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사랑하지 않았던 지난 날

가장 기본적인 권리 찾기를 시작하며

윤수희 | 기사입력 2007/04/09 [20:18]

내 몸을 사랑하지 않았던 지난 날

가장 기본적인 권리 찾기를 시작하며

윤수희 | 입력 : 2007/04/09 [20:18]

중학교 2학년 때 동네 병원에서 발목에 난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어렸을 적부터 내 몸과 얼굴에는 커다란 갈색 점 같은 것도 많았고, 발목에는 말랑말랑한 혹이 있었다. 왜 그런 것인지 병원에 가보았더니, 의사는 나의 혹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우선 ‘열어 봐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난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결과 ‘신경섬유종’이라고 했다. 당시 ‘신경섬유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긴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깨끗하고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와 비교되는 나의 피부를 거울 속에서 보면서, 빨리 어른이 되어 화장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다. 나의 지저분해 보이고 괴물처럼 느껴지는 피부를 가리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의 무던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아님 자신 없는 외모에 일찍 포기를 했기 때문이었을까. 깨끗하지 않는 피부에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피부를 보는 타인들의 말 한 마디에 늘 기분이 나쁘기는 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나는 피부에 대한 자격지심 덕에 바로 화장을 시작했다. 그리고 통통하던 살들을 과감히 정리해나갔다. 일명 강냉이 다이어트로, 하루 종일 밥을 안 먹고 강냉이로 끼니를 때우며 그렇게 살을 빼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밥 먹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또는 용돈을 아낀다는 이유로 그렇게 밥을 거르고 다녔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자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을 하고, 술을 마시고, 아침을 거르고, 커피를 마시고. 젊은 혈기를 자랑하며 건강이라는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몇 년간 백수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밤과 낮을 거꾸로 지내면서 밥도 거의 안 먹고 커피로 하루 끼니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10년간 나의 몸에는 신경섬유종이 심하게 퍼졌다. 중간에 병원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도 딱히 치료법이 없다고 했고, 그래서 그냥 치료를 포기하고 있었다. 의사의 냉정한 말이 나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었고, 나는 나의 몸을 더욱 방치하며 살게 되었다.

신경섬유종이 유전적인 것이며, 정확한 원인을 모르고, 아직 치료법이 없으며, 더욱 번질 가능성이 있고, 수술을 한다고 해도 재발할 수 있다고 하니, 난 전혀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몸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포기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는 어찌 그리도 내 몸을 학대하며 지냈는지…. 내 몸의 건강을 포기한 채 지내온 결과, 서른이 넘으면서 한 달에 한번 씩 병원에서 들락거리며 늘 감기를 달고 살고, 이유 없이 아픈 날들을 많아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업종인 지라, 늘 목소리가 잠겨 있고, 이비인후과에서 주는 항생제에 취해 살면서, 면역력이 극도로 저하되었다.

차츰 나도 뭔가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몸이 아파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고, 정신마저 약해져서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우울해졌다. 오래 살고 싶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날들은 되도록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신경섬유종이 얼굴까지 퍼지기 시작하자 겁이 났다. 내 모습이 괴물로 변하면 어쩌나 하고. 마치 나의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었고 삶의 자신감도 잃는 기분이었다. 피부뿐 아니라, 자꾸 몸이 아프니 삶의 의욕도 점점 떨어지고 다른 욕구도 사라지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카페인으로 인해 수명이 단축이 된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커피의 유혹은 뿌리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인의 소개로 피부 치료를 시작해보았다. 신경섬유종증이 희귀병이라 완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미 유명한 피부과를 몇 곳 다녀본 나는 병원에서 냉정하게 하는 이야기만 듣다가, 나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그분의 이야기에 작은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치료의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 한약을 먹게 되면서 세끼 밥을 꼭꼭 잘 챙겨 먹고, 정한 시간 잠을 자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 몸을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눈물을 흘리며 반성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를 끊게 되었으며, 설탕과 밀가루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나의 몸을 함부로 여기고 지냈던 지난 날들이 무척 부끄러웠고 내 몸에게 미안했다.

제대로 된 영양분도 섭취하지 않고 몸을 방치하고 지내는 동안 나의 몸은 심하게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아직 나는 치료 중이다. 신경섬유종증이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 생명에 지장이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고, 병이 완치되지 않는다 해도 오늘 나의 몸을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게 된 경험을 아주 소중하게 기억하며 실천해 나갈 것이다.

난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하는 원망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몸이 병든 이상 나의 정신도 삶을 포기할 정도로 병들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날에는 노력하며 열심히 산다는 것이 허무하고 가치 없게 느껴지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어떻게 하면 내 몸이 즐겁고 내 맘이 행복할까를 생각하며 나의 몸의 권리를 생각한다.

나의 몸은 지나친 피로를 피하고 싶어하며, 휴식을 즐거워하고, 정한 시간에 편안한 잠자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싱싱한 과일과 야채의 맛을 알고 있으며, 매일 세끼의 밥을 맛있게 먹고 싶어한다. 너무 당연한 것을, 이전의 나는 거부하며 살았다. 몸에 좋은 음식이라면 어찌도 그렇게 안 먹고 지냈던지.

내 몸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기로 했다. 화장을 하고 반짝거리는 장신구로 꾸미는 것뿐만 아니라, 내 몸이 하나의 건강한 생명체로 밝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한 노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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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유종환우 2015/08/20 [16:25] 수정 | 삭제
  • 혹시 이 글 쓰신분과 연락이 가능할까요???? 저도 섬유종 환우인데 대화 좀 나누고 싶네요 010-9270-2517
  • 추운 딸기 2009/04/08 [09:08] 수정 | 삭제
  • 조금 늦게 알았다 싶을 때가... 빠른 거라고.

    저도 최근 몇 년간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져서야 술과 커피, 무절제한 생활로

    내 몸에게 미안한 짓을 했구나... 싶었거든요.

    님도 저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몸을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해보자구욧. 화이팅~ ^^
  • 명진 2007/04/17 [01:01] 수정 | 삭제
  • 솔직한 경험담이 저에게도 수긍이 가고 다시금 떠올리게 되는 것들이 있네요.
    타고난 몸에 대해선, 건강에 대해서도, 원망을 말아야죠.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 ^^
  • ji 2007/04/10 [17:36] 수정 | 삭제
  • 건강에 신경쓰지 않은 것이 쿨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댓글에 동감,
    또는 다이어트하고 돈 들인다는 것으로 이분법으로 사고되는 것도 동감,
    '니 몸이 욕하는 소리' 말씀은 완전 감동.
    건강한 생명체로 빛나다. 우와, 완전 멋져요~
    모두가 건강한 생명체로 같이 살아간다면 참 좋겄어요~
  • s 2007/04/10 [12:52] 수정 | 삭제
  • 엄마는 내가 밥을 자주 굶으면 그렇게 말하셨어요.

    "가만히 앉아서 니 몸이 욕하는 소리를 좀 들어봐라."

    그런데 나는 그런 말씀을 듣고도 내 몸인데 내가 맘대로 못해? 식으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식이었죠.

    근데 갑작스런 변화가 생겨서 채식 위주로 생활을 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완전히 이전과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요.

    몸을 위해서, 마음을 위해서, 밥을 꼬박 먹고 군것질은 하지 말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술도 끊어버려야 겠다는 과감한 결심까지 하게됐어요. 주위에서 권하니까 한잔~ 하다보니 술꾼처럼 되어버렸다는...

    이제는 엄마가 하신 말씀대로 하려고 해요.
    내 몸이 나를 얼마나 욕했을지 생각해보고, 몸에 대해서 아껴주려고요.
  • 그림판 2007/04/10 [00:36] 수정 | 삭제
  • 저도 몸을 방치하는 것이 마치 쿨하게 사는 것인양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몸을 사랑하고 챙긴다는 게 마치 다이어트하고 돈 들인다는 의미로 생각해버리고 말이죠.
    이분법적으로,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생각했던가 싶어요.

    어차피 보기 좋은 몸이 아닌데 뭘, 어차피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약한데 뭘.. 이런 식으로 자포자기 비슷한 걸 하기도 했죠.
    내 맘의 한쪽에선 그러다가 훨씬 더 안좋은 상태가 될 거라는 불안감 같은 것도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자기 몸에 대해서 언제나 아껴주고, 아플 때도 위로해주고, 질병을 가진 몸을 미워하지 않기. 이런 거 중요한 권리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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