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움직임’

체육교사 김장효영

김민지 | 기사입력 2006/04/17 [21:08]

그녀의 ‘움직임’

체육교사 김장효영

김민지 | 입력 : 2006/04/17 [21:08]
그녀의 방은 마치 작은 스튜디오 같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스크린과 프로젝터, 사진인화기, 노트북, 오디오시스템과 함께 옹기종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손수 찍은 멋진 사진들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그녀의 다양한 재주만큼이나 풍부한 관심사를 보여준다.

하지만 효영의 매력은 그녀가 ‘움직이고 있을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몸의 움직임에 관해서는 거의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몸짓과 에너지가 발산된다. 특히 춤을 추고 있을 때 그 즉흥성과 살아 움직이는 감각을 보고 있을 때면, 그 공기에 공명하는 사람들을 뜨겁게 달구는 무언가가 뿜어져 나온다.

몸의 언어가 가진 직접성만큼이나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데 능하다. 장난도 잘 치고 가끔 억지 쓰며 어리광을 피우기도 한다. 그럴 때면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같아서 미워할 수 없는 순수함이 묻어난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잘 맞아서,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참 많다. 관심이 가는 새로운 춤이 있을 때 동영상을 보면서 혼자 연습하고 있는 효영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무엇인가에 골똘히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아이 같이 천진한 그녀의 성숙함을 엿볼 수 있는 면모이기도 하다. 자신이 뭔가를 할 때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하거나 움츠러들지는 않는 것 같다며, 스스로 실험정신이 꽤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꼬리를 무는 고민들

그녀의 직업은 체육교사다. 체벌과 마초적인 훈육방식, 성희롱이 난무하는 제도권의 학교 체육교육을 견뎌내는 것이 고역이었던 나는, 체육교사로서의 효영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건 그녀가 수업시간에 찍은 동영상을 우연히 볼 수 있었던 것과 거의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기도 했다.

화면은 온통 모래빛으로 가득 차 펄떡거리고 있었다. 이어달리기를 하는 학생들의 동작을 포착하기 위해 캠코더를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면서 “얘들아, 그 쪽으로 간다!”고 소리치는 체육선생님. 학생들의 자세를 모니터해주기 위해 직접 동영상을 만들고, 행복하게 기억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미니홈피에 체육시간에 대한 좋았던, 혹은 좋지 않았던 체험을 모으는 체육선생님. 내가 아는 그녀의 다른 모습이었다.

보수적인 학교사회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당히 눈치 봐서 무난한 평가기준을 따르는 것이 쉬울 테지만, 불편한 지점들도 많다. 게다가 며칠에 걸쳐 고민을 해도 완벽한 평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환경은 받쳐주지 않고, 교사 개인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녀는 불편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 우선은 그냥 듣는다고 했다. 그리고 가능한 선에서 얘기를 꺼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신규가 신규답게 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 되지 않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검열하고 고민하게 되는 점들도 존재한다. 제국주의적인 느낌이 풍기고 인위적이기도 해서 좀처럼 받지 않게 되는 ‘경례’지만, 수업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학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떠오르는 대안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가끔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뇌가 있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무가내인 학생들과의 일상, ‘무섭게 하지 않을 때’ 나오는 다른 선생님들의 지적들, 또 체벌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신의 방식이 너무 순해서 실은 아이들을 방임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들이 엮어져 학교생활은 정신 없이 돌아간다.

체육이라는 교과목의 특징에서 오는 좀더 구체적인 고민도 있다. 성격상 가르쳐주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완벽하게 알려주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우열을 가려야 되는 상황에서 지도내용을 따라오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주로 여자아이들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그럴수록 다양한 방법을 통한 교수법을 찾아야 한다. 외워야 하는 것이 있을 때 강조를 하는 방법도 그렇다. 왜곡된 성 인식을 자극하는 비유들은 쉽게 먹힌다. ‘남자가 왜 그렇게 수다스럽냐’, ‘여자애들이 왜 이렇게 방정맞냐’ 다른 선생님들이 하는 이런 말들은 학생들에게 굉장한 통제력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계속 고민하고 반성한다.

몸을 느끼고 돌보는 법 가르치고 싶어

간혹 아이들에게는 효영의 교육방식이 낯설다. 여러 영역에 관심을 가지기도 힘들고, 주입식의 학습방법에 익숙해져서 의외로 수동적이고 시키는 것만 하려는 성향이 크다. 학과공부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 미안할 때도 있다. 듣기 싫어도 해줘야 되는 말이 있고,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해야 한다. 더구나 입시에서 비중이 적은, 소위 ‘소외교과’라서 오는 애로점도 있다. 마라토너 손기정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요즘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배워야 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려면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몸이 움직이는 느낌. 아, 내 몸이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움직이는 게 어떤 의미가 있구나. 이런 걸 알려주고 싶어. 그런 건 계기가 없으면 알기 힘들잖아.”

효영은 스스로의 몸을 돌보는 방법에 중점을 두어 가르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 느낌을 알 수 있도록, 또 아는 사람은 느낄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고 싶다. 그래서인지 교과와 관계없는 이야기를 좀 하는 편이다. 몸을 느끼는 수업, 생각하는 체육수업, 기말시험을 대비해 뚝딱 해치우는 이론수업이 아닌 살아있는 고민들을 할 수 있는 수업, 그녀가 지향하는 체육교육이다.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며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아이들, 저 멀리서 보고 두 팔을 흔들며 인사하는 아이들, 못보고 지나칠까봐 일부러 눈길을 끌어 꼭 아는 척을 하는 아이들, “솔직히 애들은 너무 대책 없다”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효영의 입가에는 웃음이 돈다. “선생님이니까 이래야 돼, 그런 건 별로 신경을 안 쓰려고 해. 가끔 웃기는 짓도 곧잘 하고. 청소하면서 나오는 음악에 립싱크를 한다든지, 바뀐 내 머리스타일을 칭찬해주면 도도하게 쓱 한번 머리를 쓸어준다든지.”

초반에는 눈을 끝까지 바라보며 인사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힘들 정도로 너무 바쁘다고 하소연하는 그녀는 학생들을 일일이 케어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며 아쉬워했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서 그런지,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계속 생각하게 되고, 일 끝내고 집에 와도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이 워커홀릭 기질 때문에 연애를 비롯한 다른 관계들에 소홀한 것 같다며 요즘은 가까운 이들에게 좀더 신경 쓰고 싶다는 효영. 평소의 이미지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사람이지만, 학교에서 부대끼고 고민하는 시간들은 그녀의 재능과 에너지가 농익어가는 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냐고 물었다.

“그냥 선생님이지 뭐, 젊은 선생님.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서운한 건 서운하다고 하고, 인사하면 반응하는.” 간단한 대답이 나오긴 했지만, 이 솔직하고 유쾌한 선생님과 함께 몸을 알아가는 아이들은 참 행운이겠구나 하는 마음에 부러움이 여운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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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im 2006/04/23 [22:33] 수정 | 삭제
  • 학생들의 삶에 흔적을 많이 남기는 선생님이 되겠어요. ^^
  • dido 2006/04/19 [00:49] 수정 | 삭제
  • 감각적이고 매력적이네요.

    몸이 자유로운 사람들 부러워요. 내가 그렇지 못해선지두.

    몸의 느낌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운동도 춤도 일도 관계도 열정적인 분인 것 같네요.

    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은 선생님일테고요. ^^
  • 은수 2006/04/18 [19:34] 수정 | 삭제
  • 완전 호감..
    새로운시도, "소외"교과(?), 좀 다른 방식, 그러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거의 외줄타기 곡예네요.
    이거 되면 "한국"에서도 살 수 있겠죠
    이런 분들 많이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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