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은 이주의 과정에서는 물론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에서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한국 남성에 의해 저질러지는 이러한 폭력은 한국이라는 상황 과 결혼이라는 상황으로 쉽게 은폐되는 구조 속에 놓여있다. 최근 들어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결혼중개업에 대한 규제방안과 이주여성의 안정적 체류를 위한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 31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는 한국인권재단의 주최로 월례인권대화 <국제결혼이주여성의 한국살이>를 통해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처한 현실과 해결책을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성관계 강요, 상품 취급 인권침해심각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상담 및 지원활동을 해 온 이주여성인권연대 김민정 정책국장은 “이주여성은 한국에 입국하기 전부터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동안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며 “이주여성이라는 특수성으로 한국여성이 겪는 가정폭력과는 다른 종류의 여성폭력을 경험한다”고 지적했다. 임신이 늦어지는 이주여성에게 시어머니가 “비싼 년”이라고 한다거나, 남편이 “너 데려 오느라 돈이 많이 들었다”는 말을 하는 등 “매매된 상품”으로 취급하거나, 문화적 차이가 무시되고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들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상담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이주여성이 입국한 지 1개월도 안되어서 “무뚝뚝하다”는 이유로 중개업자의 집으로 쫓아 보내거나, 17세 고등학생 아들의 아침 밥을 제대로 못 챙겨준다는 이유로 19세 아내를 돌려보내고 “지불한 중개료를 돌려받고 싶다”며 소비자보호원에 진정서를 제출한 경우도 있었다. 김 국장은 상담을 해 오는 여성들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성관계 강요”를 꼽았다. 이는 대개 신체적 폭력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고, 지지집단의 부재로 인해 “더 강압적으로 아무런 제어장치 없이 행해질 가능성”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외부 세계와 강제로 차단돼 가장 많이 상담이 접수된 사례가 “외부 세계와의 강제적 차단”인데 심각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외부 세계와의 차단은 이주여성이 “위장결혼”과 “돈 벌러 온 여성”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감시 수준에서 이루어지기도 하며, 중개업자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증은 남편이 보관해라, 같은 국적자 여성들과 전화를 하지 못하게 하라”고 일러주는 경우도 있다는 것. 이주여성인권연대에 상담을 해 온 한 이주여성은 같은 국적의 친구들과의 접촉을 차단당한 경험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시어머니는 친구들이 전화를 할 때면 내가 옆에 있는데도 화장실에 있다고 하며 바꿔주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어머니 나 답답해요. 나 친구가 필요해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친구들이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여보, 내 방은 화장실이 아니야. 왜 계속 화장실에 있다고 해. 내 마음 많이 답답해, 나 친구가 필요해.”> 김 국장은 한편으로 이주여성과 다문화 가족을 바라보는 편견과 선입견이 이주여성을 힘들게 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주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을 “뭐가 부족해 외국여성과 결혼한 사람”으로 보거나, 이주여성을 “과도하게 대상화하고, 피해자화 하여 이들 여성들이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점에 대해 등한시하는 것이 여성들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 포괄적 수준 인신매매방지법 필요 국제이주기구 고현웅 서울사무소장은 “국제결혼 중개시스템이 80년대부터 만들어져 왔고, 국내에서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며 국제적 공조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현지 송출업체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것. 또한 “국제결혼중개시스템이 인신매매적인 속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법상 처벌할 마땅한 규정들이 없다”며 국제적인 수준의 포괄적인 ‘인신매매방지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도 “강력한 행정적, 형사적 처벌이 가능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더했다. 고현웅 소장은 우선적으로 “국제결혼을 하는 양쪽 당사자에게 결혼중개업체에 모집되기 이전, 또는 성혼 단계 이전에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여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라미 변호사는 이주여성들이 “이주의 과정에서 겪는 인권침해적인 피해를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2005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30%의 가정폭력 경험 자 중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8% 정도였다.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20%), 신고하는 방법을 몰라서(14%), 신고해도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13%), 체류 자격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10%) 때문 등이었다. 소 변호사는 “언어장벽”과 “이혼 시 한국국적 취득여부나 자녀 문제 등에 있어서 불안정한 신분”의 문제가 피해여성들의 입을 막고 있다며 “피해자에 대한 체류보장, 생계보장, 주거지원 등의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배우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이혼일 경우 국적취득의 기회가 부여되게 개정된 2004년 국적법이 “한국의 언어와 제도에 미숙하고 인적, 물적 기반이 취약한” 여성 결혼 이민자에게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소라미 변호사는 국적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한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에 대한 입증 책임을 완화하고, 통역서비스 법률지원 시스템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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