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조직 만들자”

여성들이 말하는 성차별적 노동시장

윤정은 | 기사입력 2006/08/30 [05:07]

“여성노동조직 만들자”

여성들이 말하는 성차별적 노동시장

윤정은 | 입력 : 2006/08/30 [05:07]
“지금도 차장님한테는 겨울에는 보온병에 물 떠다 놓고 여름에는 얼음 넣어서 녹차 갖다놓고 있어요.” (증권회사에 입사한 지 2년차인 여성)

“예전에 주총 때 여직원을 인사부에서 뽑아서 아침에 한복을 입고 오라고 해서 난리가 났어요...지금 합병된 회사는 지점 오픈을 하면 최소 여직원 한명은 한복을 입고 있어야 해요.” (입사한 지 20년 가까이 된 여성)

“저희 동기들이 공채라고 들어왔는데, 2년 계약직이에요. 하는 일은 정규직하고 같은데, 급여도 좀 다르고 계약기간이 있죠. 2년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회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애매한 거죠.” (입사 6개월 된 비정규직 여성)

최근 증권업계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성차별적 근무환경 실태”를 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간담회에는 신입사원에서부터 20년 가까이 증권업계에 몸담은 여성노동자들, 정규직과 비정규직, 다양한 직급과 업무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참석했다.

여성노동자들 입을 열다

김은아 전국증권산업노조(이하 증권노조) 여성국장은 “여성들의 다양한 차별 경험을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 “예전에 여성노동자들에게 일상화 되어있던 커피타기, 청소하기, 유니폼 입히기 등의 성차별적 관행이 없어진줄 알았는데 여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8월 28일, 증권노조 여성위원회는 증권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여성노동매체 <여파>를 발행했다.

<여파> 윤연희 편집위원은 간담회 분위기에 대해 “모인 여성들이 처음에는 얘기를 안하다가 청소 얘기가 나오면서 말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여성들이 그제서야 일상에서 혼자 부딪히며 감내해오던 차별에 대해 봇물이 터지듯 열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증권노조가 실시한 2006년 임금단체협상을 위한 사전 설문조사에 의하면 상당수 비정규직 여성들이 “재계약이나 정규직전환 문제에 있어 상사의 개인적 견해가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당한 처우를 참아내고, 심지어 성희롱을 감내”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이 받는 차별 경험은 어느 증권회사나 “여성을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상사와의 관계, 말도 안되는 잡무와 권위적인 관계,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비슷했고, 이런 상황으로 서로간 공감대가 쉽게 형성됐다고 한다. 20년 된 여성선배와 신입사원 후배들은 근속년수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하는 업무가 있었던 것이다.

차심부름, 화분 가꾸기, 책상 닦기, 회식에서 술시중, 노래방 블루스 등 도우미 역할, 몸매를 강조한 유니폼 입기, 부적절한 호칭 등.

그녀들은 계약직이다, 여성이니까

“우리 회사는 작년에 18명의 여성 전문대졸자들을 공개채용 했다. 그녀들은 천명이 넘는 지원자와 경쟁하여 용케 입사한 인재들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계약직이다. 왜냐고? 여성이니까. 올해 7월 대졸 직원들을 뽑았다. 이들은 정규직이다. 18명 중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남성들이다. 여성대졸은 거의 채용이 안 된다.”

증권노조 이은순 여성위원장의 말이다. 또, 그는 “고졸이나 전문대졸로 입사한 여성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경우”도 있지만, 그 경력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번 고졸이면 영원히 고졸이라는 것이다.

증권회사는 예전에는 고졸 여성들을 많이 채용해 소위 말하는 ‘여성 업무’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활용하다가 현재는 전문대졸이상을 채용한다. 이은순 여성위원장에 따르면 현재는 전문대졸이상의 여성을 “채용한 후 지점관리, 콜센타, 본사관리 중 보조업무라는 성차별적 배치”를 통해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을 두고, 비정규직으로 활용한다는 것.

회사는 정규직으로 여성을 채용하진 않는다.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 내 활동하는 여성간부들은 이상한 방식으로 학력 차별을 활용하는 회사의 관행에 대해 수년간 문제제기를 해왔다. 올해 증권노조는 ‘학력차별금지’와 ‘직군제 철폐와 금지’를 2006년 단체협약의 주요 요구로 내걸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안에 대해서 김은아 편집장은 “매년 단체협약 안에 들어갔지만 폐기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는 특히 직군제 등의 방식으로 “은행계열 증권사를 선두로 증권사들도 비정규법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에서 여성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증권여성노동자의 반 이상은 비정규직이다.

그런 점에서 증권노조 여성위원회는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쪽짜리 정규직노조로는 모두의 미래와 고용을 보장하는 투쟁을 전개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김은아 편집장은 “비정규직에게 조합의 문을 열고, 고충을 듣고, 요구를 수렴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순 여성위원장 또한 “두꺼운 벽은 사용자가 쳐놓은 것이지만,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노동조합도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노동조합 내 남성활동가들의 성차별

“얼굴 되지, 몸매 되지, 도데체 어디가 모자란다고 해고한단 말입니까!”
“꽃 같은 우리 여승무원들의 투쟁을 누가 막으려 한답니까?”

이것은 KTX 여승무원 투쟁 때 남성간부들이 했던 말이다. 공공연맹 강해현 여성국장은 <여파>를 통해 남성간부들의 이런 발언을 전하면서 “방송 오락프로에서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00자막 처리하듯이, 집회 때 부적절한 발언이 나오면 X자를 새긴 큰 피켓이라도 들어야 할 판”이라고 비난했다.

공개적인 집회 장소에서,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에 대해 연대의지를 밝히는 남성간부들의 발언 수준이 이정도 수준인데 노동조합 내에서는 어떠했으랴. 8월 28일 증권노조 여성위원회가 여성노동매체를 만들기 까지는 쉽지 않는 과정이 있었다.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됐던 세력은 회사측이 아니라 노동조합 내 남성활동가들이었다.

“현재 해야 할 사업이 많은데 역량을 여성사업에 투여하는 게 맞냐?”
“노동조합은 대중적인 조직인데 페미니즘이나 여성주의와 연계하는 것이 옳으냐?”
“여파는 노동조합과는 따로 전망을 가진 여성활동가가 자기 욕심 챙기려고 내는 것이다.”

김은아 편집장은 “여성노동매체를 만들고,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불편하고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재 노동조합 내의 정서를 설명했다.

사라진 여성들의 네트워크 만들 것

그러면서 김 편집장은 “문제는 여성노동매체에 대해 여성노동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함께 참여해서 목소리를 드러낼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여파>를 통해서 노동조합 내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의 틀을 형성해, 실질적으로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는 데 노력하고 비정규직 보호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여성들이 소통하고 차별에 저항할 수 있는 기술과 방법을 나누고, 요구를 실천으로 조직할 힘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조직할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모이고, 자치적인 모임과 조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1990년대까지는 회사별로 여직원회나 노조 여성국을 중심으로 차별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많았다고 전했다. 김은아 편집장은 “이제 다시 여성들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며 “<여파>는 사라진 여성들의 네트워크와 조직을 만드는 첫번째 시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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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딜레마 2006/09/04 [13:06] 수정 | 삭제
  • 복수노조 허용 5년뒤로 미뤄....
    아직 부분적으로 허용되고는 있으나 그 권한을 허용받기 위해서는 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데...
    복수노조라는게 양날의 칼이죠.
    가령 교섭권을 가지는 여성노조가 단독으로 설립될 수 있다는 소리인데...
    문제는 타 노조들간의 합의사항이라는 겁니다.
    예로 우리은행같은 경우는 정규직 내에서도 팀장 혹은 과장급 이상되는 이들이 결성한 노조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정규직끼리도 이런 실정입니다.
    노사간 교섭때 어느 노조가 주도적인 협상을 벌이느냐가 문제가 되겠고...
    당연히 사측에서는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이 잘되는 노조와 협상하려 들테고 저절로 노노간 갈등 부지기수로 늘어만 가는 겁니다.
    조합만 늘어났을 뿐이지 의견통합하기 엄청 힘들겁니다.
    특히 강성노조 스타일의 마초적인 정규직 노조들 여자들이 하는 말 거의 무시할꺼 뻔하고...
    혼자든 단체든 여자들끼리'만' 있으면 오히려 더 약해보이는거 여자들은 압니까?!
    능력 있는 남자하나 없는 단체 얕보이기 딱이죠.
    뭐 고학력에 전문직 여성대표가 있다면 모를까(가령 그 단체 대표로서의 검사 혹은 저명한 교수 전직 1급 이상의 공무원 그리고 국회의원등등-_-)
    그 이외의 여성들만이 있는 단체란 지식만 있는 허울뿐인 단체로 얕잡아 보이기 쉽상이죠. 즉 이행력이 없어 보인다 이 말 입니다.
    협상에 필요한건 정당성이 아닌 합의사항을 이끌어갈 힘이 중요합니다.
    이게 억지가 아니라 이러한 협상론이 대학 서적에 나왔다는 자체로 더 서글픈 사실이죠. 아니 현실이죠.
    양측의 혹은 다자간에 타협을 보자면 밀고 땡길만한 힘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힘을 인지할 만한 잣대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한 잣대의 불확실성을 인지 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모두 힘의 배경이 있어야 됩니다.
    아직 힘을 실어줄만한 여성단체란게 있나 싶네요. 국회의원 빽믿고 설치는 단체 빼고는 여성노조의 설립은 모양 뿐일겁니다. 정치적인 힘이 있어야 사측이든 타 노조든 쫄기 마련이고 합의하기 더 쉽기 때문이죠.
    순수한 여성운동을 위해서라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위해서 좀 더 정치적인 접근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측도 자신들의 장사에 쏟을 여력을 이렇게 변하는 노사관계에 모두 쏟을 여력이 나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회사가 살면서 나도 그 덕을 볼려면 어쩔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복수노조의 허용은 한국의 노사관계로 보아 독이 되었으면 독이 됬지 약이 되지는 못할 거 같고 그안에서 얻을 여성단체들의 득실도 별로 일듯 싶습니다.
    산별노조의 전환이 확실히 보장되고 그안에서 산업별로 여성연대가 나온다면 좀 바람직 하겠지만...
  • 영주 2006/09/03 [14:43] 수정 | 삭제
  • 열악한 여성노동의 현실 속에서 좋은 선례를 남겨주시길.
  • 와일드 2006/09/01 [01:51] 수정 | 삭제
  • 혼자가 아닐 때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갖게 되고..
    무엇보다 용기와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밤하늘 2006/08/31 [12:52] 수정 | 삭제
  • 아직도 여성들을 시녀 부리듯 하는 현장들이 많은 것 같군요.
    법이 유명무실하게 제재를 가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답답합니다.
    한국남자들 의식수준이 극도로 저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 정말.. 노조 간부급되는 남자들도 하나도 다를 바 없죠.
    여성들이 뭉쳐야 할 것 같습니다. 뭉쳐서 소리를 내야죠!
  • tei 2006/08/30 [15:34] 수정 | 삭제
  • 여파의 창간 축하합니다.
    증권여성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사서 볼 수도 있는지 물어봐야겠네요.
  • 마리 2006/08/30 [14:45] 수정 | 삭제
  • <현대 가족 이야기>의 내용이 생각나네요. 노조에서 여성은 또 별개의 집단 ..
  • 베로니카 2006/08/30 [06:50] 수정 | 삭제
  • 왜 안그러겠어, 싶기도 하고.
    사석에선 무지 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