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여성들은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들이 없이는 교회 운영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말은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봉사’에만 한정되고, 실질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노골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여성사목의 전망’ 심포지엄 자료집서 제외 지난 7일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여성소위원회는 설립 5주년을 맞아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21세기 가톨릭 여성사목의 전망’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가톨릭 교회 안의 수직적 위계구조와 성차별적 문화를 지적하고, 여성 신자들의 역할을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심포지엄에선 ‘현장에서의 여성문제와 가톨릭교회에 거는 기대’라는 주제로 패널토의에 참석하기로 한 이경희 경남여성단체연합 전 상임대표의 발제 내용이 자료집에서 제외된 채 배포돼 물의를 빚었다. 이는 주최 측이 발제문을 검토하고 담당 신부와 주교의 허락을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대로 배포할 수 없다고 문제 삼아 고의로 빠뜨린 것이라 충격을 주고 있다. 자신의 발제문이 빠지게 된 경위에 대해 이경희씨는 천주교에서 금기시되어 왔던 “여성사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 때문이라고 밝혔다. 행사 주최 측에서 ‘주교회의나 천주교가 공식적으로 (여성사제) 발언을 허용치 않고 있어서, 천주교 주교회의의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그대로 실을 수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발제문 수정을 요구하는 주최 측과 이에 불응하는 이경희씨 의견이 맞서면서, 이씨가 행사에 불참하겠다는 결정까지 내리게 됐다. 그러나 후에 이경희씨는 발제문은 빠졌지만 “발표를 통해 발언의 통제과정에 대한 내용까지 함께 알리는 것이 천주교 내의 차별적, 억압적 관행을 문제 삼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결국 이씨는 자신의 원고에서 '문제' 부분을 삭제하고 유인물로 복사해 나눠주는 것으로 합의한 다음 패널로 참여해, 자신의 발제문이 심포지엄 자료집에서 빠지게 된 경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총무 신부와 위원장 주교의 ‘검열’ 이경희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행사 후에 여성소위원회가 담당 주교나 신부에게 보이기 전에 미리 발언 수위를 염려했으며, 총무 신부와 위원장 주교의 검열을 거치면서 여성사제 주장 뿐만 아니라 성모마리아에 대한 해석도 함께 문제로 지적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가 됐던 이씨의 발제문은 “하느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성모마리아의 희생적인 모성이 여성 신도들의 역할모델로 강조되는 점”을 문제 삼고 있었고, “최근의 성모마리아의의 영성과 역할 등에 대하여 보다 해방적 관점에서 조명되고 있는 새로운 해석과 입장에도 귀를 기울일”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여성소위원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여성소위원회는 주교회의에 소속된 기구이므로 주교회의의 원칙을 따라야 하고, 교황청에서 ‘여성사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덧붙여,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해석의 문제에 대해서는 “주교님이 성모님을 비하하는 듯한 내용이라고 판단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또한 “외국에서 여성사제가 되신 분을 모셔와 강론을 듣기도 한 것처럼 (가톨릭 내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발언하는 것까지 막거나 간섭하지는 않지만, 내부에서는 문제가 될 것 같았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이경희씨는 “여성소위원회 고충도 이해하지만 나는 소위원회 소속도 아니고 밖에서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패널로 초대되었는데 발언을 막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어떤 발언을 허용하고 어떤 발언은 허용하지 않는 것 자체가 비민주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종교 내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고, 이 종교여성들의 성평등 인식 변화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바꾸는데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고 본다며, “성차별의 사각지대이면서도 사회에 미치는 그 영향력은 아직 상당한” 종교의 성차별 문제는 반드시 제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 우위의 교회운영 ‘시대착오적’ 한편, 심포지엄에선 조옥라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사회적으로 여성들이 영역을 확대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만은 유달리 남녀의 역할 경계가 무너지지 않았다”며 문제 제기했다. “한복을 곱게 입고 여성들이 신자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교회 속 여성들의 시대착오적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말에, 객석에서 동의한다는 웃음이 흐르기도 했다. 조옥라 교수는 교회가 관행을 따르기만 하고 있어 “이러한 (성차별적) 측면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며, “남성우위의 (교회) 운영이 도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교회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취약점을 보여준다”고 질타했다. 조현순 창원여성의집 관장은 “신부님들은 자기들만 키운다”는 말로 여성과 평신도를 소외시키고 있는 가톨릭 교회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목소리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면 교회를 떠나야 하는” 수직적인 위계구조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교회를 떠나기로 선택하는 것을 보게 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조현순 관장은 가톨릭 교회의 여성복지 활동과 관련해서도 “양성평등 문제를 얼마나 다루고 있는가”, “교회 내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과 교육은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차별이 “여성복지 대상을 양산하는 근본 요소이며, 여성폭력과 성매매를 용인하는 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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