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

아동미술 교육자 박상은

박희정 | 기사입력 2008/03/05 [21:39]

내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

아동미술 교육자 박상은

박희정 | 입력 : 2008/03/05 [21:39]
▲ 박상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점이 없어요. 그래서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상은씨는 10여 년째 초중고생들에게 미술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가르치는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그래서인지 예전에 그가 가르친 제자들 중엔 잊지 않고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에도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이 ‘대학생 됐으니 술 한자 하자’고 해서 만났다.
 
“아이들이 청소년이었을 때는 ‘최소한 선생님으로서의 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과 선택할 때는 이런 과가 좋다’는 식의 뻔한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이 있었죠. 그런데 애들이 대학생이 되어서 만나니까 그런 의무감 없이 만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즐거웠다는 상은씨. 제자들은 ‘선생님. 이제 선생님 같지 않아요’하면서 다른 좋은 호칭이 없을까 고민하더니 “왕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상은씨는 문자를 받고 ‘이제 또 한 명의 친구가 생겼구나’ 하고 기뻤다고 한다. 그는 친구처럼 지내면서 믿고 의지하는 인간적인 관계를 지속하는 제자들이 생겨난다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하나씩 진심으로 부딪혀가면서 해법을 찾아
 
상은씨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왔다. 그는 ‘가르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느끼고 얻게 되어 보람 있다’고 했다.
 
한번은 조울증에 걸린 중2남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친구를 심하게 때려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적도 있는 아이였다.
 
▲ 박상은님의 그림
“그 학생을 맡겠냐고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무서웠어요. 그렇지만 내가 안 해본 길이고,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해서 만나고 싶었어요. 부모님도 하지 말라고 말리셨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우려와 달리 아이와의 수업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아이는 워낙 피아노와 미술을 좋아해서 그걸 할 때는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보통의 일반 과정대로 미술을 가르쳤죠. 조울증 아이라고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감정의 동요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상은씨는 자폐아동을 가르친 경험도 많다. 사실 특수교육 쪽을 배운 적은 없어서 처음에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했다고 한다. 그럴 때 그가 찾은 해법은 어머니나 할머니 등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방법을 터득해갔다.
 
“자폐증세가 있는 학생들 중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가르치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림으로 방송에도 나오고 미술대회 입상도 많이 한 아이죠. 어머니도 아셨을 거에요. 처음에 제가 막막해했다는 걸. 그런데 그 과정을 지켜봐 주셨어요.”
 
하나씩 진심으로 부딪혀가면서 해법을 찾아가는 상은씨에게, 어머니는 아마도 깊은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미술치료의 길로 들어서다
 
▲ 박상은
상은씨는 아동미술심리상담가 1년 과정을 거쳐 4월에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치료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상은씨가 미술치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역시 가르치는 현장에서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처음 미술치료를 알게 되었을 때는 미술을 통해서 병을 고친다고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미술치료는 심리상태를 알아보는 다른 여러 검사의 일부분이에요. 의사도 못 고치는 마음의 병을 고친다기보다는 ‘표현하기 어려운 심리표현을 도와주는 또 다른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겁니다.”
 
얼마 전 아동미술심리상담가 수업의 마지막 과정으로 논문을 쓰게 됐는데, 한 아동을 정해서 미술치료를 하는 과정과 결과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었다. 상은씨가 맡게 된 아이는 경도의 정신지체를 가진 아이였다. 그러나 정신지체 정도가 약할 경우에는 정신지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방치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아이의 경우가 그랬다.
 
아이의 부모가 아이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데다가,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잠들 때까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였다고 한다.
 
“수업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님을 만날 수가 없었고, 전화로만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전화상으로 ‘정신지체 같습니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제가 배우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우회해서 표현을 했지요.”
 
장애판정을 받는 것이 이후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도 시계를 읽을 수 없고, 순조로운 진학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부모님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이들과 만나다 보면 이런 고민을 종종 겪게 된다고 한다.
 
“가르쳤던 아이 중에 심하게 감정통제가 안 되는 아이가 있었어요. 어머니에게 심리상담을 해보시라고 권유했지만 ‘우리 애 아빠가요, 그런데 왜 가냐고 그래요’ 하고 마시더군요. 그럴 때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없고 매우 안타깝죠.”
 
“애들이 주는 에너지가 엄청나요”
 
▲ 학생의 작품
아이들과의 미술수업은 상은씨에 감동과 영감의 원천이다.

 
“웬만한 작가들보다 기막힌 상상력의 표현을 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될 때도 있어요. 애들과 작업을 하면서 상상력에 자극을 받게 돼요.”
 
상은씨는 “애들이 주는 에너지가 엄청나다”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오늘은 표정을 그릴 거야. 이 칸에는 화난 얼굴, 다른 칸에는 웃는 얼굴을 그려보자”하면, 보통은 사람 얼굴을 그리지만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는 한 쪽은 웃고 있는 해님을, 다른 한쪽은 화난 복숭아 얼굴을 그린다고 한다. 복숭아 옆에는 복숭아를 베어 먹은 생쥐가 있고, 말 칸이 써 있다. ‘너 내가 먹지 말랬잖아.’
 
상은님은 아이들이 “그런 표현들을 할 수 있는 게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도교육의 병폐가 주는 고민은 미술교육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상은씨도 그런 점들이 자신의 ‘숙제’라고 말한다.
 
“어머니들도 여기저기서 들으시니까 창의력이 중요하고 선생님의 터치가 많으면 좋은 그림이 안 나온다는 것도 아세요. 그러면서도 학교교육에 맞춰야 하고 상도 받아야 하고. 뒤에 아이들 그림을 죽 붙여놓으면, 자기 아이 그림과 다른 아이 그림을 비교하고 우리 아이는 색깔이 요기 안 채워졌네, 왜 인물이 작게 그려졌을까. 그런 식으로 보시지요.”
 
외국 아이들 그림과 비교해 우리 나라 아이들 그림은 전형적인 특징이 있다고 한다. 빈틈없고, 색깔 많이 쓰고 주제가 선명한 것 등이다. 상은씨는 “나무를 그려도 우리나라 아이들이 잘 그리는 모양이 있다. 그런 교육 속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도 크면서 머리가 굳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렇지만 상은씨는 “현실이 아쉬워도 최대한 노력을 하고 아이들의 창의력을 살려주려고 한다”. 아이가 창조적인 표현을 하면 꼭 학부모에게 “지금 이 아이는 성인들이 표현 못하고 있는 걸 하고 있는 거다”라고 말씀 드리는 일도 잊지 않는다.
 
미술교육자이자 한 사람의 ‘화가’로서 상은씨는 새롭게 일다에서 일러스트 연재를 시작했다. ‘자기 내면의 표현’인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는 상은씨는 “앞으로 사회문제나 사건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그림도 그려보고 싶다”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에너지 충만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상은씨가 펼쳐 보일 세계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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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j 2008/03/07 [18:55] 수정 | 삭제
  • 앞으로도 기대하며(쩜쩜쩜). ^^
  • 갈새 2008/03/07 [00:14] 수정 | 삭제
  • 아이들의 표현력에 깜짝깜짝 놀랄 때 있죠.
    그냥 말로만 아이들의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로, 진짜로 말이에요.
    나의 어린시절에도 저런 면이 있었을까, 내면에 아직도 감춰져있을까 싶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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