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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센 여자아이가 자란 후
아이들을 위한 인문학 책을 쓰는 명희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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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애가 고집이 너무 세다는 거였죠.”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불화가 심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딸애의 유별난 고집을 꺾기 위해 군인답게 군대식으로 밀어붙였던 모양이다.
“고집 센 아이들을 보면 내가 저랬겠구나 싶어요. 그런 아이의 고집을 꺾으려고만 하면 더욱 튀어나기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는 게 낫죠.”

고집 센 막내딸과 군인아버지

어머니가 막내딸이던 그의 고집에 대해 알게 된 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고.
“잘못했어? 안 했어? 잘못했지? 다시는 그러지 마.”
조근조근 타이르는 엄마의 말에 “응”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막내딸은 그 “응”이라는 한마디를 하지 않기 위해서, 입을 더욱 꼭 다물었다.

몇 번의 채근에도 아이는 점점 입을 꼭 다물자, 목소리를 높였지만, 딸애는 더 가관이었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몇 시간을 땀을 뻘뻘 흘리며 악을 쓰며 울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그때를 회고하며 ‘내가 낳은 딸이 맞는지?’라며 그의 고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한다.

아버지와는 달랐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그의 고집을 꺾기 위해, 군인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가하는 행위를 어린 딸에게도 그대로 적용했다.
“저녁 6시가 통금이었어요. 근데 저는 꼭 5분씩 늦는 거에요. 그때 저는 전혀 몰랐는데, 아마 무의식 중에 사람 화를 돋우는 거,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는 아버지로부터 중학교 때까지 벌을 받았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한 장면이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명령을 어긴 그를 벌하기 위해 발가벗겨 밖에 세워놓았다. 한겨울에 눈이 하얗게 내린 강원도 철원이었다. 군인아저씨들이 웃으면서 지나가면서 던진 말에서 어린 나이였지만 “수치심”같은 걸 느꼈다.

그때 같은 반 남자아이가 그의 앞을 지나갔다. 유독 장난꾸러기로 통하는 남자아이였기에 내일 학교 가면 “명희가 발가벗은 거 봤다”고 소문을 내고도 남을 아이였다. 순간 그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애가 내 앞을 지나가는데, 눈을 부릅뜨고 그 아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기를 눌렀어요. 그 애가 눈앞에서 멀어질 때까지 노려봤는데, 그 애가 내 기에 눌려 내 앞을 지나갈 때 얼굴을 못 들고 가는 거에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죠.”
그때 그 남자아이는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소문이 나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소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살면서, 전학도 참 많이 다녔다. 학교생활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도도해 보이는 그에게 “잘난 척한다”, “재수없다”고 험담했다. 한번은 전학간 학교에서 반 아이들이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왕따를 시킨 적이 있었다. 유독 장난이 심하고, 짓궂게 구는 여자아이들이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기도 했다.

“체육복 입고 있으면 뒤에 와서 바지를 내리고 도망가고 놀리는 거에요. 그럼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지를 올렸어요. 밥도 혼자 먹었어요. 어쩌다가 어떤 애들이 ‘왜 혼자 먹어? 같이 먹자’라고 와도, ‘난 혼자 먹는 게 좋아’라며 혼자 먹었죠.”

중고등학교 시절 자신은 “왕따”였다고 했다. 중학교 때 특히 우울증이 심했다. 전학도 많이 다녔고, 아이들이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 속으로 ‘친해서 뭐 하겠나’라고 생각하고는 혼자 다녔다. 어쩌면 그를 괴롭혔던 아이들의 행동도 관심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마음을 여는 방법을 몰랐다.

학교에선 늘 혼자였고, 집에 돌아와도 상담과 조언을 해주거나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교복을 입은 채 자고, 그대로 일어나 학교에 갔다. 학교에선 언제나 창 밖을 쳐다보며 딴생각을 했다. 그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유독 많이 했다.

“대학에 와서 유일하게 한 친구를 사귀었어요. 그 친구에게 중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어요. 어린 시절 내가 너무 외로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그렇게 무덤덤하게 모든 것을 대했던 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걸 알게 됐죠. 마치 내가 경험하고, 당하고 있는 일인데도, 나와 상관없는 일처럼…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분리시켜서 받아들였죠. 그땐 딴 세상 사람처럼 행동했던 것 같아요. 이젠 소통하는 게 중요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많은 시간이 지난 일인데도, 그는 그때 얘기를 할 땐, 어느 순간엔 눈가에 물기가 맺히기도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다 지난 일인데도. 어쩌면 아픈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일까. 그는 유독 자기처럼 적응을 잘 못하고, 고집 센 아이들을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어른들이 관찰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지도.

‘글 쓰는 것 자체가 꿈이구나’

그는 현재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면서,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인문학 책을 구성 중에 있다. “글을 쓰는 게”의 그의 꿈이다. 이제는 “글 쓰는 것”이라고 꿈이라고 답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글쓰는 것 자체가 꿈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조금은 돌아왔던 것 같다.

예전에 언젠가는 한 잡지사 기자로 들어갔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내 몇 개월 안돼 그만뒀다. 남자 상사들이 추근덕대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을 때는 진저리가 나긴 했지만, 선배 여기자들이 다독여주기도 했고, 그럭저럭 견딜만하기도 했다. 그냥 거기에 적응하고 살면 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그냥 이렇게 살게 될까봐.”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살고 싶었다. 레스토랑, 빵집 등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지점을 가지고 있다는 레스토랑에서 일한 적도 있는데, 아르바이트 교육시킬 땐 시급도 지급하지 않는 등,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구조”였다. 임금을 적게 주려고 관리직원이 “나가서 쉬세요” 하면, 모두들 어디 나가서 30분씩 쉬다 와야 했다. 갈 데 없는 사람들은 좁은 탈의실에 30분을 쪼그리고 앉아 시간을 때웠다.

그는 “이런 상황에 왜 참아야 하지?”라며 주변 사람들과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지만, 관리직과 아르바이트 중간 정도 있는 사람이 “명희씨 이상하다?”라고 나왔다. 그래서 그는 “이것도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쓰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갔다.

요즘은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기 위해,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더듬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동화라는 장르를 택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어서 책 구상에 좀 바빠졌다. 조금은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는 인터뷰와 번역, 시나리오 등 “글 쓰는 일”의 언저리에 있었던 셈이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가 유독 아이들을 잘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작을 뿐이지, 사람들이에요. 아이들의 세계도 어른들의 세계와 별로 다를 바 없죠.”
각자 저마다 기질과 개성이 다르고, 또 연령대마다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다양한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흥미진진했다.

그가 지금 구상 중에 있는 책이 기다려진다. 나도 어른의 눈을 벗어나 유년의 시절로 돌아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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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2/26 [03:39]  최종편집: ⓒ 일다
 
티티 07/12/28 [02:11] 수정 삭제  
  악연이었겠네요.. 고집센 막내딸과 군인아버지는...

저의 어린시절과 어린시절 친구들을 떠올리게되는 분이네요. 고집센 조카녀셕에게 왠지 정이 더 가게 되구요. ^^ 좋은 작품만드시길 바래요.
mycin 07/12/29 [21:37] 수정 삭제  
  글을 쓰는 꿈..
길을 찾아가시길 바래요.
호호할머니가 될 때까지요.
고질라 08/01/02 [02:51] 수정 삭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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