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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성적지향’ 삭제에 보탬이 된 분들께
성탄절을 앞두고 편지를 씁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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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를 누구에게 보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차별금지법에서 동성애 관련 조항을 삭제하라고 청원을 주도한 길원평 교수에게 보내야 하는 건지, 얼마 전 발족된 ‘동성애차별금지법 저지의회 선교연합(선교연합)’의 임원 혹은 회원들께 보내야 하는 건지 말이에요. 그것도 아니면 대로변에 나가, 동성애가 신의 윤리에 어긋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을 향해 호소해야 하는 걸까요.

그래 봤자 나는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몰라요. 평소에는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 지도 모르고요. 맞아요. 낮에 카페에서 만난 주인 아저씨가 그들 중 한 명일 수도 있겠네요. 친절했던 옷가게 주인 언니도 어제 예배당에서 차별금지법 동성애 조항 삭제를 위해 기도했을지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하거든요. 지금 나와 말을 섞는 이 사람이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좀 엉뚱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제법 재미있어요.

그래요, 재미있다고만 하면 어폐가 있겠네요. 사실 공상 속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기 쉬우니까, 실제로 벌어지지 않는 일 때문에 멋쩍어 지기도 하거든요. 아까는 내 멋대로, 카페 주인 아저씨가 선교연합의 회원이라고 셈 쳐버렸어요. 어떤 커피가 맛있는지 물었을 땐 그토록 친절하던 아저씨가 차별금지법 앞에서는 그렇게 답답하고 단호해진다고 상상하니, 마시던 커피를 물리고 나가고 싶어졌어요.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아저씨를 앞뒤 꽉 막힌 사람으로 매도해 버렸다고 생각하니, 계산할 때는 좀 미안하더라고요.

혹시 여러분도 그런 상상하세요? 지금 지나가는 저 사람이 동성애자라면 이 자리에서 큰 소리로 혼을 내줄 텐데,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왜 그렇게 굳이 하나님 말씀과 어긋나는 삶을 살아가는지” 꾸짖고 싶었는지 궁금해서요.

전 어쩐지 여러분이 그러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런 피해망상에 가까운 상상 같은 건, 한 가지 생각에 사로 잡혀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제가 이런 저런 상상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거나 즐겁게 하는 건, 레즈비언으로서 언제 어디서 곤경에 처할지 몰라 긴장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 생각 저 생각 다 하며 걱정하는 거죠. 여러분은 그런 긴장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쩌다 상상을 한다 해도 저하고는 비교가 안 될 거에요.

지금쯤 여러분은 축제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 뜻대로 차별금지법에서 ‘성적 지향’ 조항이 삭제됐으니 말이에요. 어떤 기독교 언론도 굉장히 기뻐하더라고요. 아무리 청원을 했다고 해도 설마 차별금지법에서 삭제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그래도 인권위원회에서 몇 년에 걸쳐 만든 법이니 말이에요), 실제로 삭제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얼마나 반갑고 시원했겠어요.

원하는 것을 쟁취했을 때의 기쁨만 놓고 본다면, 저도 경험이 있으니 알 것도 같아요. 영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가 아마 비슷한 기분이었을 거예요. 그 때 그 소식을 듣고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셨는지 새삼 궁금한 걸요.

여러분이 ‘성적 지향’ 조항의 삭제를 제안했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럽다는 건 아니에요. 안 그래도 보수 기독교계는 이제까지 동성애에 대해 비호의적이었던 지라, 또 한 번의 혐오적인 제스처를 취한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았어요. 당연히 차별금지법을 국가인권위원회나 법무부에서 혼자서 뚝딱 만들 수는 없지요. 그건 사람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는 방식이니까요. 그래서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의견서를 받았던 것이고요.

단지 좀 의아했던 건, 작년부터 제안했던 차별금지조항의 ‘외모’ 항목 추가는 묵살한 채로 삭제 요구만을 적극 수용했다는 사실이에요. 추가 보다는 삭제가 좀 더 쉬워서 그랬나 봐요. 저는 법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니까 그저 추측할 뿐이지만요.

그런데 말이죠. 정말 그 법안이 마음에 드세요? 지금 당장도 업무 성과와는 관계없는 성 정체성 때문에 퇴사를 당하는 사람들이 천지이고, 3D 직종에서조차 밀려나 억울해 죽겠다는 동성애자들이 신고할 곳도 없이 억울해 하고 있는데, 경계 안팎에서 불안한 사람들 기어이 밀어내는 그 법안을 여러분은 정말 원하는 거예요?

설마 조항 삭제 요구가 차별금지법의 취지에 맞는 의견서라고 생각하셨어요? 차별에도 등급이 있고, 유무가 있다는 것이 명시되는 건데, 진심으로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거예요? 신 앞에서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라는 교리는 천 년이나 넘어서 이제 다 잊으신 거예요? 아, 농담 마세요. 성탄절 날짜는 잊지도 않잖아요.

아까, 상상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여러분은 혹시 동성애자의 삶이나 고민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 있으세요? 저는요. 여러분들이 그랬다고 해도, 아마 모르실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들이 어떤 공포와 무기력감에 휩싸여 있는지 말이에요.

어쨌거나 이제 차별금지법안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어요. 법안이란 건 매우 엄격한 거라서, 한 번 삭제된 항목을 이제 와서 다시 추가할 수는 없다고 하니까요. 올해 이대로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그걸로 게임 끝. 차별금지법은 영영 있으나 마나 한 돌처럼 묻히는 거죠. 이런 걸 유명무실이라고 하나요.

이런 두서 없는 편지가 귀찮으신가요? 근거 없는 말로 그저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시나요? 그렇더라도 절 괴롭히지는 말아 주세요. 굳이 여러분이 괴롭히지 않더라도 이 사회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여러분이 동성애에 신경 쓰는 것 딱 반만큼만 대형 교회비리 의혹에 집중해주시면 정말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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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2/04 [00:57]  최종편집: ⓒ 일다
 
라라 08/01/07 [16:47] 수정 삭제  
  속이 다 시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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