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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태국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싶은 이은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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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보기에는 답답해 보일 거에요. 안정된 삶이 아니잖아요. 경제적인 독립을 할만큼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쟤가 왜 저러고 있나 싶으실 테고… 많이들 그런 얘기들을 하시는데, 한편으로 맞는 얘기일 거에요.”

그는 어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러니까 부모님이나 그 세대 어른들에게는 “답답하고, 말이 없는 아이”라고 기억되고 있다. 지금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곳에서도 “제가 느리고, 어리버리하고, 잘 몰라서 (어른들이) 되게 답답할 거에요.”라며 지레 먼저 걱정했다.

이 사람은 말할 때 특징이 있다. “아닌 면도 있다”고 부정하면서도 “그 얘기가 맞는 면도 있을 것”이라고 운을 남긴다. 가령, 자신이 ‘말없는 사람’으로 규정되는 것에 대해 맞는 면이 있다고 고개 끄덕이다가, “또래와 있을 땐 말이 많을 수도 있고…”라고 덧붙인다. 그리곤 “내가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른 상황에 대해 반론설명을 한다. 조용한 어조로. 이런 모습으로 보아 은근히 고집이 센 사람일지도 모른다.

“제가 낙천적인가 봐요. 이제는 뭘 할지 알겠으니까, 저는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그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현실로 옮겨질지도 모르는 꿈 얘기를 하면서 ‘꿈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의 성격에 대해, 어른들은 정말 답답해할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은 ‘맞는 얘기’를 그에게 할 수 있겠지만, 낙천적인 그에겐 큰 걱정거리로 다가오진 않는다.

인권과 미술의 관련성

그의 꿈은 동남아시아, 그것도 특히 태국에 가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태국은 그가 좋아하는 나라다. 그는 조소를 전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 인권관련 재단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그에겐 이 모든 것이 관련성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인권이 미술을 가르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나?”라고 질문하면, 적절한 답변을 해야 하는데, 설명을 그럴 듯하게 해본 적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 동안은 혼자 마음 속으로만 이야기하고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의 답변을 공개적으로 같이 한번 들어보자.

“인권의 영역이란 넓잖아요?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처럼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 영역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가난한 나라에 가서 미술을 가르친다고 한다면 ‘가난해서 먹고 살기도 빠듯하고 바쁜데 그런 곳에서 예술은 사치’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제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은 무슨 세계적인 작가를 키우기 위한 것도 아니고, 훌륭한 예술인을 키운다는 것도 아니고, 제가 그럴 능력도 안되고요. (웃음) 그렇지만 아이들이 커서 농사를 짓든,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든, 다른 일을 하든, 미술을 통해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저는 그렇게 가르치고 싶어요. 특히 가난하고 각박한 곳에 사는 아이들은 그런 교육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인권과 미술의 관련성’에 대해 대단한 논리를 제시하진 않았지만,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고개가 끄덕여지고 따스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행복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농사를 짓든, 공장에 다니든, 어떤 일을 하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관심을 가지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

그래서 그가 꿈꾸는 미술교육은 ‘인권’과 관련 있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내려졌다. 그는 아무래도 말주변이 없는 사람은 아닌 듯하다.

“친구와 있을 때는 말이 많을 수도 있는데… 근데 사람이 3명 이상 넘어가면 말수가 적어져요.” 이 사람의 이미지와 함께 짐작이 가는 대목이 있다. “자기를 포함해 2명일 때는 상대에 따라서는 말이 적지 않은데” 거기에 한 사람이라도 보태지면 그는 대부분 “듣는 입장”이 된다. 이 사람은 떠들썩한 분위기보다는 조용한 분위기를, 말보다는 얼굴표정이나 느낌을 중시하고, 나아가 미술이나 음악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같이하면 좋겠다, 재미있겠다

“(미술)작업을 그만 둔 것”은 1년 반 정도됐다. 고등학교도 예술고등학교를 나와서 그때부터는 미술이라는 분야가 자신에게 당연한 것으로 따라다녔다. 그러나 당분간은, 어쩌면 긴 시간 동안 작업을 안 할 것 같다고 한다. 작업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하는데, 자신은 게으르고, 느리고, 어리버리하고… 사진 찍는 것도 재미있어하는데, 정작 작가처럼 작업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작업이 아니라 (하고 싶은) 뭔가를 찾았다”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알게 됐으니. 지금은 “태국어를 어떻게 배우나”부터 시작해 실제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작업을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겠지만, 저는 (한참 뜸 들이다가) 현장에서 뛰고 싶은 거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생각보다 아이들을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애살스럽게 사람들한테 못하거든요. 근데 제가 자연스럽게 대하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대하더라고요.”

그가 동남아시아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 것은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부터다. 아시아 각 국의 아이들의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는데, 캄보디아의 어느 지역에 사는 8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나왔다. 그 지역에서는 얼마나 가난한가의 정도가 학교에서 얼마나 많이 떨어져있는가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아이의 집은 학교에서 가장 많이 떨어져있는 거리에 살 정도로 가난했다.

아이는 날씨가 우기에 들어 비가 많이 올라치면 무릎까지 물이 차는데도, 먼 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녀와서 방과후에는 고기 잡는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 살았다. 그렇게 하루 일이 마치고 난 뒤에서야 숙제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아이는 기를 쓰고 공부를 하면서 “학교에 갈 수 있는 것만 해도 행복해하더라”는 것이다.

“여덟 살, 아홉 살쯤 되는 아이였는데, 아이의 얼굴은 아니었죠. 고단함이 얼굴에 묻어있었어요. 그때 저는 ‘저런 동네에도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겠다. 저런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미술공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미술이니까. 그런데 아이들한테 베푼다는 말 같은 것은 싫어요. ‘같이하면 재미있겠다 라는 거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내가 성자도 아니고 뭘 베풀겠어요?”

그는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가지게 됐는지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주변에 얘기해본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언젠가 자신을 답답해하는 어른 중 한 명인 어머니에게 잠깐 언급한 적이 있긴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여기서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왜 그런 곳에 가려고 하니?”라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면 거기가 안될 이유가 뭔데?”라고 반문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자세히 말로 설명할 순 없고, 뜻을 굽힐 수는 없고, 해서 그가 한 마디로 던진 대답. “여기는 추워서 못 살겠다”였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는 14년 동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 독일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 외가에서 어머니와 줄곧 같이 살았다. 그 사이에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는 몇 년 전에 재혼했다.

“이혼도 그래요. 제가 이런 것에 관념이 없어서 그럴까요?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터부시하고 그러지 않거든요. 난 부모님이 이혼할 때도 ‘진작에 하시지’ 그랬어요. 사이가 안 좋으면서 같이 사는 건 나한테 오히려 안 좋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제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거고. 다만 명절 때는 이쪽에도 가야 하고, 저쪽에도 가야 하니 귀찮긴 하지만. (웃음)”

만약 혼자 낯선 나라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면 외롭거나 두렵지 않겠냐고 질문해봤다. “그런 건 두렵지 않다”고 한다. 대신 “그런 것이 두려워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 되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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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26 [22:56]  최종편집: ⓒ 일다
 
언니 06/09/26 [23:16] 수정 삭제  
  공감이 가는 인터뷰네요.
"같이 하면 좋겠다, 재미있겠다"
"그런 게 두려워서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면 되겠나"
그런 초심을 잃지 말자고 제 자신한테 말해주고 싶어요.

천천히, 확고하게, 꿈을 이루시길 바래요.
one 06/09/26 [23:57] 수정 삭제  
 
꿈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심이 06/09/27 [16:58] 수정 삭제  
  좋군요..
06/10/01 [18:14] 수정 삭제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꾸준히.. 꿈을 실현시켜나갈 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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