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한벌 마음대로 입기 어렵다니
왜 이런 것에 신경을 써야 할까
이희연 | 입력 : 2007/06/21 [20:48]
여름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거리에 나가면 하늘하늘한 치마가 많이 눈에 띈다. 그리고 나풀거리는 원피스에 눈이 가고, 진열되고 있는 색이 고운 치마를 보면 나도 모르게 탐이 난다. 나도 저런 거 한번 입어볼까 하고 막상 맘에 드는 옷을 집는 순간까지는 기분이 참 좋다. 그러나 매번 마지막에 망설이게 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들었던 잔소리들 때문이다.
몸이 불편하니까, 보기 싫으니까
나는 뇌성마비를 지닌 장애여성이다. 걷는 모습이 남들과는 달리 좀 특이해서 그렇지, 일상 생활에 별로 지장은 없다. 지장이 있다면 계단에서는 좀 조심해야 할 정도? 그러나 엄마는 일단 몸이 불편하니까 움직이기 편해야 한다는 것과, 보기 싫다는 이유를 들어 내가 치마를 입는 것에 늘 반대하신다. 내가 그건 엄마의 생각일 뿐이라고 누누이 강조를 해도, 내가 치마를 입으면 눈살부터 찌푸리신다.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엄마는 몸이 불편한 딸이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몸을 흔들면서 걷는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으신 것 같다. 조금이라도 특이하면 외계인 보는 듯 쳐다보는 거리의 시선도 이겨내기 힘드신 것이다. 그래서 늘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옷차림을 아직까지 강조하신다.
어릴 땐 치마를 많이 입었다. 그런데 사춘기가 되자마자 내 옷장에 치마가 하나 둘 사라져가더니 지금은 여름치마 하나 사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아마도 내 여성성을 억지로 감추고 싶어하시던 엄마의 뜻대로 이끌린 것이 아닌가 싶다. 얌전하고 깨끗한 것을 주장하는 엄마와는 달리, 난 가끔 화려한 옷도 입고 싶고 찢어진 청바지도 입고 싶다. 그러나 어쩌다 조금 화사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가면, 날 바라보는 눈길들이 평소보다 두 배는 늘어난다.
옛날에 알던 어떤 사람은 내가 상점에서 치마를 고르자 ‘네가 그걸 입고 다니다 넘어져서 속옷이라도 보이면 무슨 망신이냐?’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장애여성은 늘 넘어지고 힘들 것이라는 생각, 난 그때 그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네가 내 생활을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라고 말하며, 오기로 그 옷을 산 적이 있다.
그때 난 주저앉은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걸음이 불편하면 걷다가 넘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옷 사는 것까지 간섭 받아야 한다는 것이 불쾌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치마를 어떻게 입니?’
그런 편견들은 무시해버릴 만한 상황에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치마는 망설여지는 품목이다. 습관이란 그래서 무서운 것인가 보다. 이젠 자유롭게 옷을 입을 수 있는데도 망설임을 느끼게 하다니 말이다. 이러한 습관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나 역시 좀 바보 같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다닌 대학의 학과는 유난히 여자들이 치마를 입지 않았다. 소위 ‘운동권’이라고 불렸던 여자는 물론이고, 평범한 내 친구들 역시 그랬다. 그리고 어쩌다 하늘하늘한 치마라도 입고 온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는 조금 어색하고 부끄러운 시선들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희롱 수준의 농담도 던진듯하다. 어느 남자선배는 이런 말도 했었다. “니네가 그렇게 꾸미고 얼굴 만질 시간이 있으면 그 돈과 시간으로 공부를 하던지, 나라를 위해 고민이라도 해봐라.” 지금 학생들이 들으면 웃을지 몰라도 전에는 그 말이 통했다.
그런데 남자들의 옷차림에 대해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보기엔 분명히 꽤 신경 썼을 법한 차림인데도, 여자들에게 했던 ‘그 돈이 있으면’ 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학생 때 절대 입지 않던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은 것을 보고 물어본 적이 있다. ‘선배는 치마 잘 안 입었는데?’라고. 선배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그 분위기에 이런 치마를 어떻게 입고 다니니?’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는 참 많이 억압당한 것이 아닐까.
다리에 꽂히는 시선들
그러한 편견을 극복한다고 해도 치마를 망설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굽은 다리와 굵은 털이다. 나의 다리는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 굽어 있다. 그리고 운동을 많이 한 탓에 알이 그대로 배겨 있는 듯이 보인다. 다리에 털도 많다. 그것은 예전에 남자친구의 강요로 다리 면도를 몇 번 한 후 나타나는 현상이다. 짧은 치마를 입기에 망설여지는 체형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왜 여자들은 이런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말이다. 치마를 입기 위해, 혹은 반바지를 입기 위해, 남자들이 하지 않는 다리 면도를 해야 하는지, 옷을 입을 때 주위의 시선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지.
어떤 여성은 호르몬 성분의 약을 어쩔 수 없이 복용하고 있는데, 몸에 털이 너무 많이 나는 바람에 짧은 옷을 입을 엄두를 못 낸다고 한다. 어쩌다 짧은 치마라도 입으면 자신의 맨다리에 느껴지는 시선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그냥 무시하고 입기엔 장애물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옷을 입는데 있어서 이런 식의 강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는 다르게 말한다. 넌 작은 체형이라 바지보다는 치마가 어울릴 것이라고, 네가 어색할 뿐이지 막상 사람들은 안 그럴 거라고. 이런 말을 하면서 내게 어울리는 것을 이야기해주거나, 입고 싶은 것을 입으라고 말해 주는 사람도 있다.
여름에 치마는 참 시원하다. 시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남들의 시선과 강요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다. 왜 남들과 다르면 시선의 폭력이 가해지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실제적인 이유도 없는, 평균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제제일 뿐이다. 바라건대 내 취향대로 옷을 입을 수 있고, 남들도 내 외적인 것에 너무 많은 시선을 주지 않는 사회가 되어, 치마 하나 고르는데 이런 복잡한 생각을 안 하게 되었으면 한다.
※이 기사는 2007신문발전기금 소외계층 매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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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강요한단게아니라 2012/07/25 [19:20] 수정 | 삭제
- cool 2007/07/05 [17:43] 수정 | 삭제
- cool 2007/07/05 [17:26] 수정 | 삭제
- free 2007/06/24 [01:56] 수정 | 삭제
- 혁은 2007/06/24 [01:24] 수정 | 삭제
- 파랑 2007/06/23 [13:32] 수정 | 삭제
- nina 2007/06/22 [03:57]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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