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사랑한다”

나의 행복한 커밍아웃 이야기

연두 | 기사입력 2007/04/10 [00:59]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사랑한다”

나의 행복한 커밍아웃 이야기

연두 | 입력 : 2007/04/10 [00:59]

엄마와 나는 유난히 가깝다. 주위에서 친구 사이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 친하다’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와 나의 관계를 ‘친하다’는 말로 정의하는 것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는 없다. 단지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진짜 내 모습을 사랑해줄 수 있을 것이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하려니, 몇 주 동안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몇 번이나 들었다.

어느 날, 드디어 나는 엄마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다, 엄마를 붙잡고 한 시간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혼자 어쩔 줄 몰라 하며 방바닥을 굴러다녔다고 하는 편이 맞나? 당연히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커밍아웃을 하려니 긴장이 되었나 보다. 아마 나보다 내 이야기를 기다리던 엄마가 더욱 긴장하시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난 그날 너무도 힘들게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학창시절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던 나의 고민들, 원하지 않게 ‘아웃팅’을 당하고 난 후의 남모를 고통, 그리고 내가 레즈비언임을 스스로 인정한 후의 변화 등, 그 당시에 하지 못했던 마음 속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그렇게 나의 커밍아웃이 끝나고, 드디어 엄마가 어렵게 한마디를 꺼내셨다.

“그럼 네가 게이야?”

그 순간, 엄마 입에서 “게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게 어찌나 웃기던지, 나는 그만 크게 웃어버렸다. 엄마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전혀 모르고 계셨다.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말은 모두 다 ‘게이’라고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게이’도 틀린 말은 아니니깐. 사실 그것보다 그 말을 꺼내는 엄마의 표정에서 ‘그렇구나, 넌 게이구나’ 하는 상당히 긍정적인 대답을 얻었다는 게 더욱 기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나는 네가 누구를 좋아 하든지는 상관없다. 너무 고민하지 말고, 네가 할 일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힘들 때 혼자서 고민했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구나, 우리 딸 파이팅! 사랑한다. ^.^”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엄마가 나를 인정해주시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 엄마는 나를 점점 더 많이 이해해 주시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다. 동성애 관련 서적에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시고, 가끔은 내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을 때면 “또 어떤 여자를 유혹하러 가게?” 하는 등, 내가 더 당황할 정도의 농담을 툭툭 던지곤 하신다.

커밍아웃 후에 엄마에게 애인을 몇 번 소개해드렸다. 엄마는 나에게 사귀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애인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관심도 보이신다. 가끔 나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가장 먼저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하시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엄마의 도움으로 핸드폰 요금제를 바꾸었다. 애인과의 커플 요금제로 말이다. 그 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들인데.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를 대해 주시는 엄마가 정말 고맙다. 사실 모든 걸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못마땅한 구석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는 아직 레즈비언이 “레~ 뭐시기”지만, 우선은 날 믿고 내 선택을 믿어주고 그래서 하나라도 더 이해해보려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된다.

가끔 나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듣고 상당히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그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냐고 묻기도 한다. 딸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진실된 마음을 전해줄 수만 있다면, 엄마에게 하는 커밍아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많은 레즈비언들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하루 빨리 우리 엄마에게서 내가 느낀 것과 같은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 2008/10/14 [19:54] 수정 | 삭제
  • 제가 받아들여진 것도 아닌데 마음이 무척 훈훈해졌답니다.
  • 핀야 2007/05/03 [00:57] 수정 | 삭제
  • 정말 제목처럼 행복한 커밍아웃이네요.
    저도 두번째 커밍아웃에선 엄마가 조금은 제게 더 열어주셨음 좋겠어요,ㅎ
  • ㅋㅋ 2007/04/20 [08:38] 수정 | 삭제
  • 와~ 정말 부러워요
    와~정말 좋은 어머니를 두셨어요~앞으로 행복하시길~~
  • 완유 2007/04/14 [01:03] 수정 | 삭제
  • 읽으면서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경험담이네요.
    너무 멋진 어머니를 두셨어요^-^ (부러워라ㅠ_ㅠ)
    앞으로도 즐겁고 행복하게,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
  • 해밀이다 2007/04/13 [12:25] 수정 | 삭제
  • 읽다가 제가 더 기뻐서,

    몸이 부르르 떨리고 눈물까지 날 지경이에요... 축하해요 ^^
  • 이하늬 2007/04/12 [23:26] 수정 | 삭제
  • 커플요금제를 추천하는 엄마라니!!
    사람이 마음이 넓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네요.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해해주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분들이 많다는 게 슬퍼요.
    편견만 거두어준다면 세상은 참 좋아질 텐데 말이에요..
  • N 2007/04/12 [15:41] 수정 | 삭제
  • 부러운 커밍아웃 경험이네요~
    ^ ^
  • 부럽 H 2007/04/10 [15:59] 수정 | 삭제
  • 어머님 정말 멋지십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행복한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레~ 뭐시기"일지라도:)
  • 할망 2007/04/10 [09:05] 수정 | 삭제
  • 용감한 어머니이신 것 같아요!!

    "또 어떤 여자를 유혹하러 가게?"
    -_- 이 대목에서 쓰러졌습니다.
    헤헤
  • 베리 2007/04/10 [03:12] 수정 | 삭제
  • 어머니가 열린 마음을 가지신 분인가 봐요.

    모두가 꿈꾸는 커밍아웃이 아닐까 싶네요.

    진실된 속내를, 아무에게도 못했던 말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소중한 일일 거에요.
  • 우아아 2007/04/10 [02:58] 수정 | 삭제
  • 어머니 멋지삼.
    읽는 저도 힘이 나네요^^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