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를 시기하다

작곡가 최의경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6/10/18 [00:02]

광대를 시기하다

작곡가 최의경

조이여울 | 입력 : 2006/10/18 [00:02]
10년 전, 음악과 가요를 좋아하던 그 사람은 엉뚱한 때에 조규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곤 해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이유는 물론 조규찬의 팬이기 때문이겠지만 “또라이”, “미친 X”이라는 둥 별로 팬처럼 보이지 않는 말들을 했다. 그런 말들은 정녕 칭찬이었다.

10년이 지나 어느 영화제가 열리던 공간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예상대로 음악 일을 하고 있다 했는데, 건강은 무척 걱정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볼 겸, 아직도 조규찬을 좋아하는지 물을 겸, 그가 일하는 작업실을 찾아갔다.

결혼하는 이들을 시기하다

“조규찬, 윤종신, 윤상 등등. 어느 시기가 되니 일제히 결혼을 한다는 거에요. 결국 쟤들도 결혼이란 걸 하네? 아니, 쟤들도 하는데 내가 뭐 잘났다고 결혼을 안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규찬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음악보단 결혼 얘기로 흘렀다.

그는 결혼하는 사람들을 시기한다고 했다. 친구들 중에 결혼하는 이들이 생기면서, 점차 자신의 즐거움을 뺏기는 것 같다고 했다. “결혼한 친구들과 만나면 내가 그들에게 맞춰야 하고 배려해야 하죠. 결혼한 친구들은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아요.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는 것이 배려잖아요.”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친구 사이의 ‘배려’라는 말, 공감이 갔다. “심지어 친구들이 아이와 남편까지 대동하고 나오면 재미가 없어지죠. 결혼한 이들이 많을수록 나의 것을 빼앗기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천재들을 시기하다

그가 시기하는 건 결혼하는 이들만이 아니다. “광대, 천재, 순수, 미친 예술가.” 이들을 시기한다고 했다. 이렇게 시기심이 많은 사람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난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며 늘 그 사람의 나이에 집착했어요. 에디슨과 모차르트는 서른 살에 각각 축음기와 <피가로의 결혼>을 만들었고, 폴 매카트니는 불과 스물 세 살에 ‘예스터데이’를 내놨으며, 고흐는 서른일곱에 자살했고….”

자라면서 늘 자신의 나이와 그들을 비교했다고 한다. “음. 괜찮아, 아직 시간은 많아. 그리고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거야! 난 이제부터 노력하면 돼.”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됐다. 어느덧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만든 나이를 넘겼기 때문이다.

“나는 확실히 천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심술 맞게 받아들이고 나서, 이제 그들의 천재성에 대해 진짜 환상과 동경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연륜이나 완숙미에 대한 찬사가 더욱 짜증스러워지는 거고요. 왠지 그들(천재)이 되지 못한 자들의 자위 같아서.”

그는 “위인전 읽기 열풍의 폐해는 이렇게 삼십 대에 고스란히 나타나더라” 하며 익살을 부렸지만, 작곡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천재’ 혹은 ‘천재성’이란 인생에서 꼬리표처럼 항상 따라다니는 화두일 것 같다는 짐작이 든다.

‘재능이 있다’는 것

“그렇지만 작곡을 포기하지 않잖아요?”
“재능이 있으니까요.”

그는 천재를 시기하고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에 좌절하지만, 재능이 있기 때문에 계속 곡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사실 그가 ‘재능이 있다’고 말할 때의 목소리가 너무 자신감 있게 들려서 놀랐다. 그리하여 음울한 삼십 대 작곡가의 넋두리가 될뻔한 인터뷰는 방향을 선회했다.

작곡을 하면서 돈도 벌어야 하는 상황, 뜻하는 바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그 역시 생계비 벌이와 창작활동 사이에서 딜레마를 가진 채, 휴가도 없이 음악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영화음악을 비롯해 여러 영상음악들을 만들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일하는 것은 EBS 방송 프로그램에 삽입될 곡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유아교육 쪽 수요가 많은데 <방귀대장 뿡뿡이>, <뽀롱뽀롱 뽀로로> 등에서 사용되는 노래들이 그의 히트작이다.

“파란 풍선~ 하얀 구름~ 같은 아름다운 곡은 못 만들고요. 락과 블루스 풍의 동요를 만들었더니 신선하다고 좋아하더라고요.” 그는 음악을 통해 아이들이 밝고 명랑한 감정뿐 아니라 “우울하고 슬프고 어둡고 이상한 감정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미를 찾아서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니…. 그도 자신이 하는 일이 “재미있다”는 데 동의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다른 매체들과 섞이며 다른 의미를 갖는 음악을 작곡하고 싶어했고, 작업이 끝나는 대로 음악을 들은 사람들의 피드백도 빨리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인디영화나 다큐멘터리에 삽입될 곡을 만드는데, 돈은 안 되지만 그만큼 자기 색깔대로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재미있다” 했다. 재미가 없으면 왜 이러고 있겠냐며.

인터뷰를 하며 그와 나는 한동안 천재와 음악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인생의 ‘재미’에 대한 이야기로 매듭짓게 됐다. 가령, 아이들이 노래를 녹음할 때 두 손을 꼭 쥐어 앞에 모두고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하면서 부르는 건 ‘재미’가 없는 것이다. 서른 두 해를 보내며 매해 반복되는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재미’가 있는 일이다.

그는 뮤지컬 음악이나 무용 음악을 만들고 싶고, 그러기 위해 보다 많은 정보와 기회가 주어지는 곳에서 음악을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작곡을 통해 먹고 살만큼 버는 지금의 현실에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먹고 살만큼 벌지 못하는 길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자신이 꼭 앞으로 무엇 무엇을 하겠노라, 어떻게 되겠노라 다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 재미있어!’ 한 마디면 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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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2006/10/24 [12:34] 수정 | 삭제
  •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곡들은 요즘엔 외국에서 따오는 것도 아니니, 전문 작곡가들이 한국에도 많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간단 했는데, 일다를 통해서 보게 되네요.
    조규찬을 좋아하시는 군요. 작곡하는 사람들 사이에 유독 인기(좋아하지 않더라도 흥미를 끈다고 할까요) 많은 가수인데 헤이와 결혼한다고, 앨범 작업보다 그 얘기가 더 크게 보도가 되고 했을 땐 별로 좋지는 않더군요. (질투심일까.. ..)
    약간 시니컬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분인 것 같아 부럽네요.
  • TK 2006/10/21 [01:29] 수정 | 삭제
  • 나도 조규찬을 좋아하고
    결혼하는 사람들을 시기하는데. ^^
  • 반짝 2006/10/18 [17:35] 수정 | 삭제
  • 창작가의 삶과 고민이 물씬 느껴지네요.
  • ......... 2006/10/18 [08:33] 수정 | 삭제
  • 거기 나오는 노래가 굉장히 많은데 어떤 곡인지 궁금하여요.
    아동 프로를 좋아해선지, 아는 분 만난 것 같고 반갑네요.
    아이들도 때론 우울하고 슬프죠.
    그런 감정도 인정해주는 자세가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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