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

영화 <타인의 삶>과 <천년학>

공숙영 | 기사입력 2007/04/27 [14:30]

여성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

영화 <타인의 삶>과 <천년학>

공숙영 | 입력 : 2007/04/27 [14:30]

“난 그들의 삶을 훔쳤고 그들은 나의 인생을 바꿨다.”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은 연인 관계인 극작가와 배우, 그들을 감시하고 도청하는 임무를 맡은 비밀경찰이 빚어내는 통일 전 동독의 이야기이다.

“평생을 꿈꾼 사랑, 평생을 꿈꾼 소리”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연출작 <천년학>은 유랑하는 소리꾼 누이와 북 치는 남동생 남매를 둘러싼 사연을 담고 있다.

진실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가는 지고의 가치를 가진 존재로 숭배되곤 한다. <타인의 삶>의 비밀경찰은 자신이 관찰하던 예술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 <천년학>에서는 경지에 이른 예인의 삶이야말로 온갖 고난을 견디면서 평생 꿈꿀 만한 삶으로 추구된다.

한편 예술가는 세속의 현실 속에서 지극히 위태롭고 심지어 연약한 개인이기 쉽다. 두 영화 속 예술가들도 이러한 모순을 살아간다.

특히 이른바 ‘제2의 성’인 여성이 예술을 하려면 어떻게 살게 되는가. 두 영화 속 여성들의 기구한(진부하게 들릴지라도 일단은 이 단어가 떠오른다) 삶은 복잡다단한 시대의 격랑 속에서 여성이 예술가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타인의 삶>의 크리스타

<타인의 삶>의 크리스타는 일견 동경할 만한 삶을 누린다. 비록 감시와 검열이 횡행하는 통제 사회이긴 하나, 사랑 받는 배우인 그녀에겐 멋진 극작가 연인과 팬들이 기다리는 무대, 화려하진 않아도 멋스러운 파티를 함께 열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는 맨 정신으로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 숨어 있다.

권력자 문화부 장관이 그녀를 지분거리다가 급기야 강간하고서는 지속적인 밀회를 요구한다.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자존을 지킬 것인가, 배우의 길을 보장받을 것인가. 갈등하는 그녀를 위협이라도 하듯 장관의 미움을 산 후 무대로부터 축출당한, 스승 뻘의 노(老) 연출가가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권력에 맞설 경우 닥칠 결과가 두려운 그녀는 장관의 요구에 응하려고 집을 나선다. 이를 눈치채고 만류하는 연인에게 그녀는 “이런 세상에서 뒤 봐 주는 사람도 없이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일갈한다. 이런 그녀를 회심시킨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다가 급기야 나선 비밀경찰이다. "당신은 이대로 훌륭하고 아름다워요."

그는 때로는 보이게 때로는 보이지 않게 이 커플의 삶에 개입하여 이들이 예술가이자 진실된 인간으로서 계속 살아가게끔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난다. 권력을 거스른 대가로 배우 인생이 끝장날 위기에 직면하여 크리스타는 기막히게도 수호천사였던 바로 그 비밀경찰로부터 심문을 받던 중 반체제적인 글을 쓴 연인을 밀고하게 된다. 자신의 배신과 불안한 미래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무서워, 무서워.”라는 독백을 남긴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천년학>의 송화와 단심

<천년학>에는 임권택 감독의 전작 <서편제>와 마찬가지로 판소리하는 아비와 남매가 등장한다. 의붓 남매 송화와 동호는 판소리에 미친 아비로 인해 소리와 북의 관계로 결합되어 서로 운명애에 흡사한 감정을 갖고 자란다. 성장하여 각자의 삶을 살게 된 후에도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비가 끓인 탕약을 먹은 후 실명한 송화는 아비가 일부러 그랬다는 주위의 억측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심이나 원망도 표하지 않으며 묵묵히 소리꾼으로 살아간다. 소경인 상태로 소리품을 팔고 남자들의 품을 전전하며 생존하는 험난한 삶 속에서도 그녀는 한결 같은 모습으로 방방곡곡 홀로 떠돈다.

동호는 창극단에서 소리하는 단심이란 여성을 만나 살림을 차린다. 창극단 남성들로부터 희롱 당하는 처지였다가 동호를 의지하게 된 단심은 끝끝내 송화를 향한 동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결국 소리도 사랑도 얻지 못하고 도박에 빠진 단심은 동호에게 외친다. “내가 도박에 빠진 거나 네가 송화 년에게 빠진 거나 뭐가 달라?”

송화는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가 여전히 혼자만의 삶을 살고, 단심은 남편과 아이를 다 잃고 착란 상태에 빠져 자살한다. 남성들과의 관계로 인해 인생유전을 맞이하는 소리꾼 여성이라는 점은 같지만, 상황과 재능과 의지와 성격, 이 모든 것을 총칭하여 소위 운명의 차이로 인해, 송화와 단심의 삶은 뚜렷이 대조를 이룬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

<타인의 삶>은 개인주의적 가치에 적대적이었던 냉전 시대의 사회주의 동독을, <천년학>은 개발독재의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문화가 급속도로 사라지는 우리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양상은 달라도 두 사회 공히 여성과 남성, 예술가와 非예술가를 막론하고 개인의 온전한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했으리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영화 속 여성예술가들에게 내 눈길이 머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 글을 쓰는 내가 여성인 이유가 있을 테고, 그녀들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약자’-‘희생자’-‘피해자’-‘수난자’의 숙명을 짊어지는 것으로 형상화되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 예술의 본질을 사유하는 일이 여성성의 본질을 사유하는 일과 통할 거라고 느끼기 때문이리라.

자멸의 길을 간 가련한 크리스타와 단심, 체념한 듯 달관한 듯 처연하게 앞만 보고 가는 송화의 삶이 한데 어우러져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햄릿)와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파우스트)는 말을 복잡한 심경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그때 그 시절이 아닌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여성예술가의 삶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자유는 과연 얼마나 어떻게 신장되었는가? 진실로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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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lm1214 2007/07/13 [22:18] 수정 | 삭제
  • 텍스트 밖으로 나오자면 감독에 의한 타살이라고 보는데요, 결과적으로 자신의 연인을 배신한 여성이 처벌 받게 되는 것은 오래된 관습이죠. 특히나 "무섭다"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은 자신의 배신으로 상대가 비밀경찰에 걸린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배신의 참혹함(따라서 처벌되어야하는) 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또한 시대적 아픔이 고스란히 그녀의 희생으로 더욱 그 비극이 절정에 이르는.. 전통적인 방식과 맞물려 참 익숙한 불편함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hani 2007/05/01 [20:57] 수정 | 삭제
  • 영화게시판에 써있다는 의견을 보고 저도 제 생각을.. ^^
    제가 영화를 봤을 때는 여주인공이 마음을 바꿔 밀고하게 되는 건, 안심해서가 아니라 수호천사같았던 사람이 비밀경찰이고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에 더 이상 의지를 상실해서였다고 봤어요.
    안심하라는 눈짓을 보고 밀고했다고 하기엔, 그 이후 상황들부터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집에 도착해서부터 극도로 공포스러워하던 모습부터 자살(자살이죠)에 이르기까지.
  • 리튬 2007/05/01 [19:56] 수정 | 삭제
  • 수호천사였던 바로 그 비밀경찰로부터 심문을 받던 중 반체제적인 글을 쓴 연인을 밀고하게 된다 - 그 여자가 갑자기 입장 바꿔 쉽게 밀고한 이유는 비밀경찰과 구면인 사이라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즉 영화상에서 심문하려는 비밀경찰이, 감시자가 눈치 못채게 그 여자에게 안심하라는 신호(눈짓)를 보냅니다. 저도 그 장면은 놓쳤지만 영화게시판에 그렇게 써있네요..
  • 글쓴이 2007/04/30 [01:22] 수정 | 삭제
  • <타인의 삶>을 독일에서 본 유학생 친구들이 전하기를, 극장 안 관객 모두 감정적 일체가 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어느 영화잡지 기사를 보니 비밀경찰 역을 한 배우가 실제 동독 시절 다른 사람도 아닌 아내로부터 감시당한 경험이 있다고 하네요.

    <천년학>은 공들여 찍은 풍경들과 소리가락이 진짜 주인공처럼 영화 곳곳에 등장합니다. 송화가 춘향가를 부르는 장면, 꽃잎이 흩날리는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 제주도 한라산 갈대숲 등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주인공 송화가 제주도 4.3 민중항쟁 때 친부모를 잃은 것으로 나와요.
  • 칸타빌레 2007/04/28 [23:00] 수정 | 삭제
  • 도 볼만한가요? 내리기 전에 봐야겠네요.
  • 모데라토 2007/04/28 [18:05] 수정 | 삭제
  • 좋은 영화였습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더군요.

    분단체제와 사회적 감시시스템의 희생자,
    영화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이지만,
    그 중에서도 크리스타의 희생은 달랐죠.

    자살한 알버트와 크리스타의 희생은
    같은 죽음이지만 또 달랐고..

    여성예술가, 또는 여성 그 자체..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은 다르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더군요.

    그래서 여성이 희생자가 되기는 쉬운 것 같아요.
    이미지 상으로도 말이에요.
  • 좀허무 2007/04/28 [03:14] 수정 | 삭제
  • 스포일러가 있다고 밝혀 주시면 더 좋았을 것을,
    자살이라니 에궁
  • 독자 2007/04/27 [20:54] 수정 | 삭제
  • 마지막 문단에 공감합니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자유는 과연 얼마나 어떻게 신장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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