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판결문에 “욕정” 표현은 부적절

가해자의 변명 옹호하는 감정적 용어 난무

윤정은 | 기사입력 2007/10/01 [23:47]

성폭력 판결문에 “욕정” 표현은 부적절

가해자의 변명 옹호하는 감정적 용어 난무

윤정은 | 입력 : 2007/10/01 [23:47]

"칠순 노인의 '빗나간 욕정'이 낳은 살인 참극"
"피해자의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욕정을 느껴 피해자를 강간하려다…"
"이야기를 하던 중 욕정을 느껴 A씨를 폭행한 뒤…"
"욕정을 채우기위해 집안에 들어가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숨지게 한 혐의…"

성폭력 범죄 사건을 보
도하는 언론에는 “순간적으로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와 법조계 내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언론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법원에서 법정 문서에 해당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라며, 법원의 문제가 크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성폭력 사건 판결문’이나 ‘성폭력 사건 공소장’ 같은 법정 문서에 “욕정”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

법원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욕정’ 문구

1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2006년 1월부터 2007년 6월까지, 1년 6개월여 간 대법원에서 운영하는 종합법률정보에 공개된 성폭력 사건 판례를 분석하고, 사법연수원 교육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각 기관에서 사용하는 법정 문서에서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등의 문구를 삭제하라고 요청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침입하여 훔칠 물건을 찾기 위하여 안방으로 기어가던 도중 인기척에 놀라 잠이 깬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며 저항하자 (중략) 주먹으로 얼굴을 수회 때려 (중략) 항거불능상태로 가만히 누워있는 피해자를 보고 순간적으로 욕정을 일으켜 (중략) 강제로 추행하였다.”(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06.2.10 선고)

“혼자 걸어가는 여대생인 피해자를 발견하고 욕정을 일으켜 (중략) 치료일수 불상의 음부 외상을 입게 하고 (중략) 피해자를 살해한 후에도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사체를 오욕하고 (중략)”(서울서부지방법원 2006.7.27 선고)

“욕정” 표현이 들어간 법원 판결문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일까. 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직업과 나이대가 다양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욕정을 일으켜, 못 이겨’ 문구가 사용된 판결문을 보여주며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했다.

32세의 한 여성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피의자 변명을 옹호하는 듯한 감정적 용어”라고 말했고, 25세의 한 여성도 “공문서에 적절한 말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법적 서류에 편파적이고 비과학적인 표현 사라져야

가해자의 범행 동기나 범죄 원인으로 관례처럼 사용되는 “욕정” 문구가 부적절하고, 편파적일 우려가 있다는 우려는 법조계 전문가들도 제기하고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표현이 “성범죄의 수사 과정부터 기소, 재판에 습관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비 법조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사법연수원 교육자료에도 이 문구들이 들어가 있고, 검찰서류 작성 사례로 “욕정을 일으켜”라는 문구가 제시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표창원 경찰대학교 교수는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성범죄 사건 서류나 기록에 가해자의 범죄동기와 원인과 관련 “욕정이라는 용어는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리 범인의 범행 고의성 혹은 계획성을 배제시키는 이러한 용어나 표현을 판결 전에 수사기관이나 기소 기관, 법원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며, 판결 후 판결문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런 이유로 표 교수는 “국가 형사사법 절차 내에서 ‘욕정을 참지 못하고’ 같은 부적절하고 비과학적이고, 편파적이고 차별적인 표현은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조인섭(C&C법률사무소) 변호사 또한 “법조인으로서 처음 사법연수원에서 검찰 실무 교육을 받을 때, 강간과 강제추행죄에는 ‘순간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라는 문구가 항상 들어갔었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조문에도 없는 이런 문구가 “피고인이 순간 욕정을 이기지 못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을 정당화해주고, 피고인의 입장에서 피고인을 변호해줄”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짚었다.

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사건 판결문 등을 분석하면서, 타 범죄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절도죄의 경우엔 “타인의 재물을 절도할 의사를 가지고”, “금품을 강취할 생각으로“ 등으로 범행 의도를 표현하면서,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순간의 욕정을 일으켜, 못 이겨”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건 문제라는 것.

때문에 민우회는 성폭력 범행 동기나 범죄를 저지른 목적 등을 명시해야 할 경우, “강간할 의사를 가지고, 강간할 목적으로”라고 기술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고 명확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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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 2007/10/12 [15:27] 수정 | 삭제
  • 사소하게 넘길 수 있는걸 꼬집어주는 좋은 기사네요
    중앙대 사회학과 홈피로 담아갑니다~
  • mira 2007/10/02 [20:00] 수정 | 삭제
  • 법조용어에 들어가는 표현치곤 너무 이상한 용어 사용이군요.
    삼류소설 쓰는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표현을 써왔을까 싶군요.
    고쳐져야 할 것들이 찾아보면 많을 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