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SF(사변소설)가 만났을 때

여성작가들이 만든 새로운 세계

부깽(bouquins) | 기사입력 2007/09/18 [12:32]

페미니즘과 SF(사변소설)가 만났을 때

여성작가들이 만든 새로운 세계

부깽(bouquins) | 입력 : 2007/09/18 [12:32]
여성해방운동의 성서로 불렸던 <여성과 노동>의 작가 올리브 슈라이너(1855~1920)는 "나는 너무도 지쳐있고, 미래가 오기도 전에 미래에도 지쳐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에 한번이라도 고개가 끄덕여졌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위안이다. 그가 21세기를 살았더라도 저 마음이 바뀌었을까 싶지만, 그렇다고 미래를 디스토피아로만 단정 짓고 미리부터 끔찍해 할 필요는 없다.

남성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다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은 SF(과학소설, Science Fiction)가 지향하는 과학적 엄밀성보다는 새로운 상상력과 실험을 통해 현 사회와 인간을 되돌아보는 데 방점을 둔다. 우리가 실제로 SF(Speculative Fiction, 사변소설)가 보여주는 유토피아에 꼭 다다르지 않더라도, 거기에는 새로운 말과 새로운 세계가 있고, 그것이 때로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SF는 아직 오지 않은, 혹은 발견되지 않은 세계를 근간으로 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놓친 세계에서 발견되지 않은 "말"이 있다. 이 말을 만드는 작업에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시간적, 공간적,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이 새로운 언어로 펼쳐진다. 이 말은 기존 언어 체계에 갇혀있던 상상력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린다.

SF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1940년대와 1950년대를 거치고, 1960년대 이후 ‘뉴 웨이브’의 기치를 두고 ‘페미니즘SF’라는 새로운 조류가 형성되었다.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뉴 웨이브’는 SF에서 드러나는 테크놀로지의 상상력만큼, 모험적이고 진보적인 언어와 사회적 관점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이것이 페미니즘과 엮이면서 소설의 언어나 서술 상의 변화를 통해 정치와 생활양식에 대한 급진적인 양태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서서히 발표됐다.

페미니즘 SF 작가들은 고전적 소재였던 시간여행, 우주, 사이버 펑크 등에서 벗어나 새롭고 실험적인 주제를 도입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기존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이분법적인 성별 구조에 대한 균열을 내고, 성차를 규정짓는 방식에 메스를 가한다.

조안나 러스가 지적하듯이, ‘SF의 세계에서는 고정된 남녀 역할에 따라 스토리가 전개될 필요가 없’다. 페미니즘 SF 작가들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을 뒤엎은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사회구조 속에 미묘하게 녹아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문제를 구호와 선언을 뛰어넘어 현 세계에 대한 은유로 제시했다.

이들은 남녀 이외의 성별이 존재하는 사회, 생물학적 성징이 없던 인간이 특별한 계기로 성이 분화되는 사회, 한 가지 성만 남은 사회에 다른 성이 나타난다거나, 성전환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사회 등을 다루었다. 그 과정에서 현실 사회의 차별적인 성역할 분담이나 그 속에 숨어있는 가치관이 실제로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페미니즘 SF는 성별 구획에 갇혀 살아가던 남성들의 상상을 뛰어넘어, 전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다.

<세계여성소설걸작선>에 소개된 15편의 SF

페미니즘과 SF의 매혹적인 조합에 빠져들고자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 SF’ 하면 가장 먼저 어슐러 k. 르귄의 <어둠의 왼손>을 떠올리곤 한다.

<어둠의 왼손>에서 ‘겨울행성’의 게센인들은 남녀양성을 가진 채로 있다가 발정기인 ‘케머’ 기간이 되면 남자와 여자 중 한쪽으로 변해 성관계를 갖는다. ‘케머’가 끝나면 다시 양성으로 돌아오지만 다음 번 ‘케머’에는 이전의 ‘케머’와는 달리 다른 성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한 게센인은 어머니가 될 수도,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지구인 ‘겐리아이’는 이러한 게센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게센인에게는 지구인이 불완전한 존재로 보인다. 지구인 ‘겐리아이’는 오직 하나의 성으로 고정된 불완전한 존재일뿐더러, 1년 내내 성관계를 가져야 하는 ‘케머’ 상태에 머무르는 성도착자로 보이는 것이다.

<어둠의 왼손> 다음에는 대체 어떤 작가를, 혹은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할까? 1994년 여성사에서 출간된 <세계여성소설걸작선>은 비록 SF라는 말은 빠져있지만, 훌륭한 페미니즘 SF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15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선집은 ‘뭘 읽어야 성에 차지?’ 하고 갈증에 탔던 이들에게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할 것이다.

달근달근하며 서서히 아드레날린이 몸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느끼게 되는 소설들로 꽉 차있어, 어느 하나 버릴 수 없이 술술 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늘 페미니즘 관련 서적에 오르내리던 조안나 러스나 <페미니즘 사전>의 작가로 잘 알려진 리사 터틀의 단편들을 만날 수도 있다.

리사 터틀의 <남자의 여자>(The Wound)나 조안나 러스의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When It Changed), 존 발리의<레오와 클레오>(Options),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Houston, Houston, Do you Read?)등은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정해지지 않았던 성별이 환경에 따라 결정 된다든가, 성전환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세계, 남녀 두 성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성별이 존재한다거나, 또는 여성만 남은 세계에 남성들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 등을 다루며 기존의 젠더 구조를 흐트러뜨린다.

특히 조안나 러스의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는 출간 당시 엄청난 논쟁에 휘말렸던 작품이다. 최소 8백 년 동안 남성이라고는 없었던 ‘와일어웨이’(Whileaway), 천년 후의 지구를 무대로 한다. 그 세계에 "그들이 돌아왔어요! 진짜 지구 남자들이요!"라는 외침과 함께 남성들이 들이닥쳤을 때의 상황을 묘사한다. 소설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이야기하던 ‘여성들의 사회적 여건을 개선하라’는 주장들로 가득하다.

이런 이유로 당시 조안나 러스의 작품을 실어 주는 출판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갈 곳을 못 찾던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는 후에 SF 역사상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할란 엘리슨(Harlan Ellison)의 앤솔러지 <다시, 위험한 상상력>(Again, Dangerous Visions 1972)에 실리게 된다. 그 직후 SF에서 휴고상과 더불어 가장 권위 있는 네뷸러 상을 수상한다. ‘와일어웨이’는 1975년 페미니즘 SF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피메일 맨>(The Female Man)으로 이어진다.

극으로 치달은 가정폭력을 다루는 팻 머피의<식물 아내>(His Vegetable Wife)와 <나뭇잎 사이의 여인들>(Women in the trees) 그리고 코니 윌리스의 <섹스 또는 배설>(All My Darling Daughters), 수젯 헤이든 엘긴의 <그레이스 고모를 위하여>(For the Sake of Grace) 등은 SF만의 형식으로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행여나 끌어온 미래마저 우울해진다면, 이 책의 마지막을 어슐러 k 르귄의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Sur)로 마무리 짓기 바란다. 딱 그만큼의 관용으로 남성들의 세계를 내려보며 ‘애쓴다’라고 한마디 되 뇌이면 충분한 위로가 될 것이다. 외에도 15편의 페미니즘 SF가 보이는 세계는 우리가 맞닥뜨린 세계를 조롱하고, 분노하고, 때론 헤집으며 남성이 만들어낸 여성의 이미지를 다시 읽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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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9/18 [16:01] 수정 | 삭제
  • 근데 페미니즘은 반-/탈-남성- 인가요? "남성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다"라는 간단한 말에 오히려 여러가지 의문들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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