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험한 장애학생 대학생활

우수평가 받은 대학에서조차 수업 힘들어

혁은 | 기사입력 2006/05/24 [03:31]

멀고도 험한 장애학생 대학생활

우수평가 받은 대학에서조차 수업 힘들어

혁은 | 입력 : 2006/05/24 [03:31]
잊을만하면 나오는 ‘장애극복 신화’. 지난 2월 각 일간지들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는 지체장애 2급의 한 장애인의 일생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보도를 했다. 당시 그 장애인은 “어머니가 늘 ‘스스로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영원히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다. 넘어져도 혼자 일어날 수 있도록 강해져야 한다’며 독려해줬다”고 말했고, 이 얘기는 인터뷰 기사의 주요한 뼈대를 구성했다.

성공했다고 보여지는 한 장애인 개인의 삶을 강조하고 있는 이런 신화는 사회 내 차별적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굳이 ‘불굴의 의지’가 아니어도 여느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차별적이지 않는 일상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신화들은 ‘장애인이지만 불굴의 의지로 장애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모습을 강조하며, 장애인 개인의 몫으로 넘기게 된다.

대학의 장애학생 교육권 실태 ‘낙제점’

지난 몇 년간 대학에선 “장애학생의 학습권과 생활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제기됐고, 현재 많은 학교에 장애학생 인권과 학습권을 위한 단체들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가 낸 <2005년도 대학 장애학생 교육복지 지원실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70% 이상의 대학이 개선 요망”됐다. 그 중 특별히 우수한 14개 대학의 사례가 보고서 맨 뒤에 실려 있는데, 특히 서울대, 단국대, 대구대가 “우수하다”고 평가됐다. 그러나 정작 해당 대학 내 장애인권단체들의 말은 다르다.

서울대엔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이, 단국대엔 ‘장애인권위원회’가, 대구대는 ‘대구대학교 장애인학생 교육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대장교연)가 활동 중이다. 이들 단체들은 “장애학생들은 입학은 했지만 당장 강의실에 접근하는 것이 힘든 경우(도 있고), 때론 기숙사에서 나올 수 없을 때도 있고, 책도 없고, 수업도 듣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며 대학 내 장애학생들의 교육권 보장 실태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 단체들의 줄기찬 요구로 현재 3개 대학에선 어느 정도의 제도적 개선이 이뤄진 상태다. 단국대엔 장애학생휴게실, 장애학생도우미제도, 장애학생장학금제도가 있고 학생처 내에 장애학생 전담직원(사회복지사 1급)을 배치하고 있다. 대구대는 수화통역사 배치 시 수를 고려하고, 전자도서 확대도입, 리프트 차량, 접근 불가능한 곳을 재공사하는 등 여러 발전적인 흔적들이 나타났다.

서울대엔 대학본부 내 ‘장애학생지원센터’가 만들어졌고, 장애학생의 수업보조를 하는 ‘장애학생도우미’ 제도가 신설됐으며,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된 버스, 점역서비스 등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학생이 비장애학생들과 같은 조건에서 학습을 받기엔 여러 가지 제약들이 너무 많다.

수화통역, 전문속기사, 전자도서의 문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동권이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장애인은 단 1칸의 계단만 있어도 건물에 들어가지 못한다. 위에 언급된 3개의 대학들은 많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지만, 계단으로밖에 올라갈 수 없게 되어 있는 곳들도 있어서 휠체어를 탄 장애학생들은 많은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 또 장애학생들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는 있지만,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지체장애학생들이 1년 내내 기숙사에서만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시각장애학생의 경우엔 학교 전체에 점자블록이 설치되지 않는 이상, 항상 누군가와 함께 이동해야 한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강의를 듣는 대형강의실은 필연적으로 계단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어서 장애학생들은 수업의 맨 뒤나 맨 앞자리에 앉게 된다.

청각장애학생의 수업에 수화통역사와 전문속기사를 배치하는 문제와, 시각장애학생의 전자도서 문제도 시급한 일들 중 하나다. 서울대와 단국대는 장애학생 도우미제도를 통해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가 대필을 해왔으나 “속기는 매우 수준 높은 타자실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오타가 많고, 수업내용을 원활하게 받아 적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대구대는 “수화통역사가 배치되었으나 속기사에 비해 수업을 완벽히 받아 적기 힘들고 그 수 또한 전체 청각장애학생 수(44명)에 비해 부족해서 학내단체에서는 연차적으로 증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5년 5월, 서울대에선 장애학생도우미와 전문속기사가 속기한 내용의 차이를 그대로 자보에 공개하면서 대학 측에 “속기사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2006년부터 속기사 도입이 이루어졌지만 “그 수가 달랑 1명에 불과해” 청각장애학생들이 대부분의 수업에 속기사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각장애학생들은 ‘책’ 문제가 당장 시급하다. 수업과 공부를 위해서는 컴퓨터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전자도서나 점자도서가 확보되어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교재가 그렇지 못하다. 서울대에서는 “장애학생도우미들이 교재를 타이핑하는 식으로 텍스트파일을 만들고”, 단국대에서는 “학생들이 일일이 스캔을 떠서 교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대구대는 “점자도서, 녹음도서 및 전자도서 출판 제작 보급을 점자도서관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책들이 전자도서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수인 장애학생들이 돌아가라”

1995년 장애학생특별전형제도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실제로 전형을 실시하는 대학이 29%에 불과하다. 또 이들 대학마저 장애학생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급하고 기본적인 사안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학내 장애인권단체들은 한결같이 대학 당국과 교수, 학생들의 ‘장애인권’에 대한 인식 부족을 문제 삼았다.

대구대 대장교연의 김충현씨는 “장애인 학생의 교육권(수업권, 접근권, 생활권)을 보편적 권리로 보는 게 아니라 해주면 좋다는 정도로 본다는 것”을 근본적인 문제로 꼽았다. 또 “거기에 추가되면서 예산문제를 이야기한다. 당장 기숙사 생활하다가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수업 못 가고 씻지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가게 생겼는데 마냥 기다려라 하는, 어이없는 일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대학 측은 흔히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의 권리를 충돌하는 것으로 보거나, 다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내비친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서울대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걷고 싶은 거리’라는 이름의 공사를 하고 있다. 학교 곳곳을 보기 좋게 꾸미는 이 공사에서 전에는 경사로였던 곳이 계단으로 바뀌는 사태가 발생했다.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은 줄기차게 항의했지만 학교 측은 “소수인 장애학생들이 돌아가라”는 답변을 했다.

대학 내에서 학생으로서 장애학생들이 설 곳은 많지 않다.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는 대학들에서 이렇다면 ‘개선이 요망’되는 전국 70% 대학들의 실태는 어떠할까. 장애학생이 다른 ‘대학생’들처럼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길은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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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2006/06/02 [05:52] 수정 | 삭제
  • 혁은 기자님의 기사를 열심히 보고 있는 독자입니다.
    지난 평택 기사도 좋았는데 이번 기사도 마음에 쏙 드는군요. (완소입니다.)
    혁은 기자님의 기사와 더불어 누구나 사회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 j 2006/05/29 [21:47] 수정 | 삭제
  • -_- 생각 좀 하고 말하면 좋을듯.
    저런 기사들 나올 때마다 힘들어도 내색 않고 열심히 다녀 공부했다는 내용 대신
    장애학생들의 교육권에 대해 정부나 학교측에 대해 사용자로서 날카롭게
    비판을 했으면 한다는, 아니면 인터뷰 자체를 거부하던지.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장애인 본인들도 똑바로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
  • 합주 2006/05/25 [13:49] 수정 | 삭제
  • 우수하다고 표창받는 학교가 저 정도면, 다른 대학들은 시늉도 안 내고 있는 상황이겠죠. 돈이 없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장애인권문제는 다수의 횡포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