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위한 그림책 만들고싶다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 심상진

박희정 | 기사입력 2006/10/03 [22:24]

어른위한 그림책 만들고싶다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 심상진

박희정 | 입력 : 2006/10/03 [22:24]
대추리로 향하는 버스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옆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자 “그럼요!” 라고 대답했다. 경계심과 테두리를 허무는 경쾌한 어투였고, 의례적이지 않은 상큼함이 있었다.

평택시청부터 대추리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낯선 이의 질문에도 꼼꼼한 자기 생각을 전하는 성실함이 좋았고, 그녀가 가진 그림책에 대한 생각이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 건네 받은 명함을 펼쳐 들고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사람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글과 그림

상진씨는 생태적인 삶을 주제로 한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를 만들고 있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그림공방’ 활동을 통해 민중미술을 고민한 ‘그림쟁이’로서, 어린이 책의 편집자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림도 그림책도 상진 씨에게는 “세상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림책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이고,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면서 상상력을 배가 시키고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매체”다. 꼭 어린이 그림책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그는 “그림을 전시하는 것만으로 채우지 못하는 것을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림책을 만든다는 일에 매력을 느꼈고, 책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싶어서 출판사에 들어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판사에 들어온 지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상진씨는 “깨끗한 우리말, 입말을 살려서 쉽게 쓰는 것을 중요성”을 크게 배웠다고 한다. 이곳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제일 잘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도 농부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좋은 글이죠. 요즘 들어 정부정책들도 영어로 이름을 만들고 홍보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비민주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뭘 하겠다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는 국민들이 생긴다는 거잖아요. 영어를 쓰는 것이 고급문화, 유식한 것이 된다는 것. 쇼 프로조차도 영어를 쉽게 쓰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은 문제죠.”

그에겐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가르치는 사람조차도 ‘그림을 잘 몰라서’라는 말을 해요. 보고 무슨 생각이 드는지 어려운 그림들은 소통하지 않으려는 거죠. 너무 구구절절 설명해서 매력이 없는 그림도 좋지 않겠지만, 알아듣지 못하게 혹은 모호함으로 치장해서 ‘있어 보이려’는 그림들은 거짓말이고 사기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과는 책을 만들지 않을 거에요.”

나무 한 그루가 아깝지 않은 책

책을 만드는 과정은 아무리 빠듯하게 잡아도 수십 명의 손을 거치게 된다고 한다. “기획을 하고, 작가를 섭외하고, 책을 쓰는 것 같이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과정말고도, 인쇄과정 하나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하고, 제본 홍보 그 이후에 책을 서점에 넘기고도 수시로 챙겨야 하고, 반품이 들어온 책을 분류하는 등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책 한 권의 뒤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정말 ‘좋은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우리 출판사에서도 ‘나무 한 그루가 아깝지 않는 책’을 만들자는 말을 하거든요.”

예전에는 그림책의 그림을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애들을 위한 책이라 쉽게 보는 작가들도 있었다. 상진씨는 얼마 전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낸 모 화가와 모 교수의 작품을 보았는데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이 책을 보게 될 아이가 몇 살인가 그런 것에 대한 고려가 안 보이는 그림을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그림책의 그림은 텍스트와 결합해서 서로를 보완하는데 그것에 대한 고려도 없어 보였죠. 무엇보다 맨 앞장의 그림과 뒤쪽의 그림의 밀도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 보여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상진씨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순수미술보다 낮게 보거나 글의 보조로 보는 생각이 아니라, (그 일 자체를)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그림을 그릴 때 훨씬 좋은 작품이 나와요.”

그는 좋은 책이 많이 나오지만, “좋은 우리 책은 많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다. “사는 문화, 모습도 다른 아이들이 나오는 책들도 물론 좋은 거지만, 비슷한 삶 혹은 이 땅에서 조금 나아졌으면 하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읽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어도 괜찮다

올해 서른한 살의 상진씨는 “서른을 넘기는 것이 어려웠다”. 어릴 때 “서른”이라고 하면 “무언가를 좀 이루었거나, 하나로 파고들 길을 좁혔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서른의 자신은 그렇지 못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뭘 잘할 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이 “그럼 조금 더 오래 살아보면 되겠네.”라고 했다며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짓는다.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어도 괜찮다”는 것이 서른을 넘긴 상진씨의 현재진행형 결론이었다.

“책을 만든다는 게 잠깐 배워서 될 일은 아니”라는 상진씨는 “직접 쓰고 그린 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어른들에게 그림이 너무 멀어요. 회사 끝나고 전시회를 찾기도 힘들고. 만화가 그런 역할을 잘 해주고 있죠. 그림책과 만화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모호한 부분도 있고…. 단순하고 깨끗한 진리를 담고 있거나, 섬세한 감정을 담고 있는 책,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상상이 가득한 책, 가지고 다니고 싶게 만드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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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닥나무 2008/06/16 [22:18] 수정 | 삭제
  • 저와 참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시네요. 나무가 아깝지 않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나
    그림책에 대한 것이나. 저는 동화책이란 말보다 그림책이란 말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하고싶은 일도 동화와 만화의 경계로 구분짓기 어려운, 깊은 책을 그리고 싶어요.
    반가워요
    ^^
  • 공감한자락 2006/10/05 [21:34] 수정 | 삭제
  • 좋은 말이네요..
    쉽지 않은 일..
    나무가 아까운 책들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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