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유예하는 노조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간 ‘이해관계’

정희선 | 기사입력 2006/09/13 [03:08]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유예하는 노조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간 ‘이해관계’

정희선 | 입력 : 2006/09/13 [03:08]
지난 11일 한국노총, 경영계, 정부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3년 유예한 것을 비롯하여, 해고 시 사전통보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단축시키고, 부당해고 시 복직 대신 금전보상을 명시하는 등 전체적으로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후퇴한 합의안이었다.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이미 1997년에 노동법 개정 때 법제화되었으나 10년째 시행이 유예되고 있고, 이번 3년 유예 합의로 인해 2009년에 시행되는 것으로 미뤄졌다. 2009년에 또다시 유예 합의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합의에 참여한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법개정을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이고, 논의할 시간을 확보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미 노동자의 마음은 잃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을 격렬하게 비난하며 만약 이번 합의안을 입법한다면 10월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현 대립논쟁 속에서,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문제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문제인지, 다가올 복수노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사실상 별다른 대안이나 진지한 논의조차 없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만약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면 이미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성별이나 고용 형태, 직무에 따른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 기업에 정규직 노조, 비정규직 노조가 따로 존재할 수 있고 각기 조합원 조건에 맞는 고용 조건과 임금 협약을 맺는 것도 가능하다.

정규직, 남성, 주요 직무의 노동자로 구성된 현재의 노동조합이 다른 조건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경우, 소수의 노동자들이 별도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복수노조 금지 조항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의 단결권을 크게 침해해왔다.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이용하여 유령노조를 만들어 노동조합 설립을 막는 행위에 대해선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조 규약에 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조가입 대상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가입을 할 수 없거나, 아예 가입대상에서 제외되어 복수노조 금지 조항 때문에 따로 노조설립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과 합의해서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설립을 막는데 일조하는 정규직 노조도 있다.

한 산별노조의 간부는 “실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조직할 마음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자신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아무런 생각이 없으면서, 외부로 나가면 비정규직 문제를 떠든다”며 정규직 노조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복수노조가 당장 허용이 된다 해도 비정규직 노조 설립이 크게 가시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설립된다 하더라도 정규직 노조에 비해 교섭권을 보장 받지 못할 것이다. 정규직 노동조합 또한 기업 합병 등에 의해 노조 두 개가 병존하게 되면, 기업이 선택적으로 입맛에 맞는 노조를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는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모 노동조합의 여성간부 A씨는 “현재 가입되어 있는 노조는 남성조합원 위주의 사업을 하고 있다. 승진, 복지 등의 여성조합원 문제는 항상 부수적인 문제로 취급한다. 여성간부들끼리는 복수노조 허용되면 따로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눈다고 한다. 비정규직뿐 아니라 여성조합원들도 노동조합 내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복수노조 즉각 시행이라는 주장만 앞세우기 전에, 기존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으로 비정규직 노조의 활동과 노조의 건강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기존 노동조합이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라는 주장의 근거는 ‘안정적인 노조활동의 보장’이었다. 그러나 합병, 구조조정, 비정규직 증가, 하청 사업장 문제 등 노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노동자의 고용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규직 노동조합은 전임자 임금 문제를 ‘풀타임 전임자 몇 명의 임금을 확보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별 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하고 있는 조건 속에서 교섭, 정책 등 많은 노조의 기존 사업들을 산별노조 중앙에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기업별 노조에서 전임자가 할 사업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한 산별노조 지부에서 현재 전임하고 있는 한 간부는 “지부장이 전임자라고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반 전임이다. 술 마시면 점심시간 지나야 출근하고 개인적인 영수증까지 조합비로 지불한다.”며 노조 전임을 마냥 좋게만 볼 수 없는 현실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또한 기업에서 임금을 받는 노조 전임자와 노조에 채용된 활동가와의 임금 차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과제다. 산별노조나 연맹에서 일하는 채용 활동가의 임금은 공개되었지만, 전임자 임금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르는 상황과 비슷하다.

달라진 고용현실에서 전임자에게 지급될 임금과 시간을 비정규직 노동자와 소외된 직무의 조합원과 나누는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전임자 몇 명을 확보하냐 문제가 아니라 조합원의 근무시간 내 교육 시간 확보, 여성조합원의 활동 참여 보장, 비정규직의 노조 전임 참여 등의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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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8최고 2009/03/07 [12:51] 수정 | 삭제
  • 하지만, 지금처럼 정규직위주, 원청업체위주, 남성위주의 노조가 협상을 통한 혜택을 받는 1순위가 누구 였나요?...기존노조가 정규직들 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를 고수한다면, 비정규직,하청업체직원,여성들은 자기들의 이익집단을 만드는것. 당연한것 아닌가요?
  • - 2006/09/24 [10:44] 수정 | 삭제
  • 글쓴이는 "기존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지, '복수노조 허용 = 비정규직 권리 신장'이라고 거칠게 도식화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일 노조의 힘을 없애버리고 노동자의 요구사항을 하나로 딱 모아오지 않으면 협상하지 않겠다는 것이 복수노조 허용"이라고 하셨는데, 노동자의 요구사항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의 목소리들은 번번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잘 아실 텐데요. 그것은 노동자의 요구사항이 아니라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요구사항이라는 것도요.

    기존 정규직중심 노조가 비정규직을 끌어안으려고 노력했다면, 애초에 비정규직 노조 설립 문제는 담론화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따라서 노조를 세우려는 비정규직들을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누가 일부 노동자를 배제함으로써 노동자의 통합을 방해하고 있는지부터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용노조와 사측이 타협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전체 노동자의 위치와 권리의 보장'이라면 저는 차라리 비정규직 노조의 틀 안에서 내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 흥분한관객 2006/09/19 [19:07] 수정 | 삭제
  • 현상을 서로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정규직의 입장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면 노동자의 위치와 권리 자체가 통째로 위협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미국식으로 해고가 자유로운 노동유연화가 되는 것이지요.

    아래 님에게 묻고 싶네요.
    어떠한 논거로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비정규직의 권리 옹호로 직결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 ?? 2006/09/18 [20:29] 수정 | 삭제
  • 아래 흥분한 분!
    그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하는 분의 입장입니까?
    그럼 복수노조도 허용하지 않고,
    지금 상태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줍니까?
    여성노조는 물론 활동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여성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요?
    노조에서 일하는 분은 아니라고 했지만,
    대책 없는 정규직 노조 입장 그대로 읊으시고 있네요.
    비정규직 노동자도 아니신가 봅니다.
  • 흥분한 관객 2006/09/17 [09:59] 수정 | 삭제
  • 기자님!
    마치 복수노조가 여성비정규직의 권리를 보장할 것 처럼 착각하고 계신것 같은데요. 비정규직은 노조를 만드는 순간 짤리기 때문에 만들 엄두를 못 내었던 것 아닌가요?

    노동의 권리가 노동자에게 주어지지 않는 이상 모두 꿈같은 얘기인거죠.
    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것 자체가 노동탄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겁니다.

    경총이나 재계에서 왜 이것이 발표되고 난 후 만족스러워했겠습니까?
    결과가 누구에게 만족스럽기 때문입니까?
    표면과 현상의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잘 살펴보아야죠.

    말이 좋아 복수노조지, 사측에서 만든 여러 개의 자기 노조들이 노동자들 속에 암약하게 해서 강력한 단일 노조의 힘을 없애버리고 노동자의 요구사항을 하나로 딱 모아오지 않으면 협상하지 않겠다는 것이 복수노조 허용입니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비정규직의 권리 실현은 커녕 아무런 여성의 권리가 실현되지 않는 노동 무권리의 상태가 계속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전임자 지급문제도 그렇습니다.
    노조를 위해 일하는 사람의 월급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 사람도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 돈을 조합원한테 돌리라는 말은요, 여성단체에서 회원들이 자기들의 생활과 안녕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료봉사하라고 하는 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단체의 운영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죠.

    그래서 말입니다. 다시 잘 고민해보셨으면 해요.
    지금의 정부에서 내세운 비정규직 법안이 절대 비정규직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요.
    비정규직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고 더욱 우리의 노동을 유연하게 만드는 한 과정에 있는 법안입니다.

    저는 노동조합에서 일하거나 노동자는 아닌데요. 로드맵이 뭔가 궁금해서 거기 계신분들에게 물어봤었거든요. 여성의 노동권리 실현을 위해 지금도 한여노협이나 여성노조가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더디더라도 우리 여성들의 요구를 주장하고 싸워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길입니다.
  • diary 2006/09/14 [16:02] 수정 | 삭제
  • 이번 상황을 보면서 노총의 의사결정 과정이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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