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일반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예외를 두는 차별금지법’은 안돼
알바 유엔인권이사회 초대의장과의 인터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케이
배너

<필자 케이님은 ‘성소수자 차별저지 긴급행동’ 국제연대팀에서 일하고 있는 레즈비언권리운동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16일 금요일 오후 3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는 루이 알퐁소 데 알바 주유엔제네바대표부 멕시코 대사(유엔인권이사회 초대의장)의 강연이 “이행의 시대: 유엔인권이사회의 전망과 과제” 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 세미나에 참석차 방한한 그를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초청해 마련한 자리였다.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의 국제연대팀은 강연회에 참석한 뒤, 기꺼이 따로 시간을 내어 준 그와 한국의 차별금지법안과 관련하여 인터뷰를 가졌다. 인권 문제를 보다 실질적이고 적극적으로 풀어가고자 하는 유엔의 의지가 담겨 있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건설의 초석역할을 한 그인 만큼, ‘긴급행동’과 알바 대사의 만남은 남다른 의미를 띠었다.

국가 주권과 정치적 제약 넘는 ‘보편적 인권’으로

유엔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 cil)는 2006년 3월 기존의 유엔인권위원회(Commission on Human Rights)의 폐지와 동시에 신설되었다. 그것은 유엔인권위원회가 서구 강대국의 인권 문제는 묵과한 채, 특정 국가(소위 약소국)에 대한 결의안만을 채택하여 ‘인권을 정치적 압박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에 따른 결과다.

신설된 유엔인권이사회는 유엔총회의 직속 기관으로 격상되어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모든 유엔 회원국의 인권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보편적 정례검토제도’(Universal Periodic Review)를 운영하는 등, 전 세계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한 단계 강화된 기구로서 기능하고자 현재 그 기틀을 다져 나가는 중이다.

이 이사회의 초대 의장으로 활약했던 데 알바 대사는 이번 강연회에서 앞으로 유엔인권이사회가 해 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실천으로, 각 국의 인권 상황을 실질적으로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일'을 꼽았다.

그리고 모든 회원국이 엄정한 평가를 받게 하는 제도적 토대로서의 ‘보편적 정례검토제’를 들었다. “국가별 주권과 정치적 제약을 넘어 인권의 보편적 기준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강연에 담긴 핵심적인 주제였다.

차별금지법에서 배제되는 사람 없어야

긴급행동 국제연대팀은 질의응답 시간에 알바 대사에게 한국의 차별금지법안이 어떻게 축소되고 훼손되었는지를 간략히 전달했다. 또한 한국이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유엔 결의안(통과되지는 않았음)에 서명한(2005) 유일한 아시아 국가였음을 덧붙이면서, 그와 같은 개별 국가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데 알바 대사에게 질문했다.

그는 “국제적 기준에 맞춰 국내법을 정비하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며, “유엔에서도 어떤 특정한 이슈에 대해서는 합의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라는 이슈도 이슬람 국가들의 반대로 유엔에서 정식 결의안으로 채택되지 못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관련 NGO들과 정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다소 완곡하게 표현하는 느낌을 주었던 질의응답과 달리, 강연회에 이어진 ‘긴급행동’과의 인터뷰에서 대사는 차별 금지 정책에 대한 지향을 아주 강력히 드러냈다.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이민자라는 이유로, 종교가 달라서, (종교가) 있어서 혹은 없어서, 우리가 차별을 없애기 위해 싸우며 (그 과정에서) 예외를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이어 “조만간에 유엔인권이사회도 그렇게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유엔인권이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강조하기도 했다.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해야 한다”는 대사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 잘 나타난다.

“세계인권선언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세한 항목을 다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별금지의 목록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개념을 더 늘려가며 더 풍부하게 해야 하는 것이지, 특정 조항을 배제하거나 추려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앞으로 인권 개념은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의,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 원칙에는 어떤 예외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차별금지법안에서 삭제된 7개 조항 및 성별 ‘정의조항’을 원상 복구시키라는 제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에 대해, 법안이 나열하고 있는 차별금지대상 조항이 단지 “예시조항”일 뿐이기에 언급되지 않은 차별들도 다 다룰 수 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대사의 말은 보편적 인권의 기본 원칙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 모든 종류의 차별 금지하는 ‘헌법’ 제정

대사는 인터뷰 중, 자신의 출신 국가인 멕시코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멕시코 역시 (한국이 보수적인 기독교계의 입김이 강한 나라인 것처럼) “가톨릭이 지배적인 온건 보수적 분위기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성적 지향을 매개로 한 차별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차별을 반대하는 헌법상의 변화를 이루어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정당마다 다른 의견들을 제시하는 등, 난항을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최종적으로 “모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멕시코가 인권의 근본적 가치와 관련하여 이러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을 통해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차이를 넘어섰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말을 통해 우리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성적지향’을 차별금지대상 목록으로부터 삭제해 버린 법무부의 무책임함을 다시금 상기하며, 인권이란 조건 없이 지켜져야 하는 가치라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를 위한 법이라는 것은 그 어떤 개인도 자신의 특정한 삶과 행위의 방식을 이유로 권리를 제약 받을 수 없다”는 그의 말에 담긴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한국 정부도 실현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배너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07/11/27 [15:23]  최종편집: ⓒ 일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주의 지멋대로 머리 짧은 여자
갓 늙기 시작했다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밥’의 언어를 찾아서
메인사진
. ... / 김혜련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더 흔한 폭력과 더 두려운 폭력
메인사진
. ... / 최하란
초보여행자 헤이유의 세계여행
여행은 역시 사람이 반인 것 같아!
메인사진
. ... / 헤이유
반다의 질병 관통기
시간 사용에 대한 자기결정권
메인사진
. ... / 반다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당근이랑 다로랑
정은의 빨강그림판
독자들의 영상 메시지
메인사진
일다소식
[뉴스레터] 용기 있는 고발이 할리우드를
[뉴스레터] 페미니즘 브랜딩 현상을 보며
2017년 9월 <일다> 독자위원회 모니터링
[뉴스레터] 안전한 생리대를 사용할 권리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