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절실한 생명력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노조수연 | 기사입력 2008/01/14 [01:45]

그녀들의 절실한 생명력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노조수연 | 입력 : 2008/01/14 [01:45]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나 역시 핸드볼, 그것도 ‘여자’ 핸드볼이라는 비인기 종목에 그다지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던 무심한 국민 중 하나다. 비단 여자 핸드볼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스포츠와 월드컵, 올림픽을 포함한 경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니 차별은 아니렷다. 다만 온 국민이 축구나 프로야구 등 특정 인기종목에 열광하는 현상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 열정이 고르게 분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뿐이다.

이러한 무관심은 운동을 싫어하거나 얕봐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스포츠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상황과 한계에 도전하게 함으로써 숭고와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본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라오면서 보고 들어서 느낀 바, ‘프로’의 자격으로 스포츠를 업으로 삼아 하시는 분들의 처절한 절차탁마는, 이 나약한 정신세계가 견딜 수 있는 범위를 월등히 넘어선 것이었다.

아마추어들이 그 자체를 즐기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로, 선수들에게 경기는 극단적으로 말해 인생이고 전장이다. 그 힘겨운 싸움에 응원 군이나 풍부한 지원이 있으면 승산이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던 여자 핸드볼 대표팀에게는 지원보다 장애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임순례 감독의 간만의 복귀 작으로, 영화를 보기 전에 전작 <세 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너무나 다른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사회적 마이너리티에 대한 감독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세월이 지나는 동안 ‘아줌마’라는 코드를 영화에 녹여내는 법은 더욱 능숙해진 것 같다.

물론 ‘한국’의 ‘아줌마’라는 독특한 그룹은 수많은 매체에서 재현되고 다루어져 왔다. 그들에 대한 전형적인 규정-억척스러움, 뻔뻔함, 강한 생활력, 시끄러운 수다, 임전무퇴 정신, 뽀글 파마 등-의 스펙트럼에 이 영화는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관점을 하나 더했으니, 바로 그들이 왜 그렇게 절실하게 생명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그 시선은 이해심에 차 있으면서도 안타까워한다. 핸드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미숙(문소리)이 어째서 마트에서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아이를 데리고 훈련에 참가할 수밖에 없는지를. 미숙은 남편의 도박 빚 독촉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라이벌이자 동료였던 감독대행 김혜경(김정은)의 요청을 받고 핸드볼 대표팀 훈련에 참가한다.

혜경은 일본에서 핸드볼 팀 지도자를 맡아 실력을 인정 받고 있으면서도 ‘이혼경력이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감독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그녀가 그 모든 모욕을 감수하면서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선수의 자리를 받아들인 것은, 미숙과 마찬가지로 이루어야 할 꿈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전형적인 ‘아줌마’ 캐릭터에 부합하는 송정란(김지영)은 은퇴할 즈음 기량이 일취월장한 경우로, 남편(성지루)의 정성스런 외조를 받고 선수촌에 들어오긴 하지만, 선수시절 생리주기를 조절하기 위해 복용한 약으로 인해 불임이 된 아픔을 가지고 있다. 골키퍼 오수희(조은지)는 ‘아줌마’ 네 명 중 가장 어린 편이지만 ‘운동하는 여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맞선 본 남자로부터 무례한 뒷담화를 들어버린다. 물론 그 남자는 적절한 보복을 당했다.

이처럼 핸드볼 대표팀에 참여한 네 명의 노장선수들에게는 각자의 아픔이 있지만, 핸드볼에 대한 열정만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신임감독 안승필(엄태웅)과 신진 선수들과의 충돌 과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일탈과 복귀는 빠르게 이루어진다. 그것은 이 ‘아줌마’들이 자존심이 없거나 뻔뻔스러워서가 아니라,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요소들은 과감히 치워버려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생애 마지막 올림픽 경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절실하다. 그것은 ‘대한민국’ ‘대표’라는 국가적 사명 이전에, 스스로의 내면에서 불타오른 욕망이다. 그 열정과 의지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놀라운 명승부를 탄생시킨 힘임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탄탄한 내러티브와 완벽한 장면을 연출하기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편이다. 사실 124분의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굳이 저 장면을?’, ‘저 맥락은 좀…’이라고 자문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순 없다. 또한 노장선수들과 신진 선수들의 대립과 화해 과정, 핸드볼 시합 연출 역시 세련된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비단 영화를 풀어내는 방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선수단이 동고동락하며 보낸 고된 훈련의 시간을 녹여내기에 124분도 짧기 때문일 것이리라. 또한 이 영화가 ‘핸드볼 경기’보다 그 안에서 뛰는 각 개인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을 응원하는 국민으로서, 그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이라는 결과로서 기억하고 있을 뿐인 그 순간, 혹은 좀더 극적인 명승부를 보여줬던 경기 정도로서 기억하는 그 순간이 이 영화를 통해 엄혹한 현실을 딛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생애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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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굴 2008/02/02 [11:50] 수정 | 삭제
  • 핸드볼 경기를 봤더니, 진짜 다르게 보이더만요...
    멋진 선수들... 화이팅. ^^
  • jini 2008/02/01 [18:06] 수정 | 삭제
  • 간만에 볼만한 영화였죠.
    마지막 장면이 가장 좋았다는.
  • rim 2008/01/26 [00:20] 수정 | 삭제
  • 볼만했고, 만들만했던 영화인데
    임순례 감독에겐 좀 실망했고
    영화를 많은 분들에게 추천을 해주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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