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10대 여성에게 노동의 경험은 무엇인가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야난 | 입력 : 2007/08/16 [23:14]
십대 여성들을 만나 취재를 시작하면서, 과연 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인터뷰는 의외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자와의 '인터뷰'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보이던 십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꾸밈없이 털어놓았던 것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였다.
18살 되던 해 겨울, 나는 충동적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아침 10시부터 비디오 대여점, 주유소를 거쳐 일을 끝내고 나면 늦은 8시. 밤에는 '25시간 영업'이라는 간판을 내건 동네 편의점에서 일했다.
담배와 술을 취급하는 편의점에서 밤 시간에 십대를 고용할 리 없었다. 나는 주위에서 주워들은 방법대로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21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일자리를 구했다. 시간당 보수가 더 좋은 밤 시간대에 일하기 위해서였다.
노래방과 단란주점이 밀집된 거리에서 '25시간 영업'하는 그 편의점에는 밤이 되면 늘 같은 담배를 찾는 단골손님들이 찾아오곤 했다. 편의점이 위치한 건물 지하에는 노래방이 있었고, 그 옆 건물에는 '미인 클럽'이 있었기 때문에, 단골손님들 대부분은 그 곳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 중 나와 같은 나이, 18살의 현주라는 친구가 있었다. 현주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예쁜 옷을 입고, 멋진 액세서리를 사기 위해서는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미인 클럽'에서 하는 일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닌다고도 했다.
그는 종종 나에게 자신이 하루에 버는 돈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했다. 현주 역시 친구의 소개로 그 곳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다. 현주의 친구가 현주를 소개시켜 준 것처럼, 현주도 나와 같이 나이를 속이고 일하는 친구들에게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현주가 소개해 준 일을 시작하려고 하던 무렵, 나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부모님에게 들키는 바람에 모든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학업을 팽개치고 일을 하는 딸의 모습이 부모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나는 고집을 부렸고, 부모님은 계속해서 반대했다.
문제는 부모님의 꾸지람만이 아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지만, 어린 나이에 일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십대, 그것도 여자가 일찍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당시 누군가는 내게 집안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냐고 물어왔는데, 차라리 "맞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소위 나의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후로 6년, 대학에 입학해 취직을 준비하던 내가 무심코 '사회생활이 처음이라 걱정이 된다'는 말을 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18살부터 2년 간 양 손에 다 꼽을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3~4년 만에 모든 것을 잊고 지냈던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 것은, 과연 지금의 십대 여성들도 몇 년이 지난 후에 아르바이트 경험을 잊고 지낼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과 예전의 내가 느꼈던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하는 십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길고 길었다. 그들이 해준 이야기를 못다 보도한 것이 아쉬울 정도다. 턱없이 적은 임금에 대한 이야기, 불합리한 대우에 대한 이야기,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도 일하는 십대 여성들의 이야기에 모두 녹아 있었다.
그런데 과연 십대 여성들이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성인'이 얼마나 될까? 십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에 담으면서,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를 바랬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상아 2007/08/17 [03:14] 수정 | 삭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