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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해 뚜벅뚜벅 걷다
번역 일을 하고 있는 노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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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 욕심이 많잖아. 그렇다고 좋은 학벌이나 학위에 대한 욕심은 크지 않다고 생각해. 근데 내가 욕심이 많다는 건 꼭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야 하고, 배우고 싶은 건 배워야 하는 욕심, 그 외 다른 것에는 욕심이 많지 않는 것 같아. 아닌가?"

그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외국계 기업에서 2년 가까이 일했다. IMF 사태 후 젊은 사람들 직장 잡기 어려운 시절에, 꽤 좋은 보수를 받는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게 된 ‘운 좋은’ 케이스였다. 그런데 누가 나가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사표를 던지고 전혀 다른 분야로 들어갔다.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전에 받던 급여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열심히 배워보겠다는 자세였다.

오래 전 그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줄곧 무언가를 공부하고 있었다. 전혀 다른 분야로 전직한 이유에 대해서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필요한 어떤 능력을 습득하고, 연마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제 와서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길을 돌아가긴 했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한 순간도 게을리 임한 적이 없는 듯 하다. 20대 이후 그의 꿈은 "동시통역사" 혹은 "멋진 번역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래 전에 전혀 다른 분야로 전직한 것도, 또 다른 곳에서 일했던 것도 모두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그는 넘어지더라도 언제나 꿋꿋이 일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고, 이제는 조금 더 꿈에 가까이 접근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년 전 한참 동안 그와 연락이 끊긴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필리핀 있어요. 필리핀으로 한번 놀러 오세요"라는 이메일이 날아왔다. 필리핀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유명한 관광지에 위치한 큰 호텔에서 매니저로 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급히 돌아와 있다며 충청도 어느 절에 있다는 메일이 또 날아왔다. 한동안 절에 머물 예정이니까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필리핀에서 살해 협박을 받다

“필리핀에 갔을 때는 내 인생에서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인가 보다 했지. 1년인가 호텔에서 어카운팅 매니저(재무 부서 책임자)로 일하다가, 잠깐 한국에 들어와 영어 관련학과 대학원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고 일을 정리하러 다시 필리핀에 들어갔어. 내가 원래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성격이잖아. 그런데 사람이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해도 못 하는 수도 생기는 구나를 그때서야 깨달았어."

4년 전 절에 피신해있던 시절을 회고하며 그는 "필리핀에 별의별 사건이 다 있었다"고 말했다. .

"호텔 지배인이 있었는데, 필리핀에서 14년간 일했던 사람이니 상황이 훤한 사람이었지. 근데 어느 날 장부를 조회하는데, 서류들이 이상한 거야. 지금 생각하면 내가 실수로 잘못 봤는지도 모르고, 근데 나는 장부가 이상하니까 계속 맞춰 봤고, 아마 누가 지배인한테 '어카운팅 매니저가 계속 장부 대조를 벌이고 있다'고 찔렀겠지."

지배인은 그를 불렀다. "네가 뭔데? 그 딴 식으로 하면 너를 몇 만원에 사람 사서 죽일 수 있다." 이성을 잃은 채 협박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지배인의 모습을 보면서, 순간 '그가 정말 나를 죽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기 사무실로 돌아오니까, 직원들이 "필리핀에서는 사람 죽이는 일이 진짜 가능한 일이다, 위험하다, 당장 피하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자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생각에 급히 숙소로 돌아갔다.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며 몸소 그의 문 앞에서 보초를 섰다고 한다. 그가 호텔에서 사라지자 지배인은 5분 간격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 있는지를 확인했는데, 그 무서운 와중에도 그는 믿을만한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사무실에서 대조 중이던 장부를 몽땅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한다.

새벽이 밝아오는 동안 피가 마르는 듯 했고, 아침이 오자 그는 곧바로 장부를 가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집을 떠나자마자 몇 명의 남자들에게 추적을 당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공항까지 질주하듯 달렸지만, 공항까지 따라 들어왔다고 한다. 공항 안에서 피해 다니며 표를 끊어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했다.

한국에 와서 그 장부를 한국인 사장에게 건네주고는 "철저히 조사해 보라"고 하고 "일을 그만 두겠다"고 했다고 한다. 사장은 그 길로 필리핀으로 가서 지배인을 해고하고 다시 그를 불러들였다. 그가 사장이 제안을 거절했는데, "한 번만 더 도와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그는 또 필리핀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회의를 느꼈어

필리핀으로 떠나기 전에 그는 서울에서 대학원 시험까지 보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지배인까지 해고됐으니 필리핀으로 가서 이번 일만 잘 정리해주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간 걸음이었다. 그러나 일이 터졌다. 그가 가자마자 호텔 수영장에서 아이가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인 관광객이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사장을 대신해 그가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한국까지 보내고, 보험사와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과정이 정말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하거든."

당시 갓 스물예닐곱의 나이에 불과했던 그가 정작 감당하기 힘들었던 일은 그런 복잡한 절차가 아니라 사람들의 태도였다.

"필리핀에서 사람이 죽으면 서양식으로 하는데, 살아있는 것처럼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해서 턱시도 같은 걸 입혀놔. 나와 몇 명의 직원들이 밤새 시신 앞에서 지키고 있는데, 그 아이의 시신 앞에서 보험사, 사장, 아이 아버지가 보상 얘기를 하고, 사진을 막 찍고. 시신 앞에서 예의가 아니잖아?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

그 후에도 보상을 둘러싸고, 호텔 측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최대한 '안전에 문제가 없었다'는 식으로 밀어붙이고, 보험사는 보험사 입장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서로간 대립하는 걸 보며 "사람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고 했다.

"만약 어디선가 진상조사가 나왔다면 안전에 허술한 점이 많았거든. 근데 호텔 입장에서는 돈을 적게 써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거 무마하려고 뇌물 주고 하면 또 무마되는 사회거든. 거의 패닉 상태로 가버렸지."

‘노타’가 된 이유

그는 그 일을 처리하느라 대학원에 입학하지 못했다. "너무도 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구나" 라는 말은 바로 거기서 나온 얘기였다. 일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그에게 엄마가 ‘내가 가는 절이 있는데 가 있어보라’고 하셨단다. 처음에는 삼사일 예상하고 왔는데, 절에 있으니까 마음이 편해져서 한달 정도 머무른 것이라고.

그는 그런 파란만장한 경험으로 인해 가려던 학교를 못 갔고, 길을 조금 돌아가야만 했다. 계획대로 진행되진 못했지만, 현재는 다른 곳에서 동시통역 일을 배우고, 번역 일을 하고 있다. 한참 돌아서 간 것이다. 지금은 그 때의 일을 웃으면서 회고한다.

"그 때 경험이 나로 하여금 사람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해, 죽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지."

그의 닉네임이 왜 '노타'냐면 물으면, 그는 대답 없이 자기 손에 잡고 있는 것을 탁자 위에 탁 '놓는다.' 그래서 '노타'란다. 사람들이 자기가 잡고 있는 것, 부여잡고 있는 욕심을 이렇게 '탁 놓으면' 조금은 세상이 달라 보일 거란 생각에 '노타'라고 지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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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9/18 [04:07]  최종편집: ⓒ 일다
 
07/09/18 [21:51] 수정 삭제  
  20대에 겪기엔 벅찬 경험들이었을 것 같네요. 사람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것도 완전히 회의에 빠져버리지 않는다면, 인생에 있어서 더 성장을 배우는 과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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