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의 ‘여직원 신화’

채용서 퇴직까지 성차별 현황 드러나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6/12/20 [04:25]

증권사의 ‘여직원 신화’

채용서 퇴직까지 성차별 현황 드러나

조이여울 | 입력 : 2006/12/20 [04:25]
증권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연구자료가 나왔다. 증권노조는 여성위원회와 연구원 4인이 공동으로 지난 8개월간 <증권산업 여성.비정규직 고용실태조사>를 실시해, ‘채용에서 퇴직까지 노동생애로 바라본 차별과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

증권노조 측은 고용차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선 인사기록과 통계자료가 중요한데, 대다수 증권사가 성별로 구분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있다 하더라도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실제로 근거를 가지고 차별행위를 문제 삼거나 대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번 연구결과는 중요한 자료라는 것이다.

이 연구는 한국증권업협회에 가입되어 있는 국내 33개 증권사 중 기업실태조사에 응한 17개 증권사에 소속된 2천10명의 개인설문과 11명의 심층면접을 통해 조사됐다. 증권사들의 인력운용 현황과, 채용부터 퇴직에 이르는 인사관리 제도전반과 운용실태, 여성인력고용의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모성보호 및 육아지원제도 등을 파악한 자료다.

‘부장급’ 남성 1010명, 여성은 10명에 불과

 

조사결과에서 주목할 통계는 증권사의 ‘업무’가 성별에 따라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승원 연구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주로 여성은 관리업무(지점관리, 콜센터 등), 남성은 영업업무를 담당하는 성별 분업체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채용과 배치 단계서부터 성별 분리현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비정규직에 있어 더욱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증권사의 업무배치별 인원현황을 보면, 정규직의 경우 ‘지점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전체 1천865명 중 1천604명(86%)이 여성이며 남성은 261명(14%)이다. 기업에 따라 지점장을 지점관리 업무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지점장을 제외한 ‘지점관리’직 남성 인원수는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지점영업’ 업무의 경우는 여성이 16.1%, 남성이 83.9%를 차지한다.

비정규직의 경우엔 성별 분리채
용과 분리배치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점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전체 1천13명 중 여성이 996명으로 89.3%를 차지하는 반면, 남성은 17명(1.7%)에 불과했다. 비정규직 콜센터의 경우도 여성의 비율이 95.6%를 차지했다. 역시 ‘시설관리’나 ‘잔담투상’ 업무는 남성이 90% 넘게 차지하고 있다.

한편, 정규직 노동자들의 직급별 현황을 보면 ‘부장급’은 남성이 1천10명에 달하는 반면 여성은 10명에 불과해 충격을 주고 있다. ‘차장급’은 남성이 2천81명이며 여성은 34명이다. ‘과장급’도 남성 2천329명, 여성은 223명이고, ‘대리급’은 남성 2천412명, 여성이 795명이다. 즉 여성노동자들은 직급체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고용형태별 초임 격차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17개 기업현황의 평균을 내면 정규직 남성의 초임을 100으로 보았을 때 정규직 여성은 66.6, 비정규직의 경우 38.1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승진에 필요한 근속년수나 급여의 차이는 학력과 군필 여부, 그리고 업무배치와 고용형태와 관련이 있어서, 여성노동자의 고용차별실태는 복합적인 다른 차별요인들과 맞물리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하위업무에 여성집중, 비정규직화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 주요하게 제기된 것은 증권산업 ‘비정규직’ 고용실태와 관련한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 비율이 가장 높은 직무는 ‘콜센터’로 88.8%로 나타났고, 지점관리와 본사일반사무직의 비정규직 비율은 30% 수준으로 나타났다.

혜영 연구원은 “여성들이 집중된 직무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으며, 콜센터 업무 비중은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데 이 직무를 아예 비정규직으로만 고용하는 증권사들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비정규직의 업무 내용은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통해 확인됐는데,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여성들의 83.0%가 “정규직과 거의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동일한 업무를 하지만 임금은 확연히 차이가 나며, 근속인정이나 승진의 기회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계약 갱신을 많이 하고 근속이 오래되어도 임금 상승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김은아 연구원은 증권산업의 여성 고용의 특성이 “하위업무와 하위직급에 여성들이 집중되고, 여성집중업무가 비정규직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리업무와 콜센터 등에 여성들을 집중 채용하는 것은 ‘여성은 단순 반복적이며 보조적인 업무에 적합하다’는 성차별 인식에서 오는 것이며, 객관적인 직무분석이나 평가 없이 인사관리 전반에 걸쳐 구조적으로 여성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합리적 직무분석 통해 ‘간접차별’ 해결해야

설문에 응한 응답자들은 공통적으로, 증권사들이 ‘영업업무는 수익과 매출을 내는 업무고, 관리업무는 비용이 드는 업무’라는 식으로 여성들이 다수 일하는 ‘직군’에 대해 평가 절하해 보다 값싸게 여성노동력을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11일 여의도 교보증권 본사에서 열린 연구조사결과 발표자리에서, 김진(법률사무소 이안) 변호사는 “구인 사이트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여직원 채용’ 광고에서 보듯, 여성이 담당하는 업무는 보조적이고 부수적인 일이라는 ‘여직원 신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김진 변호사는 “노동 가치와 강도의 본질적 차이가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골라, 그 범위를 계속 좁혀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희선 연구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이야기하며, “성차별적 인식이나 경영적 편리가 아닌,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 직무 분석을 실시하고 통합적인 직무체계와 가치를 산정해 임금 규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은순 증권노조 여성위원장은 사측과의 임단협 교섭과 조합원 교육 등을 통해 노동조합이 해야 할 과제들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그 목소리를 모아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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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럼지 2006/12/22 [12:54] 수정 | 삭제
  • 증권사에 여직원들 비중이 꽤 큰 편인데 부장급은 10명뿐이군요. 끙.
    근데 허락한 증권사만 대상으로 했으니, 전체를 보면 이보다도 더 안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군.
  • 西 2006/12/21 [02:12] 수정 | 삭제
  • 처음부터 이미 출발부터 다르니까, 다른 차별들이 다 옹호되는 식이 되어버리죠.

    부당하다고,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현실에선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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