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신분은 며느리?

한국적 가족관과 일방적 희생 강요하는 언론

함수연 | 기사입력 2006/08/09 [00:54]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신분은 며느리?

한국적 가족관과 일방적 희생 강요하는 언론

함수연 | 입력 : 2006/08/09 [00:54]
한국인 남성과 동남아시아 여성과의 결혼이 증가함에 따라, 언론에서 이들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는 회수도 늘고 있다. 조선일보의 국제결혼 베트남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적 보도사례에서 드러나듯 일부 언론들은 동남아시아 여성과의 국제결혼에 대해 ‘가난한 여성 구제해준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왔다.

최근에는 조금 보도 양상이 바뀐 듯하다. 한국에 와서 살아가고 있는 국제결혼 여성들의 사연을 담고, 이들을 격려하고 지원해주자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제결혼 동남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를 보면, 한국 사회와 한국인 가족들이 이들 여성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좋은 며느리 되라 = 일방적으로 희생해라

필리핀 며느리의 시어머니 봉양 (조선일보 2006년 5월 8일)
“효도에 국적이 따로 있나요” 필리핀 며느리 孝心 감동 (노컷뉴스 2006년 5월 22일)
외국인 며느리 초등 영어 강사됐네 (쿠키뉴스 2006년 5월 26일)
지자체, 외국인 며느리 ‘파이팅’ (매일경제 2006년 5월 16일)
KBS ‘러브 人 아시아’, 외국인 며느리위해 한국어 교재 깜짝 선물 (OSEN 2006년 5월 18일)
“외국인 며느리에 사랑과 관심을” (세계일보 2006년 5월 17일)

한국으로 이주해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여성들의 신분에 대해 언론은 상당 수가 ‘며느리’라고 지칭한다. 이주여성 개인이나, 아내나, 심지어 어머니보다도 ‘며느리’로서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과도 직결된다. 결혼이 남성과 여성 간에 이루어진다기보다 가족과 가족 간, 그것도 여성이 남성 가족의 일원이 되어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주요하게 부여 받게 되는 성차별적인 현실이 그것이다.

<필리핀 '굿 사마리탄 컬리지(2년제 간호대학)'를 졸업하고 필리핀 마닐라의 한 약국에서 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에미레씨는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감사하다"며 "어머니께서 오래오래 사시고, 가족 모두 건강하게 사는 게 소망일 뿐, 다른 욕심은 없다"고 소박한 희망을 염원했다.> (“효도에 국적이 따로 있나요” 필리핀 며느리 孝心 감동, 노컷뉴스 5월 22일)

TV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의 삶의 모습은 위 에미레씨의 예처럼 ‘시부모 봉양 잘하고, 남편 내조 잘 하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밭일도 잘 하는’ 며느리로서의 역할이 부각된다.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따뜻한 가정이 있어서 희망이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런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결혼하길 잘 했다’거나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증거로 삼는다.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을 미덕으로 추켜세우면서, 한국적 가족관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특히 중풍과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8년 간 간병해왔다는 에미레씨의 사례는 보건복지부에서 효행자 부문으로 장관상을 수상하면서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지난 6월 3일 방송된 KBS ‘러브 人 아시아’에서도 에미레씨를 등장시켰다. 남편 역시 어머니를 극진히 생각하는 효자라고 소개했지만 정작 병수발은 에미레씨가 온종일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아시아로… 국제결혼 가족의 감동휴먼 스토리!”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아시아에서 한국으로”의 관점만 반영하고 있다.

많은 방송에서 이주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이들의 결혼생활에서 상대 남편의 역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거나, 아내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모습뿐이다.

여성들의 문화 존중하는 모습 찾아볼 수 없어

언론은 이주여성들에게 희생적인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자신 고유의 정체성을 버리고 ‘한국의 딸’이 되라고 강요한다.

<에미레씨는 특히 한국어를 원활하게 구사해 마을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은 물론, 이웃의 애경사(哀慶事)도 앞장서 챙길 정도로 이젠 '외국인 며느리'가 아니라 '한국의 딸'로서 자신의 당당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위와 동일 기사, 노컷뉴스 5월 22일)

<우즈베키스탄 출신 코바야시 예스키 씨(29)도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전통예절, 자녀교육은 물론 한복 바로입기, 명절 상 차리기, 송편 만들기 등을 통해 완벽한 '한국 며느리'로 태어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외국인 며느리 '파이팅', 매일경제 5월 16일)

언론 보도에선 “아시아”와 “다문화”를 언급하면서도, 동남아시아 이주여성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배우고 존중해주려는 관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국제결혼이 증가하는 만큼 이혼율도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로지 언론은 이들 여성들에게 한국인으로 탈바꿈할 것을 요구하며, 좋은 며느리가 되고 좋은 아내가 되고 좋은 어머니가 되어 화목한 ‘한국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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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님이 2009/10/04 [01:45] 수정 | 삭제
  • 남자가 한국 여자 한테 장가 못가서 아시아 여성 사와서 결혼하는 건데..

    무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역시..저런 매매혼에 가까운 결혼은...

    쌍방다...잘한 것 없어보여요.
  • 태희 2006/08/16 [18:16] 수정 | 삭제
  • 희생 강요하는 거 지겹다.
  • 2006/08/16 [16:32] 수정 | 삭제
  • 한국가족이 남성중심 핏줄중심인 거 하나도 반성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외국여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거.
  • nickey 2006/08/11 [14:15] 수정 | 삭제
  • 참 씁쓸하다.
    반대의 경우, 베트남 신문에서 한국 사람이 베트남 사람과 결혼해서 베트남서 살면
    한국사람 정체성 버리고 베트남 사람이 되어서
    자기 애조차도 베트남 애로 키우면서 살라고 하면,
    그것에 대해서도 한국은 그것이 잘하는 거라고, 좋은 문화라고 할까?
  • 지난 2006/08/10 [13:46] 수정 | 삭제
  • 말 통하고 문화도 익숙한 한국여성들도 농촌에서 '며느리'로 살기 힘든데, 외국에서 타향와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 한국의 특유한 '며느리'문화에 적응한다는게 얼마나 힘들 것인지, 방송이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고 짐작이 되네요.
  • 싸니 2006/08/09 [20:30] 수정 | 삭제
  • 그 프로들 보고 희생적인 베트남, 필리핀 여성들 보고 나서
    남자들은 너무 감동적이라고들 얘기하고,
    어른들도 그러는데 계속 국제결혼 홍보하고 여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저렇게 순종하면서 남자집안 받들면서 살라고 강요하는 거 같아서 너무 기분이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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