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이윤영님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00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시험날짜를 변경한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원래 21(수)일부터 시작해 23(금)일에 끝나기로 되어 있었던 시험일정을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한 마디의 상의 없이 26(월)일까지 연장했기 때문이다. 13일 월드컵 토고 전과 19일 프랑스 전을 마음 편히 볼 수 없지만, 24일 스위스 전을 볼 것에 들떠있던 학생들은 시험날짜 변경의 이유를 묻는 이 글에 동의했지만, 무엇이 두려운지 그 누구도 동의의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그 글을 올린 학생에게 직접 “용감하다”는 말을 할 뿐, 그 이상 연관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유조차 듣지 못한 채, 변경된 그 날짜 그대로 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여기서 내가 발견한 한국 교육의 문제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권위주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 권위주의에 대하여 자기의 목소리를 낼 줄 모르는 학생들의 태도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에 대해 건의하는 일에 겁을 내고, 심지어 동의하는 일조차 꺼려하는 모습은 다만 이 학교 안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런 학생들이 자라서 과연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겠는가? 타당치 않은 문제를 시정하려 하지 않고, 옳지 않은 것에 적당히 자신을 맞춰 가면서 만족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렇듯 학생들이 겁쟁이가 된 것은 ‘일등’이 아니면 ‘나쁜 아이’로 취급하는 우리 교육 덕분일 것이다. ‘일등’이 아닌 학생의 불평은 “공부도 못하는 놈”이라며 한 대 쥐어 박히는 것으로 끝나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입을 다무는 법을 배울 뿐이다. 또, 그렇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즉 ‘일등’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몸을 담글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치열한 경쟁 끝에 살아남는 ‘일등’은 극히 소수다. ‘일등’이 아닌 학생들은 영원히 ‘일등’이라는 영웅 아래에서, 그들에게 끌려 다니면서도 찍소리 하지 못하는 열등감에 눌린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 문제가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을 때에도 열심히 공부만 하고 있었던 한국의 학생들. 생존경쟁에서 이긴, 공부밖에 모르는 ‘일등’이 이끌어 가는 세상에서 ‘순위 밖’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채,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그것에 자신을 맞추기에 급급한 사회는 잠잠해 보일 지는 몰라도, 결코 행복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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