에 몰고 있다.
이 기사 좋아요 2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