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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자살에서 해방된 세상을
故육우당, 오세인 추모의 밤에 다녀와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선우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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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토요일 오후,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상담팀 세미나를 마친 뒤 활동가들과 함께 故육우당, 오세인 추모제 “내 혼은 꽃비 되어”가 열리는 고려대학교로 향했다.

추모제에서 연대사를 부탁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워낙 무거운 의미를 지닌 자리인지라 가는 내내 3년 전 육우당이라는 청소년 남성 동성애자의 죽음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현재의 내가 놓여져 있는 공간을 벗어나 사고하기란 역시 어려운 일인지, 출근하려고 사무실의 문을 여는 순간 함께 일하던 활동가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면서도 슬프고 뼈 속까지 아픈 일이었을지 그 먹먹한 느낌만이 다가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육우당이 생전에 썼던 일기와 시 그리고 유서를 모은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의 간행사를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가 낭독하는 것으로 추모제는 시작됐다. 동성애자 해방세상을 꿈꾸며 열아홉 나이로 육우당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2003년 4월은,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차별조항을 삭제하라고 주장하는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목소리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반영된 것에 대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국민일보 측의 탄압이 한창 거세던 시기였다. 추모제에선 이에 저항하던 당시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운동을 담은 영상에 이어 육우당의 시 몇 편이 소개됐고, 故육우당과 오세인을 추모하는 인권단체들의 연대사와 그들을 알고 지내던 동인련 활동가들의 발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내 존재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

동성애자와 자살, 함께 묶여 있어도 그다지 생경스럽지 않은 조합이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일부를 죽이며 살아간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구성하는 요소 중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성 정체성을 숨기고 동성애자가 아닌 척 굴어야 하는 순간 순간들이 말 그대로 ‘일상’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내가 나를 죽이는 것에 너무나 무뎌져 그게 아픈 상처인 줄도 어떨 때는 잊고 살 정도로 말이다.

암묵적으로 혹은 피부에 와 닿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고통을 알 리 없는 일부 속편한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등장하는 문화물이 늘어났다는 단편적인 현상 하나만을 보고 세상 많이 달라졌다고, 동성애자 인권이 향상되었다고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안타깝게도 한국레즈비언상담소를 찾는 동성애자들의 고민에는 그다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동성애자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변화하는

추모제를 함께 다녀온 십대 레즈비언 활동가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꼭 털어놓으라고, 혼자만 떠안고 있다가 갑자기 죽거나 하지는 말라고 말이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엔 죽고 싶은 적이 많았는데 요즘은 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들 뿐 많이 나아졌다고.

우리가 동성애자 죽이는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맞서려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육우당이 목숨을 끊은 지 1년 후인 2004년 4월,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이 삭제되었듯이 말이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죽음을 택해야 하는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려면, 육우당, 오세인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고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내가 나를 온전히 드러내어 놓고 웃고 떠들고 눈물지을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더 넓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동성애자를 향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대항하는 활동을 열심히 해 나가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최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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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4/24 [21:51]  최종편집: ⓒ 일다
 
아픔 06/04/26 [01:16] 수정 삭제  
  1년이 지난 거로군요.
추모제는 가본 적이 없지만 마음으로 깉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들어야하는지.. 어떤 사람들에겐..
보게 06/04/26 [23:10] 수정 삭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고,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상처.
너무 가슴 아프네요. 운이 좋게도, 이런 저런 인연들로 주변에서 이러한 고민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타인의 상처에 예민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가끔은 이 또한 이성애자의 어설픈 동정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나 자신을
계속해서 돌아보곤 했었죠.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지만,혹은 나는 이성애자이지만, ~" 이런 말로 시작되는 언설들이
견딜 수 없게 또한 그들을 타자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느 순간,.. 정말로 동성애자를 향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대항한다면,
차라리 "나 역시 동성애자다. '라는 구호를 내걸고 함께 하는 것이 힘을 실어주는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죽음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이 사회가 참 슬프네요.
peyoung 06/04/27 [18:31] 수정 삭제  
  한 단체에서 두 명이나 비슷한 죽음이 있었죠.
상상도 못한 죽음이라고 얘기하는 걸 들은 적도 있어요.
저도 그 생각을 하면 함께 일하던 사람이 그렇게 죽어있는 걸 본 사람, 겪은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주위에 힘들다 했던 친구들 안부를 챙기고 싶어지기도 했고요.
님처럼, 힘들면 얘기해 혼자 앓지마 하고 말이죠.
연찬 06/06/12 [20:15] 수정 삭제  
  이 글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와 닿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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