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 주장 정면 반박한 법원판결문
“KTX여승무원 실질적 사용자는 철도공사”
윤정은 | 입력 : 2007/12/27 [23:42]
KTX 승무원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지금 KTX 승무원들은 또다시 서울역 앞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천막을 치고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이유는 노사간 합의된 사항에 대해 사인(sign) 정도의 절차만 남겨둔 시점에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이철 사장)가 돌연 태도를 바꾸어 합의된 사항을 파기한 것.
이런 가운데 법원이 ‘한국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실질적인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판결한 내용이 주목을 끌고 있다.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KTX 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 등에 대한 형사소송에서, 민씨에 대해 업무방해 등에 대해선 “벌금 150만원”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위반(공동주거침입) 부분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이 사회적 주목을 끌고 있는 이유
이 판결이 사회적인 주목을 끌고 있는 부분은 선고내용보다, 판결문에서 KTX승무원들에 대한 실질적인 사용자를 한국철도공사라고 명시한 대목이다.
판결문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실질적인 사용자 여부’에 “KTX 여승무원들이 한국철도유통과 체결한 근로계약은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KTX 여승무원들은 사실상 한국철도공사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해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지난 KTX 승무원들의 2년간의 투쟁에서 한국철도공사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은 판결이다. 그 동안 철도공사는 KTX 승무원들에 대해 실질적인 사용자임을 부인하며, KTX승무업무를 한국철도유통(구 홍익회)에 위탁했으므로 철도유통이 KTX승무원들의 사용자라고 주장해왔다.
판결문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지자, 한국철도공사는 곧바로 법원 판결을 반박하는 입장을 냈다. 27일, 철도공사는 “이번 판결은 민세원씨 개인에 대한 판결”이고, “법원이 당시 승무원들의 집단적인 근무거부 행위가 적법한 쟁의행위였는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코레일을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로 볼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에 불과하므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철도공사는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판단이유로 들고 있는 대부분의 사실들은 노동부의 2차례에 걸친 조사 등에서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이에 기초하여 노동부가 적법 도급 판단을 내린 바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철도공사, 법원의 판결 폄하하고 나서
한국철도공사는 “법원이 코레일을 사용자로 볼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며 판결문 내용을 폄하하면서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법원의 판결문은 철도공사의 해석처럼 “사용자로 볼 수도 있다고 언급한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판결문에서 한국철도공사 측의 그간 행태와 사실 20여 가지를 일일이 열거하면서, 철도공사가 KTX승무원들에 대해 실질적인 사용자 지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시했다.
즉, 2003년 9월 한국철도공사가 KTX승무원 업무의 도급위탁을 검토하면서, KTX승무원 업무는 열차소장, 팀장, 여객전무 등의 관리자의 지시와 감독에 의해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도급위탁은 곤란”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으면서도, 2004년 12월 한국철도유통과 위탁협약을 체결한 사실에 대해 먼저 지적하고 있다.
이는 ‘철도공사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뜻으로, 도급 위탁할 수 없는 KTX 승무업무를 한국철도유통에 위탁한 것부터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성노동계, 시민단체 “빠른시일 내에 직접고용하라”
판결문은 이런 사실 외에도 “KTX 여승무원 업무에 대해 한국철도공사가 10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사실”과 “한국철도유통이 KTX 여승무원들을 채용함에 있어 채용인원 등에 대해 한국철도공사와 긴밀히 협의하였고, 채용면접관으로 한국철도공사 소속 간부가 참여하기도 한 사실” 등 수많은 사실들을 근거로 해서, 기존의 한국철도공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판결문 내용이 알려지자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환영 논평을 내고,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KTX.새마을호 여승무원을 직접고용”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여성노조, 민주노총, 한국노총, 한국여성노동자회, 민우회, 여성연합 등이 참여한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이번 판결은 철도공사의 사용자 지위를 명확히 하고, 위장 도급을 통한 철도공사의 탈법행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논평했다.
또한, 최근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들이 다시 서울역에서 농성을 재개한 것에 대해 “(승무원들이) 역무계약직으로의 직접고용에 합의한 것은 생존권을 위해 모든 비판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내린 결정”이라면서, “그런 합의서마저 이철 사정은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참여연대도 논평을 내고, “이번 판결을 통해 승무원들의 정규직화 요구의 정당성이 확인된 만큼 빠른 시일 내에 KTX 여승무원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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