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진짜 교육 아니겠니?”
원칙이 있는 양육
박희정 | 입력 : 2008/01/18 [05:09]
친구는 얼마 전에 있었던 ‘특별한’ 경험을 전하며 눈을 반짝였다.
스웨덴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친척이 네 살, 여섯 살의 아이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를 방문했다고 한다.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친구는 ‘늘 하던 대로’ 옆에 앉은 아이에게 음식을 먹여주려 했다.
그러자 그 친척은 ‘음식을 먹여주는 행동’을 제지시켰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너에게 이모가 밥을 먹여주려면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설명해주면서 혼자 음식을 먹게 했다. 두 아이는 식사 시간 내내 식당 안을 돌아다니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서 식사에만 집중했다.
식사 후 옮긴 곳에서, 진열된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친구는 인형을 선물하려 했다. 친척은 이 역시도 제지했다. “선물은 일년에 두 번, 생일과 크리스마스면 충분하다. 선물을 너무 자주 주면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잊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친구는 “이런 게 진짜 교육 아니겠니?”하며 친척의 양육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혼자서 할 수 있도록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 ‘안 된다’고 말할 때도 이유를 설명하며 납득을 시키는 과정을 거치는 것. 그것은 모두 아이를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키워주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관된 양육철학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배운 아이는 어른들의 눈치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행동을 적절히 조절하게 된다.
흔히 우리 나라가 교육열이 높다고 하는데 그 교육이라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것’에만 치중되고 공정함, 타인에 대한 배려심, 자립심 등의 덕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일에는 너무나 무관심하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주체로 인정하기 전에 ‘돌봐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공부만 잘하면 다른 건 상관없다는 생각, 식당에서 떠드는 아이의 ‘무례함’을 ‘기 살리기’로 혼동하는 것은 양육철학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의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어른들을 기르는 것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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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xmfna 2008/02/01 [20:05] 수정 | 삭제
- 참 2008/01/21 [00:08]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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