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성희롱 사각지대?

환자에 대한 성희롱 실태부터 파악해야

정윤진 | 기사입력 2003/06/25 [23:49]

병원은 성희롱 사각지대?

환자에 대한 성희롱 실태부터 파악해야

정윤진 | 입력 : 2003/06/25 [23:49]
산부인과 진료과정에서 의사로부터 온갖 모멸감과 수치심을 경험한 김씨(21세)는 "몸이 아파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의료행위 도중 이루어지는 성희롱과 성추행은 주변에서 단편적으로 듣는 사례나 일간지 단신성 기사를 통해 알려진 사례가 있을 뿐,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 의사에 의한 환자 성희롱 실태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실태 파악이 안되어 있으니 대책도 없다. 여성 환자들은 진료과정에서 성희롱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여성의 몸을 다루는 의사. 몸에 대해 말하고 신체적 접촉이 이루어지는 진료행위와 성희롱의 경계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진료 과정 중 의사의 발언이나 신체적 접촉으로 성적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껴도 뭐라 말하기 어렵다. 특히 '권위'를 가진 의사와 의학 지식에 대해 '무지한' 것으로 간주되는 환자와의 관계가 위계적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입증하기 어려운 진료 중 성희롱

의료진에 의한 성희롱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환자에 대한 성희롱이 법적으로 문제가 된 경우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여성부의 남녀차별신고센터에 신고된 사례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다. 성희롱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정도의 손해배상 정도로 문제가 종결된다. 게다가 명백한 증거나 증인이 없는 경우는 성희롱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 1999년 박OO씨는 **대학 병원에서 간호사 등 제 3자의 입회없이 의사 박##씨로부터 유방암 진료중 질 맛사지법 등 치료방법에 대해 소개받는 도중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에 대해 여성특별위원회에 신고하였다. 성희롱으로 판정이 내려졌으나 가해 의사나 병원에 어떠한 민, 형사상의 문제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조건으로 50만원의 배상금과 성희롱 행위에 대한 공식 사과, 해당 대학이 성희롱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사행한다는 것으로 조정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남녀차별결정례집 1999년-2000년도).

- 2001년 추OO씨는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신장에 기형적인 면이 발견되어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여 수술실에서 역행성 신우조영술을 받게 되었는데 레지던트 3명(남)이 시술을 하였다. 시술 중 의사 5명이 더 들어온 후 레지던트 정○○이 손으로 음핵 표피를 들추고 나머지 8명 정도의 남자의사가 관찰하여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했다. 이러한 추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해자 진술 외에는 증거 자료나 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추씨는 또 다른 성희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검사 과정에서 질 돌출 증상을 말했더니 담당 의사가 돌출된 부위가 있는 질을 만져보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성희롱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환자 본인으로 하여금 질을 만져보라고 하는 것은 진료과정의 일부라는 전문가의 소견에 비추어 성희롱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 남녀차별결정례집, 2001년도).

진료실에 간호사나 제3자가 없는 한 의사와 환자간에 있을 수 있는 성희롱은 '증거'와 '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성희롱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게다가 '전문가 소견'을 내는 전문가는 거의 대부분 의료전문가다. 동료 의료인에게 불리한 의견을 제시할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뚜렷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문가'로서의 의료인이 피해자의 입장에 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마취 상태의 환자나 미성년자에게 이루어지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무늬뿐인 '의사윤리지침'과 겁나지 않는 의료법

현행 의료법상 '비인도적 진료행위' 등으로 "의료인으로서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할 때 보건복지부장관은 1년 이내의 의사면허 취소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성희롱'으로 이러한 처분을 받은 의사는 거의 없다. 환자에 대한 성추행으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경우라도 수년간의 면허 취소 조치만 취해진다. 면허증을 재 교부받을 수 있으며, 다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2001년 제정한 [의사윤리지침]에서 환자에 대한 윤리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환자의 인격 존중을 명시한 동 지침 제16조에는 환자에 대한 폭력금지를 규정해놓고 있다.

"의사는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환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의사는 내진을 하는 경우에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제3자의 입회 아래 시행하여야 한다", "진료 관계가 종료되기 이전에는 환자와의 합의에 의한 경우라 할지라도 환자와 성적 접촉을 비롯한 애정관계를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을 담은 대한의사협회의 윤리지침은 권고안일 뿐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 윤리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이러한 조항을 어겼다해서 해당 의사를 징계하거나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징계권이 없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의사로서 끝난 인생": 성희롱 의사 면허취소하는 미국

미국의 경우 의사가 병원에서 의료행위 과정에 환자에 대해
성희롱을 했다는 사실이 인정될 경우 일차적으로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그 의사의 회원 자격을 박탈한다. 그리고 그의 의사 면허증은 취소된다. 이후에도 면허증 재교부되지 않는다.

미국 보스턴의 한 종합병원 의사 L씨는 "성희롱을 했다면 그 사람은 의사로서의 인생은 접은 거라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성희롱을 한 의사에 대한 징계나 처벌을 강제하는 법적 조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원과 의사 집단 스스로에 의한 자율적인 조치들이다. 그러한 의사가 있는 병원은 나쁜 평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희롱과 같은 행동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진료를 하겠는가?"

환자에 대한 성희롱을 예방하는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L씨는 전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가 의료 전문 지식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한 지배 종속관계가 아니라 의료 서비스 제공자와 구매자라는 대등한 관계가 될 때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인 스스로, 그리고 병원 자체 내에서 자율적인 예방조치와 정책들을 마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병원 운영과 의료 서비스의 질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와 그러한 평가를 일반에게 공개하는 제도, 그리고 성희롱 발생시 사용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법적 장치 때문이다.

미국의 "의료기관 인정 합동위원회(Joint Commission on Accreditation of Healthcare Organization)'는 정기적으로 의료기관을 조사, 평가하는데, 900여개의 병상을 보유한 보스턴의 P 종합병원의 경우 50여명의 조사관들이 일주일 동안 병원에 상주하면서 조사를 한다. 조사 내용에는 의료서비스의 질, 인력 관리 및 병원 운영 전반이 포함되며, 조사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 공개한다. 조사과정에서 만약 성희롱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면, 그리고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병원 측이 취하지 않았다면 의료 서비스의 질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공개될 경우 그 병원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된다. 병원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종합 병원들은 병원내의 의사윤리지침 뿐 아니라 각 진료 부서별로도 그러한 성희롱을 예방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특히 성희롱 발생 가능성이 큰 산부인과, 치과, 진단방사선과 등의 경우 그러한 예방안이나 의사 윤리 강령들을 더욱 정교하게 마련해 놓고 있다. 산부인과 검진이나 유방 검진 시에는 의사 이외의 제3자가 반드시 입회하도록 한다는지, 치과 진료 시에는 반드시 문을 열어놓도록 한다든지, 성희롱 가해 사실을 알고도 알리지 않은 의사도 징계를 받도록 한다든지, 성희롱 사실 확인될 경우 즉각 해고 등의 중징계 조치를 취한다든지.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 같은 자율적인 예방조치를 마련해 놓고 있는 병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 등에서 의사에 의한 환자 성희롱은 규제 대상이 되고 있으나 실효성은 적다. 환자에 대한 성희롱 실태조차 파악되어 있지 않는 지금 단계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환자에 대한 성희롱이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실태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진료행위 과정에서의 성희롱은 환자의 건강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학 교육 및 자율적인 의료인 조직 내에서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것 또한 현실적인 예방 조치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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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2003/07/02 [13:56] 수정 | 삭제
  • 고등학교 다닐때였는데. 장이 안 좋아서 병원엘 갔다.
    엄마가 워낙 비싼걸(?)좋아해서 종합병원 특진엘 갔다.
    오래된 할아버지 의사였다. 장이 안 좋아 설사를 자주 하는건
    속을 봐야 되는게 아니었나?
    엄마는 좀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그 할배가 날 눕히고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더니
    내 성기를 조물락 거렸다. 당황했고 엄마를 쳐다 봤는데.. 엄마는 의사할배 뒤쪽에 있어서 뭔일인지 잘 모르는것 같았다. 당시엔 엄마가 다 알고 있으면서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되서 배신감을 느꼈지만..잘 모르겠다 엄마가 알고 있었는지모르고 있었는지..
    더 황당한건 다음이었다.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일종에sos를 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왔던거다.
    불쾌하기도 전에 당황한 상황이었는데
    간지러웠던거다.젠장.
    오랫동안 죄의식과 혼란으로 범벅되었지만
    어디선가 들었는데 신체적,생물적 반응은 내 의지와 다르게
    작용 할 수 있다고(기분 나빠도 간지럼은 탈수 있다고.기분은 더러워도 웃음은 나오는 뭐.그런) 듣고 어느 정도 도움이 됐지만.
    이게 남자들이 말하는 '생물학적 반응은 역시 본능'이야를
    대변하게 될까 심히 걱정된다.
  • 다람지 2003/06/27 [13:58] 수정 | 삭제
  • 의사의 태도나 눈빛을 보면 알지 않나요?
    진료하는 거라면 몸의 어느 부위를 만지거나 관찰한다해도 그게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죠.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눈치챘을 때 무지 열받는 건데...
    환자가 그걸 못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런 걸 어떻게 입증하느냐가 문제가 되는데 의사말이 기준이 되어버리면 환자들은 당하고 꼼짝도 못하게 되잖아요.
    그게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 예전에 2003/06/27 [10:58] 수정 | 삭제
  • 학생때 산부인과 실습을 하는데...산모가 분만실에서 무척 힘들어 하며 소리를 지르니깐 남자 의사가 조용히 하라고..소리지르면 자궁에 산소가 안가서 아이가 죽는다면서 엉덩이를 찰싹 찰싹 때리는거에요. 그때 정말 놀란적이 있었는데..

    그리고.원래 대학병원이 학생이며,,수련의의 실습장소이긴 해서요. 불필요한 내진을 받을때도 많은것 같아요.

    암튼...학생때 그런것을 봐서 그런지 전 정말 병원 안가요. 그리고 안가려면 항상 철처하게 건강을 체크해야 될것 같아요.
  • -_-; 2003/06/27 [02:11] 수정 | 삭제
  • 전에 어떤 남자의사가...여자환자도 이성으로 느낄떄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말 듣고 어찌나 놀랬는지-_-;;

    어쩜 당연한거겠지만...쫌 어렸던 전 의사는 철저히 환자로서 객관된 시각으로 볼줄알았거든요-_-;;

    그렇다면...
    의사들도 성폭력예방교육도 받아야되니않나요 >_<


    ....
    저는 기사 읽으면서...난 다행히 그런적없네...라고 생각했엇는데~
    그게 아니라...지금 생각해보니 하나 기억나는일이 있네요

    제가 20살때 치과를 갔었는데...
    그 선생님은 치료도구들을 제 가슴부분에 올려두고 쓰시던데...
    가까운데 두고 편하게 할려구 그랬다고 여겼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쫌 불쾌하더라구요...
    제가 글래머래서-_-;;
    가슴살도 풍부하기때문에-_-;;; 무지 신경쓰였다는-_-;;;;
  • 2003/06/26 [12:49] 수정 | 삭제
  • 여러차례 병원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죠.

    일이 벌어질 당시에는 "이게 성희롱인가..."하고 확신을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면...저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니까...그 행동이 진료 과정 중에 필요한 일인지 불필요한 일인지를 함부로 말하기가 힘들어지니까요.

    한 번은 오른쪽 옆구리에 계속 불편한 느낌이 있어서 동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신장 쪽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초음파 검사를 하자더군요.

    함께 온 엄마를 나가게 하고 진료대에 누워 윗옷을 걷어 올렸는데 하의도 성기가 보일 때까지 내리더라구요. 원래 초음파 검사 하려면 그런가보다 했지요.

    그런데 그 병원에서 한달 간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어서(신장염이라고 했거든요)

    다른 병원에 가서 재진료를 받았지요.

    똑같이 신장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윗옷만 살짝 올리는 거에요. (종합병원이고...여자분이었던 것 같아요.)

    '하의'를 내리지 않고도 검사가 충분히 가능했던 거죠. 오히려 하의를 내리는 일은 '필요하지 않은'일이었구요.

    그 때 깨달았죠. 성희롱이었다는 걸. 그리고 제 성기를 슬쩍 곁눈질하던 그 의사의 눈도 떠올랐습니다.

    심지어 제 병은 신장염도 아니었고 배란기때 일시적으로 오는 (양 옆구리에 난소가 있잖아요.) 증상 같다고 하더군요. 신장이 양쪽으로 동시에 아픈 경우는 없다면서..

    그 외에...다른 병원에서도 청진기를 댈 때 가슴을 함께 쥔다던가... 그런 일들을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경우도 '옷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증인'도 없고 제가 민감한 것처럼 몰아버리면 ...항의할 말을 찾기도 어렵고 항의하는 사람이 우스워 지는 분위기고...

    이게 성희롱인지 진료에 필요한 일인지.. 물어 볼 곳도 없고..(대부분 자기 느낌이 정확할 거라 생각하지만요. )

    그래서 그냥 그렇게 넘겨왔던 것 같아요.

    사례를 모으고..여성 입장에서 의과적 소견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정말 중요할 것 같아요.
  • 2003/06/26 [11:53] 수정 | 삭제
  • 몇 번이나 불쾌한 일을 당한 적이 있어요.
    청진기 댄다면서 가슴을 확 들어올려서 너무 놀랐던 적도 있고..
    외과에선 의사가 노골적으로 다리를 쳐다보면서 음흉하게 웃고.
    그 옆에 있던 간호사도 의사가 저런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왠만하면 개인병원은 안 가고. 시간이 더 걸려도 큰 병원에 가요.
    사람이 여럿있는게 안전하다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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