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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10년 후에…”
소영, 장미, 영미 그리고 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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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이 내린 강화
전날 내린 폭설과 돌풍으로 제주도행 비행기 몇 대는 결항이었다. 오후 시간으로 접어들어 운항이 재개되면서, 소영 언니가 ‘떠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알려왔다.

소영 언니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우린 내년에 제주도에서 모임을 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아이 둘과 남편과 함께 움직이는 장미의 경우엔 경비가 많이 소요될 것 같아 걱정이었다. “계를 해서 돈을 모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폭설이 내린 강화에서 만나다

이번에 모인 건, 둘째를 임신하고 있는 소영 언니가 “출산하면 한동안 여행다니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소영 언니는 바쁜 일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에서 날아왔다. 김포공항에서 가까운 강화도 모처에 숙소를 잡아두고, 저녁식사를 하고 이야기꽃을 피울 무렵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잠이 들 때까지 눈은 계속 내렸다.

강화도에 갇혀 발이 묶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모두들 내심 ‘오랜만에 만났는데 잘 됐다’라는 생각도 했더랬다. 그러나, 남편과 아이가 있는 소영언니와 장미에게는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 저쪽에서는 “엄마 보고 싶어!”라고 하고, 이쪽에서는 연신 “엄마, 빨리 갈게.”라고 답한다.

“우리 10년 후에 제부도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세상에, 내년 9월이 10년 전에 약속했던 그때란다.

당시 제부도에 모였던 우리들 중 한 사람은 이제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데다가 출산과 양육 등 사정으로, 내년에 제부도에서 모이긴 사실상 힘이 들 것 같다. 그래서 “제부도가 아니라 제주도”로 ‘10년 후에’ 모일 장소가 바뀌었다. 비행기를 타러 떠나는 소영 언니는 내년엔 아마 둘째 아이를 안고 우리를 맞을 것 같다.

10년 전 ‘제부도 모임’


▲ 10년지기 친구들
“우리 10년 후에…” 라는 얘기가 나왔던 그때엔 ‘10년 후’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모두들 고개를 끄떡였다. 그때 우리는 썰물이 밀려간 제부도 바닷가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밤중, 깜깜한 바닷가에 각자 자신이 서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나눴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왜 “10년 후 제부도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는지, 누가 얘기를 꺼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낭만’하면 둘째 가면 서러워할 군상들이 모여서 그랬을까. 우리는 갯벌 위에 퍼질고 앉아 “10년 후에 꼭 이자리에서 만나자”고 다짐까지 하고, 또 각자 노래도 한자락씩 뽑았다. 술잔을 몇 번 비운 다음 취기가 흥건히 오를 무렵, 밀물때가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우리가 방파제 위에 올라섰을 때는 이미 사방은 물이 차 바다로 변했다. 바다와 마주하며, 우리는 각자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세월이 마구 흘렀다. 밀물때가 순식간에 들이닥치듯 9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 되돌아보니 시간이란 게 그렇다. 20대의 치기로는 세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눈물을 글썽였던 시간도, 안개속을 지나가는 것처럼 막막했던 순간도, 큼직큼직한 사건들이 우리를 지나가기도 했는데, 돌아보면 9년이란 시간도 순간처럼 느껴진다.

9년 전 우리는 모두 비혼인 상태였다. 여자 넷, 남자 하나. 다섯 중 소영 언니만 30대였고 모두 20대였다. ‘제부도 모임’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 친구와는 연락이 끊겼고, 그 빈자리를 40대인 영미 언니가 채웠다. 다섯명은 무리를 지어 일년에 1~2번은 모여서 여행을 다니곤 했다.

여행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라서 각자 국내든, 국외든 여행을 하거나 일을 하러 나가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만나게 되면 의기투합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휴가를 같은 기간에 내고 여행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해, 우리의 여행에는 사람들이 둘이나 더 불었다. 장미와 소영 언니가 연애를 해서 남자친구를 데리고 합류한 것이다.

이들은 둘 다 비혼을 고집했던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웬걸, 피임에 실패하거나 여차 저차한 이유로 두 사람은 연이어 결혼을 했다. 결혼 후엔 그들의 임신과 출산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러던 사이 서른을 넘기던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바빠졌다. 이제는 오십대를 바라보는 영미 언니도 일로 여전히 바빴다.

그래서 최근 몇년 동안은 한자리에 모이는 게 여전처럼 쉽지 않았다. 이번엔 모처럼 여자 넷이 남편과 아이들을 떼놓고 만났다. 10년 후엔 제주도에서 오토바이렌트점을 열겠다며 입버릇처럼 말하던 ‘제부도 모임’의 유일한 남성 동지는 상경한 부모님 수발을 드느라 강화도에 오지 못했다. 잠깐 들르겠다고 했지만, 장남인 그는 올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다보니 여성 동지들만 모이게 됐다.

서로를 지켜봐 온 친구들

▲ 강화의 겨울
10여 년 사이에 가장 큰 변화라면, 세 사람의 결혼과 출산이었을 것이다. 강화도에 오지 못하겠다고 연락을 해온 ‘제부도 모임’의 유일한 남성동지도 결혼을 하고, 아이 아빠가 되었다. 이제는 안부를 전함에 있어서도 아이와 배우자에 대한 것까지 포함되고, 화제도 아이 양육과 관련된 것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당시엔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차를 렌트하곤 했는데, 이제는 자가용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장미 부부는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어서, 자전거 문화에 관련해서도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10년 사이에 머리가 반백이 된 영미 언니, 그리고 팔팔했던 20대였던 우리들 눈가엔 주름살이 생겼다.

그러나 여전한 건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가 선 자리에서 본 것에 대해 의견을 가감없이 얘기한다는 것이다. 놀러온 자리인데도 내내 그런 이야기가 단골 주제였다. 그리고 어디서 결혼을 했든 안했든, 우리들 사이에서의 대화에는 큰 장애가 되진 않는다. 때론 약 올리기 좋아하는 영미언니는 “장미와 소영이는 이렇게 생산성이 높은데 너는 뭐하니?”라며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놀리곤 한다.

장미는 나와 단둘이서 있게 되니 연애예찬론자인 장미는 “언니 연애해?”라고 묻는다. “연애에 대한 욕구도 없다”고 답했더니 “연애도 안하고, 욕구도 없으면 어쩌겠다는 거냐?”고 탄식을 했다. 사정을 알면서도, 다음날 둘만 있게 된 자리에서 또 이런다.
“언니 예전에 아이 기르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나 입에서는 진지한 답변이 나와다. “참, 예전에 내가 그랬지? (비혼으로) 아이를 낳든, 입양을 하든 지금 여건에선 그런 생각 못하고, 안한지 오래야. 하긴 아이를 돈으로 키우게 아니니 경제적인 여건만이 다는 아닐텐데, 그치?”라고 했더니, “경제적인 거 따지면 못낳지. 우리는 계획도 안했는데 덜컥 생겨서…” 그런다.

예전엔 같이 붙어다닐 땐, 사소한 것까지 미주알 고주알 죄다 얘기하던 사이였다. 날씨가 춥긴 했지만, 한 낭만하는 우리는 눈 덮인 풍경을 감상하러 산밑으로 접어들었다. 걷기가 편해서 쓸어놓은 눈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다 눈을 쓸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누군가의 수고와 노력으로 길을 편하게 왔다는 생각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 길을 다시 따라 나오며, 그동안 주변 사람들과는 거의 얘기하지 않고 있었던 사적인 주제들에 대해 속내를 잠깐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 사이여서 그런지, 서로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누구보다도 더 공감을 해준다. 고마운 친구이다.

영미언니는 사무실에만 박혀 사는 것같은 30대의 인생이 못내 안타까운지 헤어지면서도 “쉬엄쉬엄 일하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헤어질 무렵에는 조금 아쉬웠다. 생활에서 오는 변화와 정서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지 못한 것 같아서. 24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각자 모이고, 식사하고, 이동했던 시간을 빼면, 얘기할 시간은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비록 만난 시간은 짧지만, 우리는 10년을 서로 지켜봐왔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헤어지고 나서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만남의 여운이 계속 남는다. 나를 지켜봐온 친구들, 내가 바라보며 의지했던 사람들. 자꾸 그들의 이름이 입가에 맴돌아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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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2/19 [23:12]  최종편집: ⓒ 일다
 
skffl 06/12/20 [06:55] 수정 삭제  
  나이를 떠나서 친구 관계를 갖는 사람들은 참 좋을 것 같아요.
06/12/20 [23:47] 수정 삭제  
  우리도 오랫동안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사이로, 서로를 지켜봐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만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서로 소원해지고 어색할까봐 걱정이 되고, 그렇게 친구를 잃어가는게 아닌가 걱정되기도 합니다.
마음 편하게 서로를 지켜봐줄 수 있다는 건 뭔가 통하고, 믿기 때문일 것 같아요.
고대 06/12/24 [02:07] 수정 삭제  
  친한 친구들과 여행을 꼭 한번 다녀오려고 해요.. 매년.
1년동안 자주 보지 못해도, 한번씩 만남이 더 가깝게 만들어주기도 하죠.
쌓인 이야기들 풀면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여운으로 남기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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