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의미를 모르는 학교

초등교사가 된지 한 달

장이 | 기사입력 2006/10/03 [18:29]

‘인사’의 의미를 모르는 학교

초등교사가 된지 한 달

장이 | 입력 : 2006/10/03 [18:29]
이제 막 일한 지 한 달이 지난 OO초등학교에서, 몇 년 동안 고수해 온 학생들의 인사말이 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은 인사가 바뀌었지만, 불과 몇 일 전만해도 이 학교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인사를 할 때 무조건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말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억지로 이렇게 인사하는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몇몇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너무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아이들에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따위의 인사를 하도록 만드니, 아이들이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위계적이고 답답한 이 분위기를 깨고 싶어서,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웃으면서 밝게 인사를 하는 방법밖에는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어색한 듯 그냥 나를 지나쳐갔다. 하지만 몇 번 더 나와 마주치게 되면서부터 달라졌다. 이젠 아주 밝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어느 순간 함께 웃으며 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게 됐을 때 마음 찡했다. 아이들은 이제 인사의 진정한 의미가 ‘상대방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되지 않았을까.

열람실 책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 학교에선 도서관 열람실 시간이 끝나는 오후 4시에 도서관에서 직원조회나 연수를 갖는다. 오늘은 오후 3시에 연수가 있었는데, 교육청에서 내려왔다는 ‘체벌금지’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이젠 물리적인 가해를 하지 않아도 아이를 교실 밖에 세워두는 것도 체벌이고, 체벌을 가하게 되면 선생님 편은 점점 없어져 가는 추세니 정말 피곤해진다는 말들을 들으며 앉아있었다. 그 때 갑자기 교감선생님이 고함을 질렀다.

고개를 들어 보니, 도서관 열람실 책상을 가득 메운 선생님들 뒤로 족히 몇 십 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1초 만에 나가!”

교감선생님의 고함 소리에, 아이들은 구석에서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일렬로 줄을 만들어 도서관에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아찔했다. 누가 누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지? 지금 이 시간에 도서관 열람실 책상의 주인은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선생님들 마음대로 모든 책상과 공간을 차지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선생님들이 회의하고 있는데 나가지 않고 있다며 아이들을 향해 호령을 치다니….

선생님들을 향해 이제 아이들에게 체벌을 하면 안 된다고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자신들에게 폭언을 하며 도서관에서 내쫓는 교감선생님을 보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선생님들이 버려야 할 ‘두려움’

일련의 일들을 지켜보고 겪으면서, 학교가 학생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히려 학생들의 권리를 빼앗고 통제하기에 급급한 모습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아이들에게는 그들의 욕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말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학교라는 공간에선 선생님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학생들은 주어진 명령을 따르는 것 외엔 그 어떤 다른 경험도 하기 어려웠다.

달리 생각해보면, 선생님들 또한 아이들을 통제대상으로 대한 경험밖에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면, 학교의 질서가 엉망이 되고 선생님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권위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학교에는 대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대화와 소통일진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는 그렇게 학교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눈과 귀와 입을 닫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파파 2006/10/07 [01:18] 수정 | 삭제
  • 학교와 감옥과 공장은 동일한 구조, 즉 "감시와 처벌"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푸코의 말이 생각납니다. 감시와 처벌은 일방이 타방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으며, 타방은 일방의 교화와 계몽을 통해서만이 바람직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근대 계몽주의 철학의 산물이죠.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의 정당화는 바로 이러한 이분법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교사의 학생에 대한 지배 역시 다를 바 없습니다.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벌어지는 교실의 일방적 권력행사를 해소시키는 것, 그것이 오늘날의 교육이 목표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 .... 2006/10/04 [12:07] 수정 | 삭제
  • 1개월 된 학교현장의 이야기라니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