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주여성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다

사측의 사과와 임금 미지급분 받아내

조아롱 | 기사입력 2007/04/19 [21:30]

[기고] 이주여성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다

사측의 사과와 임금 미지급분 받아내

조아롱 | 입력 : 2007/04/19 [21:30]

일본에 유학 온 지 6년째 되는 학생이다. 학생 신분이긴 하나 학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난 ‘이주노동자’이기도 하다. 아파트 청소, 음식점 서빙, 한국어 강사 등 다양한 노동을 해왔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 일하던 곳에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됐다.

워킹 비자로 함께 일해 온 동료들과 함께 단체행동을 통해, 지급 받지 못한 임금에 대해 부당함을 알리고 항의했다. 결국 회사 책임자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임금 미지급분을 받아냈다. 이번 경험만큼 노동자로서 나의 권리를 자각시켜 준 값진 경험은 해본 적이 없다.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

면접 때 들은 것과 다른 내용의 계약서

1월 29일부터 40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본 굴지의 자동차 기업에서 수십 년간 발간해 온 카타로그 등의 서류를 스캔 작업해서 컴퓨터에 데이터화하는 것이 업무 내용이다.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은 주간, 야간 각 8명으로, 모두 한국인이며 대부분 여성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작업장에 모여 계약서를 쓰고 작업 내용을 배웠다. 계약서에는 구인광고나 면접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와는 다른 내용이 있었다. 면접 때는 하루 노동시간 9시간 중 1시간의 휴식이 주어진다는 것과, 교통비와 점심값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이 휴식시간에 대해선 시급을 지급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일본어로 적힌 계약서에는 실 노동시간이 8시간으로 적혀있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를 면접하고 고용한 파견업체의 한국인 고용주 측에 직접 물으니, 그 계약서는 일본 파견업체와 맺는 계약서로서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곳은 일본업체가 아닌 한국업체이며, 9시간으로 알아서 계산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부터, 그러니까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우리를 고용했다는 한국인 고용주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또 면접을 패스트푸드점에서 보았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정말로 우리를 고용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달 이상 작업이 진행된 후, 일을 마치기까지 열흘 정도 남겨두었을 무렵이었다. 작업상황을 보러 온 일본 파견회사 직원을 통해서 노동시간 8시간에 해당하는 임금만을 지불한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한국인 파견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는 “계약서에 그렇게 적혀 있는데 확인도 안 했느냐”며 노발대발했다. 9시간 실제 일한 내용대로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말은 단지 자신이 고용한 말단 직원이 한 얘기에 불과하다며, 그 말을 믿은 우리가 바보라는 식으로 주장했다. 게다가 계약서에는 우리들의 임금을 중간 정산해주기로 되어 있는데, 그것조차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용기를 내어 파업 선언을 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뭉치기로 했다. 우리들의 신뢰를 저버린 고용주의 거짓말을 믿고서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다음 날부터 다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파업을 통보했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처음 약속한 임금에 대한 중간 정산을 해주고, 실제 일한 내용대로 임금을 달라는 것이었다.

파업 선언을 하자, 전화상으로 우리를 나무라고 꾸짖던 한국인 파견업체 고용주는 한걸음에 우리가 일하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는 임금에 대한 중간 정산을 해주었고, 최종 임금을 지불할 때 교통비까지 주겠다고 각서를 썼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다음날부터 다시 일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과정에도 고충이 따랐다. 일하던 동료 모두가 처음부터 다 단결해 마음을 모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와서 몇 번이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의 부당한 경험을 해 온 동료들 일부는, 우리가 ‘항의’를 했다가 그나마 일부 받을 돈마저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염려했다. 시끄럽게 굴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들의 항의는 ‘시끄럽게 구는 것’이 아니었다. 부당한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우리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권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모두 뭉치지 않으면, 임금 미지급 분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단결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가,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다른 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동료들을 설득, 파업에 대한 동의를 구할 수 있었다.

‘법’대로 하자던 파견업체의 횡포

이렇게 작업이 모두 끝나고 일주일 후, 남은 임금을 받기 위해 다같이 모여 한국인 파견업체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용주는 다짜고짜 우리에게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우리 회사를 못 믿겠다는 둥 일 못하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바람에 우리는 다음 계약까지 파기당했다.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또 “손해배상까지는 하지 않겠으니, 중간 정산 때 지급했던 교통비와 9시간 일한 분을 공제한 남은 임금을 받으라”고 했다. 자신들의 고문이 되어 줄만한 ‘변호사’도 있노라 했다.

부당하게 공제된 임금을 받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일단 고용주가 제시한 임금을 받지 않고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그러나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 막막했다. 거부와 항의의 의사표시는 했지만, 계약서에 사인은 이미 해버린 상태고, 한국인 파견업체 측에서 이미 변호사에게 연락했다고 하니, 혹시 이 돈도 받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닌가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법대로 하라”며 고함치던 고용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당한 임금도 주지 않고 ‘법’을 들먹이며 우리를 무시하던 고용주를 용서할 수 없었다. 법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틀 뒤 도꾜의 한 노동조합을 찾아가 함께 상담을 받았다. 노동조합에서는 우리가 사인했던 계약서 자체가 일본 노동법에 위반하는 불법이며, 무효라고 말했다. 계약서 상 고용주는 일본 파견업체인데, 그들은 회사등록도 정식으로 하지 않은 업체로 확인됐다. 그리고 이 사항은 일본의 노동관리 행정당국에 신고하여 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실제 고용주와 만날 것을 요구하며, 확인된 노동법 위반 사항을 파견업체에 전달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우리들의 실제 고용주였던 일본 파견업체 사장이라는 사람이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일본 파견업체의 실제 고용주는 우리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며, 우리가 처음 들었던 내용대로 실제 일한 내용에 대한 임금을 지급했다.

피라미드처럼 얽힌 파견업체들의 횡포로 만들어진 계약서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가 일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욕심이 아니라 응당 행사해야 할 ‘권리’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비로소 가슴을 펼 수 있었다. 결코 내가 노동자로서 불리한 상황에만 있지는 않으며, 힘이 되어줄 노동조합단체와 노동법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이주노동자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

이번 일을 겪는 동안, 주변에서는 ‘네가 너무 욕심 부리는 것 아니냐, 현실이 어쩔 수 없다. 참고 받아들여라’ 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이주노동자로서 겪는 언어소통의 문제와 차별적 시선으로 인해 이미 위축된 약자가,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찾기란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만약 비자문제까지 안고 있는 경우라면 오죽할까.

일하는 사람들이 국적이나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권리를 얻기란 쉽지 않다. 세상에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고 싶어하지 않는 고용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고용한 사람이 외국인일 때, 여성일 때, 혹은 나이가 어린 사람일 때, 그런 경향이 강하다.

이런 때일수록 권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의지, 즉 ‘용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내 시간과 수고를 들여 노동환경 등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내가 맺은 계약서를 읽을 줄 아는 ‘지식’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함께 일한 사람들이 있다면 ‘단결’이 필요하다.

함께 단결해 주었던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워킹 비자로 와서 힘들게 일하며 불안한 와중에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노력해 주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며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당당히 이야기하는 분들의 노력에도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분들의 노력이 나아가 나의 권리를 함께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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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4/26 [01:34] 수정 | 삭제
  • 정말 값진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

    한국인도 일본에 가면 이주노동자라니,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와닿아요
  • 동이 2007/04/21 [20:52] 수정 | 삭제
  • 일본업체보다도 한국측 파견업체에 대해서 관심이 더 가는 군요.
    왜냐면 그런 곳들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업체도 사기업체인 것 같고, 한국업체도 알선을 하면서 더욱 사기를 치는 업체(?)인 것 같은데..
    외국에선 특히 더 (노동자들이) 대응하기 어려울 게 뻔하니까 악용하는 거겠죠. 상습적일 것 같습니다.

    정당한 대가 아니기 때문에 주는 돈을 거부하고, 단체행동을 해서 사과까지 받아냈다는 것이 멋집니다.
  • 동이 2007/04/21 [20:48] 수정 | 삭제
  • DB씨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식성 발언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
    합법 체류든 불법 체류든, 단기든 장기든, 이주해서 노동하는 이를 이주노동자라고 한다.
  • 독자 2007/04/21 [03:18] 수정 | 삭제
  • 이주노동자로서의 삶이 어떠한지 한국인으로서 이주노동의 문제를 편협하게 바라볼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 N 2007/04/20 [17:35] 수정 | 삭제
  • 글을 읽으면서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봤어요.
    상상으로조차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는 일이네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글을 통해 큰 힘을 얻었어요.
  • 다음 2007/04/20 [14:50] 수정 | 삭제
  • 힘든 과정이었겠지만 이렇게 권리를 찾게 되어서 정말 기쁘네요.
    이런 통쾌한 사례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계약서 작성이라든지, 노하우도 만히 배우고요!
  • 2007/04/20 [01:49] 수정 | 삭제
  • 저도 프리로 계약하면서 계약서 내용과 말이 달라서 아주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상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겠는 거에요.
    앞으로 같이 일할 건데, 첫인상도 중요하니까 말이죠. 하지만 결국, 결론은, 내가 내 권리를 주장하지 않을수록 나를 더 얕잡아보고 쉽게 속이고 내 권리를 더 빼앗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혼자보다, 여럿일 때 힘이될 수도 있지만 단체적으로 행동을 결정하기가 더 힘들었을 것 같은데,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