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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의미는 무엇인가
네팔 어린이노동자 교육운동을 보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조이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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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약 12일간 네팔에 방문해 민주화 투쟁으로 급변하는 시기의 네팔사회 이곳 저곳을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또한 네팔의 어린이노동자 교육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한반도화해센터의 도움을 받아, 이 프로젝트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다.

노동과 교육, 한국과 네팔의 만남

봉건제도와 10년에 걸친 내전, 그리고 지독한 가난 속에 있는 네팔에는 어린이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국내외 조직과 활동가들이 꽤 있다. <일다>가 보도한 바 있는 ‘희망의 언덕’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다.

‘희망의 언덕’의 특징은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 이주노동자운동으로부터 왔다는 점일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교육 받을 기회를 주고자 하는 이 프로젝트는, 한국에 이주노동을 왔다가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와 불가촉천민 계층의 ‘일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한편으로 이 사업은 한국사회에 이주노동문제에 대해 알리고, 아시아에서 한국이 점하고 있는 위치와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자성해보게끔 하는 목적을 함께 가지고 있다. 즉 단지 자선사업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노동’과 ‘교육’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와 네팔 사회가 만나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현장의 어려움

네팔의 ‘희망의 언덕’ 사업담당자인 먼주 타파(33)씨와 동행하면서 작년 첫 지원을 받은 아이들을 만나봤다. ‘일하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노동자 학교보내기’ 프로젝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선 참여자들이 월 2만원의 지원금을 보내면 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먼주 타파씨가 전국 곳곳을 돌며 교육의 기회가 필요한 어린이노동자를 추천하고 양육자와 면담하며 한국 측 단체와 상의해 대상 아이들을 선정, 학교에 다닐 수 있게 지원하는데 여기엔 분명한 원칙이 있다. 돈만 전달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지, 생활은 어떠한지,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실무자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무자가 일하고 있는 카트만두에서 올해 새로 지원하게 될 아이들이 있는 모랑 지역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 데는 무려 14시간이 걸렸다. 버스도 자주 있지 않을 뿐더러, 네팔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수도 없이 ‘번다’(통행금지)가 걸려 우리의 행로도 4일 간이나 발이 묶였었다. 즉, 어린이들 곁에서 삶을 지켜보고 격려해주며 교육지원을 해주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지원금을 받아도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

더 큰 어려움은, 일하는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희망의 언덕’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학비와 유니폼, 학용품, 책을 살 수 있는 비용이 있다고 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령, 돌 깨는 지역 중에서도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다딩 지역에선, 주민들이 돌이 더 많은 장소로 집을 옮겨가고 있었다. (집이라고 해봐야 나무막대에 천을 둘러놓고 돌로 고정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려면 2시간 동안 걸어야 한다. 하루 4시간을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서 보내야 하니, 일하는 아이들과 양육자들로선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정부로 일하거나 식당 등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노동량이 많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들어 결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몽골인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S를 찾아가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을 땐, 아이를 고용하고 있는 집 주인은 S가 학교 간다고 나가서 놀고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그 집을 나설 때 먼주 타파는 주인이 일을 더 시키기 위해 학교에 보내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에 잘 다니느냐의 문제는, 무엇보다 아이들 본인이 의지가 있는가와 양육자들이 의지가 있는가 여부가 중요하다. 학교에 가고 싶어도 어른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의지가 꺾일 수 있다. 일례로 모 단체의 지원금을 받은 아버지가 딸을 학교에 보내는 대신 그 돈으로 술 마시는데 써버렸다는 얘길 들었다. 이런 경우엔 안타깝게도 아이를 아버지로부터 떼어놓지 않는 한, 누군가가 그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는 극소수일 것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다고는 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거나 아이들과 뛰어 놀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초등교육에 해당하는 기간 외에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거나 대학에 갈 정도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나오기란 어려운 일로 보였다. 결석을 많이 하거나 해서 수업을 못 따라가는 아이들 중엔 글자를 읽고 쓰는 것도 익히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상급학교를 졸업하지 않고선 아이들이 지금의 아동노동 현장에서 벗어나 직업을 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기간산업도 갖추어지지 못해서 사람들이 하루 종일 손으로 돌을 깨서 주워 날라 도로를 포장하고 있는 상황인 네팔에서, 돌 깨는 노동은 너무나 열악하고 전망이 없는 일이다. 땅이든 집이든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고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 계층의 사람들이 이 노동을 담당하고 있다.

갓난 아기 때부터 주위에 보이는 것이라곤 돌무더기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닌다 하더라도 어쩌면 성인이 되어서도 수십 년 간 돌 깨는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할 지 모른다.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은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은 자신의 주위 어른들처럼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일을 하며 비슷한 형태로 살아가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사업 담당자들과 나누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도 교육이다

과연 그렇다면 일하는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교육의 기회를 얻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교육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즉각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건, 어린 시절에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뛰어 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데다가 정부로부터 지원도 거의 받지 못해 교사 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아이들은 널찍한 마당만 주어져도 신나게 내달리며 장난치고 떠드느라 행복해보였다.

‘희망의 언덕’ 한국 측 담당자 역시, 학교에 있는 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노동현장에서 벗어나 쉬거나 다른 아이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즐겁게 뛰어 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돌무더기 혹은 타인의 가정집에선 또래들과 어울려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돈보다 소중한 ‘나의 정체성’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의 의미를 이야기한다면, ‘자기 정체성’을 갖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관광지에서 관광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돈을 벌고 있는 어린이노동자를 만났다. 이 아이들이 버는 돈은 가난한 지역에서 성인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보다 컸고, 노동조합도 결성되어 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일을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돈을 버느라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노래를 하는 두 명의 어린이들에게 학교에 다니냐고 묻자, 2~3학년까지 다녔다고 말했지만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읽고 쓸 줄 안다고 말했지만, 실제론 글자를 읽지도 못했고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돈이 없어서 못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 시간동안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의 액수가 크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가정환경과 양육자의 태도도 영향이 클 것이다.

지금 먹고 살만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관광객을 상대로 호기심과 동정심을 유발하며 전통악기 소리와 노래를 들려주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이름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이 아이들의 삶에 의미가 있는 선택인가 하는 물음을 묻게 된다. 돈을 많이 버는 것과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정체성에 대해 배우기

‘자기 정체성’은 ‘네팔의 정체성’과도 이어진다. 네팔은 국민의 10%가량이 이주노동을 떠나는 국가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주를 꿈꾸는 사회다. 일자리가 없고 사회가 불안정하며 다른 국가와의 환율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다수 구성원들이 이주를 원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자기 정체성’을 잃기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일 것이다.

봉건적 국왕통치에 대항하는 전 시민적인 저항운동이 결실을 거두고 있는 지금, 네팔 사람들은 한편으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지만, 오랜 기간 누적된 가난과 주변 아시아국가로부터의 경제적 침략과 대규모 이주노동은 이들로 하여금 네팔의 정체성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도에 들어선 수 많은 영어학교에는 계급이 높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다니지만, 영어로 수업을 하면서 정작 국어(네팔어) 교육은 선택사항에 불과하다. 또한 자국의 역사에 대한 교육도, 이를 연구하고 집필하는 이들이 없는 관계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다. 이런 현실에서, 어린이노동자 교육운동은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네팔사회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는 데 의의가 크다.

다양한 삶을 접하고 꿈을 갖는 것

먼주 타파씨는 자신이 어린이들을 만나서 하는 일에 대해 “꿈을 파는 일”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보게끔,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희망을 갖게끔 꿈을 심어주는 일을 한다는 얘기다. 사실, 일하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다는 것의 의미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꿈을 꾸게 한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먼주 타파씨는 자신이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말로 아이들로 하여금 많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독려하면서도, 실제론 그 아이들이 세상을 꿈꾸기엔 현실적인 장벽들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과연 잘 하고 있는 일일까 하는 회의에 빠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고, 가능성은 그러한 꿈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꿈이라는 것은 앞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과 새로운 직업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꾸는 꿈은 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것이다. 나고 자라온 공간만이 아닌 다른 공간에 대해서 배우는 것, 주위 사람들이 사는 모습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겪어보지 못했던 인간관계를 겪는 것,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보는 것, 내가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보는 것….

신분제와 성차별에 저항하는 힘

무엇보다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를 통해, 태생적으로 자신의 삶을 제한하며 발목을 잡고 있는 신분제와 성차별로부터 저항할 힘을 키우고 있다. 네팔의 신분제는 관습으로 뼈 속 깊이 존재하고 있어서, 돌 깨는 아이들처럼 최하위에 속하는 신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사람들과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거나 인정 받을 수 없는 현실 속에 있다.

신분은 성씨로 구분되는데, 네팔과 같은 다민족 사회에선 외모만 보아도 어느 정도 가늠해낼 수 있다. 브라만과 같은 최상층 신분의 사람들에 대해선 ‘외모도 예쁘고 머리도 좋고 리더십이 있다’는 식의, 반대로 하층 신분의 사람들에 대해선 ‘못 생기고 머리도 나쁘고 노예근성이 있다’는 식의 편견이 사회전반에 깔려 있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는 같은 자리에 앉지도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도 그에 못지않게 심각해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어린이노동의 문제도 여자아이의 경우에 훨씬 더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고, 한국이 과거에 그러했듯이 딸을 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양육자들도 많다.

신분제와 성차별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 여성들에게서 삶의 많은 기회와 권리를 빼앗기 때문에, 오랜 시간 누적되면서 더욱 더 격차가 벌어지고 이로 인해 차별이 악순환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교육’의 힘이 아니면 누가, 어떻게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건, 자신의 존재를 알고 긍정하며 사회적 편견과 멸시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네팔 사회에서 ‘일하는 어린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정리해 본 사항들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역설적으로, 획일적인 교육제도와 입시위주의 교육열이 가열된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놓쳐버린 교육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게 만들었다.


[희망의 언덕 참여 문의: 02-337-1978 (한반도화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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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20 [07:44]  최종편집: ⓒ 일다
 
교육자 07/02/20 [11:55] 수정 삭제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의미가 가득 다가옵니다.
교육을 왜 희망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오늘날 입시위주 한국교육은 되려 아이들의 정체성을 잃게 만들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나도 한마디 07/02/20 [13:02] 수정 삭제  
 
지나침은 미치지 않음과 같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의 성장력의 바탕이라고 이야기되던 교육열도 실제로는 좋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과잉경쟁과 개인의 영리영달을 위한 것으로 치달아서 현재 가장 풀기 어려운 한국사회이 문제점 중 하나가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교육의 원점부터 되짚어야 하겠습니다. 타 국가의 사례지만, 교육의 의미가 무엇인지 좋은 의견을 제시해주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장혜순 07/02/20 [17:56] 수정 삭제  
  그렇습니다.
현실의 장벽이 높게 드리워 있어도
꿈은 그 높은 장벽을 거둬내는 힘이 있지요.

네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반복되는 그들의 삶의 모양새를 바꿔야해요!
주변의 관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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