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에 ‘독립의 꿈’을 품다

반백 년의 담장을 넘어

허선미 | 기사입력 2008/01/15 [05:20]

나이 오십에 ‘독립의 꿈’을 품다

반백 년의 담장을 넘어

허선미 | 입력 : 2008/01/15 [05:20]

내게 독립은 어릴 적부터 이루지 못할 꿈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언제나 독립을 품고 살아온듯하다. 무엇으로부터 어디로부터의 독립이었을까.

사춘기 시절 방문을 걸어 잠그던 것이 독립을 향한 나의 첫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방도 나만의 방은 아니고, 식구들 누구나 들어 올 수 있고, 필요하면 내놓아야 했으니(할머니라도 오시면 함께 지내야 하고). 아니, 그래도 그때는 내 방은 있었잖아.

결혼 후엔 나만의 공간은 부재하고, 그런 생각 자체가 허용이 안 되는 구조 속에서 뭔가 숨 막혀하며 살아왔다. 남자와 맞춰보지 못하고 부모님 뜻에 따라 결혼했다. 가장 힘든 것은 공간이 주는 억압이었다. 혼자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 항상 함께해야 했고, 함께하는 삶에서 나의 의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못했다. 모두들 당연히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분위기에 휩싸여, 나 혼자 ‘이거 아닌데..’ 할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행복하다고 느껴야 할 것 같았다. 그러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일 까봐 아무에게도 말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이게 행복한 시절이라고 추억하게 될 건데 왜 나는 지금 행복하거나 만족하지 못할까’ 하며 풀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살았다.

생각해보면, 대학시절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난 참 난감했다. 이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면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이상한 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유배지와 같았던 결혼생활

신혼은 참 갑갑했다. 취향이 다른 음악을 들어야 하고, 싫어하는 티비 소리를 매일 들어야 하고. 티비 소리나 시끄러운 팝이 듣기 싫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았다. 힘들어 하는 나를 보고 이웃들은 ‘곧 적응하게 될 거다’라고, ‘어쩔 수 없다’고, ‘결혼했으니 남편보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도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나 좋으냐, 신랑하고 둘이만 살고. 그리고 그렇게 자상한 남자랑.’ 항상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문제다. 내가 별나서 그렇고, 내가 욕심이 많아서, 내가 부족해서. 언제나 결론은 나였다.

결혼생활에서 나는 없었다.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으련만. 사실 나는 언제나 내 속에서 살아있고 소리치고 힘들어 했지만, 나도 나를 도울 줄 몰랐다. 운명이거나 팔자거니. 빨리 늙고 싶었다. 그 수밖에 없었다. 발목 잡힌 듯한 느낌.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올가미까지 씌워진 듯했다. 나는 억눌려있었고, 며느리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만 존재했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갈 곳이 없어 결혼한 것인데, 여기서도 적응 못하니 이제 어딜 가야 하나.

분노는 쌓이고, 허탈과 허망함은 늘어가고, 나는 더욱더 못난이가 되어갔다. 이런 나를 모두들 비난했다. 남편은 자신은 생활에 불만이 없다며, ‘당신의 문제인 것 같으니 당신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다.

그 당시 우리는 남편회사 사택에 살았다. 주위 여자들은 그 곳을 “여성천국”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나는 유배지에 보내진 죄수의 삶 같았다. 어느 날 옆집 여자에게 말했다 “우린 여자이기 이전에 인간 아냐?”라고. 그 여자가 대답했다. “난 인간이기 이전에 여자라고 생각해.” 그 여자도 결혼 전에는 나처럼 학교 교사였는데. 가부장제 속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여자들이라 그랬을까?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외롭고 힘들었다.

가정폭력도, 남편의 외도도 없는 상황을 답답하고 힘들다고 하면 누가 나를 이해할 것인가. 나는 무엇일까. 나는 성공적인 결혼생활도 못하고 튀어나가지도 못할까. 합류도, 탈출도 못하는 나는 누구인가? 여자들이 말하듯 교만해서, 남자들이 말하듯 욕심이 많아서? 나는 ‘나’이고 싶었다.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와 말 통하는 이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순응해야 살 수 있었고, 살기 위해 적응하려 애썼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러 드디어 내가 바라던 대로 나이가 들었다. 나를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아니, 이젠 아이들은 다 자라서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은 간섭일 뿐이었다. 드디어 나는 나에게 간섭하기 시작했다. 집밖을 나와서 나와 다른 형편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마음은 벌써 가부장제의 담을 넘었다

난생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생겼다. 여태까지는 하라고 했으니까, 나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주어졌기 때문에,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서 했다. 여태까지는 내가 알아야 하는 것들이라서, 내가 배워야 하는 것들이라서 배우고 공부했다.

나는 오십도 지난 나이에 여성학이라는 생뚱맞은 공부를 시작했다. 여성학은 누가 나에게 하라고 하지도 않았고(왜 그딴 것을 하냐고), 내가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해서 어디다 쓸 거냐고),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단지 알고 싶었다. 내가 여자이기에 이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시절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토록 힘들게 살아온 것은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고, 내가 별나서가 아니고, 어쩜 내가 정상인지도 모르니까.

여태껏 내가 느끼고 생각하여 옆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묻고 한 것을, 벌써 오래 전부터 이야기했던 여성들이 있었는데, 그리고 지금도 있는데, 난 몰랐었다. 내가 이상해서, 내가 문제인 줄만 알고 혼자 끙끙거리며 외로워했던 시간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내 나이 50이 훨씬 넘도록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나 스스로 결정해서 하는 일이 이게 처음이란 사실이다. 그 사실에 감격하고 흥분했다. 나 스스로 결정하고,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서, 정말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것에.

나는 이제 독립을 꿈꾼다. 가부장제의 담을 넘으려 한다. 반백 년 동안이나 누군가에 의해, 누군가와 함께, 누군가의 힘으로 살아온 나인데, 스스로 세상에 나가 살 수 있을까. 두렵고 망막하여 아직도 이러고 있지만, 마음은 벌써 담을 넘었다. 이제 경제적 독립을 꿈꾼다. 50 넘도록 살았지만 내 앞으로 된 통장 하나 없는 자신을 한심스러워하고 있기보다, 지금부터라도 독립을 향해 준비하고 싶다.

<나, 독립한다> 책을 읽다가 본 “모든 길은 내게 열려있다. 문제는 내가 그 길을 통하는 문을 열 자신이 없을 뿐이다”라고 적힌 글귀가 나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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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회동 2014/12/18 [14:58] 수정 | 삭제
  • 다소 깊은 하지만 쉽지않았을 고민들을 하나하나 매듭풀고 나아가시는 모습이 진정 멋지고 아름다우시네요
  • 3333333 2011/07/04 [21:01] 수정 | 삭제
  • 나도 뭔가 만들어 낼 수 있는데,나도 뭔가 이룰수 있는데 나는 지금 뭘하고 있는건가?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조력자역할 밖에 할수 없는건가?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에 있는건가? 나를 찾자..나를..최소한도 시도라도 해보자..
    좋다..멋지다..그래서 독립을 현실화 시켰다. 불굴의 투지가 끓어오른다.열정이 생긴다 ..새로운 열정,이 나이에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솟아오르는 열정이 가슴을 뛰게한다.
    찬바람 휑휑부는 허허벌판에 서있어도 나는 힘들지 않았고 자유와 독립이 주는 희열을 느끼며 그정도는 능히 감당 할 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또 그렇게 흘렀다.
    자유와 독립.. 자아을 찾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자유와 독립..그것들은 도대체 내게 왜 필요했던 것 이었을까? 무엇을 위해서 그것들을 갈구했던 것 일까?....
    멀고 먼 험한길을 돌아서 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얻은것이 있다면 자유와 독립이 최종목적이 될 수 없다는것과 예전엔 하찮게 보였던 이자리가 그리 쉽게 얻어지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앎으로서 나는 다시 미소를 머금을 줄 알게 되었다.
  • 회색연필 2011/04/25 [21:01] 수정 | 삭제
  • 그 시절이 좋을 때다. 라는 그 말, 얼마나 더 이상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공감했습니다.
    저도 제 스스로가 문제인가를 생각하다 여성학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한 발을 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 나른 2008/04/27 [02:44] 수정 | 삭제
  • 읽다가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 엄마도 마흔 중반이 넘어서야 온전히 엄마의 공간을 가지게 되셨는데, 가족과 함께 할 때는 몰랐던 엄마의 공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화장품을 좋아하는, 옷을 좋아하는, TV를 즐겨보지 않는 엄마는 가족 안의 엄마가 아니었거든요.

    앞으로는 더 즐거운 나날들이 있을 거에요. :)
  • 날개 2008/02/23 [14:19] 수정 | 삭제
  • 그럴 때가 있죠.
    주위에 제가 아는 분들 중에도
    시대를 잘못 타고 나셔서..
    저렇게 날개를 못펴고 소통을 못한 채 살아오셨구나 하는 안타까운 느낌.
    또래의 사람들과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외로운...
    허선미님도 그분들 중의 한 분인 것 같아요.
    아까운 시절을 보내시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세대를 건너서, 혹은 국경을 넘어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친구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허선미님은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시네요.
    축하합니당.
  • pepe 2008/02/01 [20:03] 수정 | 삭제
  • 멋지십니다.
    유배지 생활을 하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시는 분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 자유의 호흡, 함께 지지하고 싶습니다.
  • 대님 2008/01/26 [10:49] 수정 | 삭제
  • 반백을 지나 새출발하시는 것을 축하드리고 ..존경의 마음을 보내요~
  • lavie 2008/01/17 [18:22] 수정 | 삭제
  •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때,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엄마는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내게 내방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도데체 이해할 수 없었죠.
    왜 갑자기 들어오셔선 텔레비전 재밌게 보고있는 날 다른방으로 내쫒는지..
    저는 소위 말 잘듣는 아이였기에 엄마에게 'TV끄고 나가? 아님 그냥 나가?'
    라고 물어보고 '끄고가라'는 엄마말에 끄고선 방을 나왔죠.

    그러면 엄만 안방문을 잠그시고 그렇게 한두시간을 있곤 하셨어요.

    이제야 그때 생각이 나네요. 엄마가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요즘 저희엄마는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고 계시는데,
    가끔 전화통화를 할때면
    자유로워 좋다. 참 좋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엄마를 한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게 하는 글이었기에
    가슴이 찡합니다.
    엄마께 <나, 독립한다>를 선물해야겠어요.
  • .. 2008/01/17 [00:59] 수정 | 삭제
  • 당연히 행복하다고 느껴야만 하는 분위기
    분위기로의 탈출.........
    그것이 독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 xbsk 2008/01/15 [14:52] 수정 | 삭제
  • 멋진 독립이야기네요. 지난 시간들도 헛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허선미기자님, 멋집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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