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성폭행이 "말썽"?

언론의 성폭력 보도, 누구의 시선인가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7/01/01 [20:22]

집단 성폭행이 "말썽"?

언론의 성폭력 보도, 누구의 시선인가

조이여울 | 입력 : 2007/01/01 [20:22]
국내 프로야구단 선수 등 3명이 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보도를 접했다. 해당 내용을 보도한 매체는 “프로야구 선수들 집단 성폭행 ‘말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집단 성폭행에 대한 보도는 객관적인 사실전달이지만, 이를 “말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의 주관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연초부터 각종 성폭력 사건이 말썽이다’, ‘공무원이 민원을 성추행 해 말썽을 빚다’, ‘유치원 원장이 원생을 성폭행해 말썽이다’, ‘상습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말썽이다’ 등 성폭력 사건 또는 성폭력 사건이 제기된 것에 대해 ‘말썽’이라고 칭하는 보도는 의외로 많다.

‘말썽’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일을 들추어 내어 트집이나 문젯거리를 일으키는 말이나 행동”이며, 실생활에서 이 말이 사용될 때도 드러나지 않았으면 싶은 일이 드러났다든지, 귀찮게 하거나 일에 훼방을 놓는 행위 정도의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이다.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은 ‘말썽꾸러기’, ‘말썽꾼’이라고 칭한다.

살인이나 유괴, 인신매매, 감금 등과 같은 중범죄가 발생했을 때 이를 ‘말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범죄를 겪은 피해자나 유사 범죄 피해자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보도행위일 뿐 아니라, 다시는 그러한 범죄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에도 반하는 것이므로 보도윤리에 있어 문제의 소지가 많다.

그런데 언론은 유독 성범죄에 대해선 ‘말썽’, ‘물의’ 등의 가벼운 표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성범죄를 그만큼 가볍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성폭력이 ‘말썽’을 일으키는 행위라면, 성폭력 범죄자들은 ‘말썽꾼’에 불과하다.

또한 물의를 일으켰다거나 말썽을 일으켰다는 표현에는,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도 드러난다. 프로야구 선수의 성폭행을 ‘말썽’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구단주나 그 관계자들이며, 공무원의 성추행을 ‘말썽’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관계 부처의 고위직 공무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 자체보다 이 사건이 ‘드러난’ 것이 문제가 된다. 직장이나 학교 등 조직 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서,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섰을 때 가장 많이 부딪히게 되는 어려움이 다름아닌 ‘조직의 물의를 일으켰다’, ‘말썽 피우지 마라’ 하는 시선이다.

즉, 언론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말썽’이나 ‘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보도를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폭력이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을 갖지 못하도록 할 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를 용감하게 드러내어 싸우고자 하는 많은 피해자들을 격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침묵하도록 만드는 가부장적 문화에 동조하는 셈이 된다.

군대 내 성추행이나 성폭행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군기 문란’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도 비슷한 태도다. 성폭력이 있어서는 안 될 범죄이자 모두가 노력하여 예방해야 하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잡음이 없어야 할 군대에 ‘말썽’ 또는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라고 바라보는 태도다.

성폭력이 ‘잘못’이라는 인식은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지만, 성폭력 범죄가 어떠한 가해이며 어떠한 피해인지에 대한 인식은 구성원 집단 또는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르며, 여전히 가해자 중심, 혹은 말이 돌지 않기만을 바라며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조직중심의 인식이 만연해있다. 언론이 성폭력을 가볍게 다룬다면, 과연 누가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수 있으며,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성폭력 범죄를 직시하여 예방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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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아이 2007/01/17 [14:15] 수정 | 삭제
  • 말썽이라고 표현하는 건 분명히 성폭행이 문제가 아니라 성폭행 사건이 드러난 것이 문제라고 보는 것 같네요.
  • 데이지 2007/01/03 [21:49] 수정 | 삭제
  • 가폭도 그렇고, 성폭력문제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거나 선정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신문들이 몇개 있습니다. 방송도 갈수록 그렇구요.
    물의를 일으킨다는 표현도 찜찜했는데..
    기자들이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그런 식의 표현은 삼가야겠죠.
  • 신도선 2007/01/03 [08:57] 수정 | 삭제
  • 당신의 기사의 제목이 중요하오?
    여자한명이 집단강간 당했는데... 그게 중요하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오.
    그런거 봐도 동요없이 이해하고 걸러서 소화할 능력이 있소.
    잘난척은~!
  • gifts 2007/01/02 [20:08] 수정 | 삭제
  • 그렇기 때문에 문제라고 바라보는 태도...
  • bear 2007/01/02 [01:25] 수정 | 삭제
  • 성폭력 문제를 가십처럼 다루는 게 늘 걸립니다.
    집단 성폭행이 말썽에 불과하다니 기자들 진짜 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