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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경계를 넘은 것일까
[특별기획] 재일조선인 여성 조경희로부터 듣다①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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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국사회에서 관심의 밖에 있었던 재일조선인들의 존재가 최근 방송이나 영화, 다큐멘터리를 통해 부각되었다. 강제 퇴거 위기에 몰렸던 재일조선인 마을 ‘우토로’와 일본의 총련계 조선학교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 도쿄에 위치한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매스컴을 타고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우토로 마을  © 나카야마 가즈히로 촬영, 페민 제공
우토로 마을의 경우 2008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30억 원에 이르는 지원예산을 책정해 문제해결에 나서는 한편, 많은 시민들이 우토로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금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몇 년 사이에 달라진 풍경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재일조선인 그들은 왜 이제야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일까. 이들은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한국전쟁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왔는데, 왜 우리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는 재일조선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매스컴을 통해 알게 된 정보와 이미지조차 제대로 된 것일까. 너무도 늦게 찾아온 이런 의문들이 새삼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재일조선인과 한국사회, 일본사회 속 재일조선인, 그리고 한반도 위에 살아가고 있는 남북한 사람들과 재일조선인. 한반도 또는 한국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되물으며 ‘재일조선인 여성들이 말하는 정체성과 경험, 그리고 역사’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앞으로 일다에 칼럼을 연재할 조경희씨와 림혜영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낸 삼십 대 재일조선인 여성이며,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경험들로 구성된 개인의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주며, 다양한 재일조선인 여성들의 정체성과 우리의 현재를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편집자 주]

나는 일본에서 태어난 ‘쵸센진’이다
 
한국에서 4년째 살면서 처음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설레면서도 부담감이 앞선다. 독자들이 읽을 만하다고 생각할 글을 과연 쓸 수 있을까. 어설픈 한국어 실력으로 내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털어 놓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렇게도 많은데 무슨 말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이것저것 생각을 하다가 여기에 사는 몇 명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오랜만에 그 친구들에게 편하게 말을 거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가식적이지 않는,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는 솔직한 말로. 아마도 일다 독자들이 원하는 글도 그런 글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이다. 가끔씩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인이라니… 옛날사람? 북한사람? 어쨌든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일본사회 또한 이 이름 속에서 잊고 싶은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 불편해한다.
 
이 호칭에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을 말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몸 담근 양쪽 사회에서 기피하는 이 이름을 소중하게 여긴다. 조선사람, 조선인, 쵸센진… 나는 일본에서 태어난 ‘쵸센진’이다.
 
학창시절을 보낸 조선학교 

▲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Our School, 2006) 스틸 컷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다녔다. 일본 도찌기현이라는 시골 숲 속에 위치한, 전교생이 120명 남짓한 아담한 학교에서 9년을 지냈다. 그곳에선 초등학교 1학년생과 6학년생이, 5학년생과 중학교 3학년생이 함께 어울리고 노는 일이 보통이었다. 집에서 1시간 전철을 타야 하는 통학 길 또한 언니오빠들과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보면 금방 지나갔다.

 
이 가족적인 분위기는 살벌한(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본사회에서 소수자로 사는 재일조선인 아이들에게 확실히 정서적인 안정을 준 것 같다. 나에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나 애정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조선학교에서 배양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따뜻한 공간은 아주 폐쇄적이며 보수적이기도 하였다. 학교에서는 매일과 같이 우리가 ‘단결’할 필요성을 가르쳐 줬지만, 바깥 세상을 살아갈 지혜는 그다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재일조선인 아이들의 약 10%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도 몰랐다. 왜 일본노래를 부르면 안 되는지, 왜 여자들만 치마저고리를 입어야 하는지, 왜 남자선생님들이 항상 목검을 들고 다니는지… 사실 그 당시 나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기에는 너무 어리고 순진했다.
 
졸업하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조선학교를 말하는데 항상 어려움이 따른다. 내가 하는 한 마디의 말이 대표성을 갖게 될까 고민이 되고, 누구를 향한 말인지 그 정치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의 모교, 학생수가 30명을 밑돌아 폐교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알려진 그 조선학교의 모습을 내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고, 이제 그 현실을 모든 재일조선인과 한국사회의 눈에 드러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에 이어진 조선학교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한국땅 밟은 지 7년, 아직도 많은 경계선 위에서
 
그런데 이렇게 조선학교를 다니고 ‘조선적’(朝鮮籍: 일본에 거주하면서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적을 갖지 않고 일본에 귀화하지도 않은 이들이 갖는 행정상의 적)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한국은 결코 친숙한 땅이 아니었다. 가고 싶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금기의 나라, 단지 상상 속의 조국일 뿐이었다. 대학시기까지만 해도 ‘남조선’으로 배워왔던 지역을 ‘칸코쿠(한국)’라는 나라 이름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거북하였다. 그래서 항상 괄호를 달았다.
 
한국정부가 발행한 ‘임시여권’과 북한식/일본식이 섞인 딱딱한 ‘우리 말’을 가지고 처음 이 땅을 밟은 것은 2001년 겨울이었다. 예상보다 높았던 언어의 벽, 그리고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도 한몫 거들어 긴장 가득한 10일간의 여행. 그 때부터 7년이 지나면서 어느새 나의 ‘우리 말’은 서울말에 가깝게 교정이 되었고 국적도 바뀌었다. 여기서 가족을 꾸리고 조금씩 돈도 버는 생활인이 되었다.
 
지금도 문득 이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나는 과연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어떤 경계를 넘었던 것일까? 나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지리적인 혹은 제도적인 경계 넘기가 사람을 더 자유롭게 만든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지, 나는 아직도 그 많은 ‘경계선’에 구애 받고 있지 않은가.
 
그 동안 끊임없이 고민해온 ‘나’에 관한 문제들을 이 짧은 글에 담는 것은 일단 포기해야겠다. 앞으로 나는 ‘나’의 고민을 개인적인 문제로서가 아니라 재일조선인의 문제로서, 혹은 디아스포라 여성의 문제로서 풀어나가려고 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지만, 이제는 내 마음 속에서 맴돌았던 이야기들을 조금만 더 바람 통하는 곳에 드러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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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3/10 [20:01]  최종편집: ⓒ 일다
 
포도당 08/03/11 [01:40] 수정 삭제  
 
이전에는 재일조선인에 대해서 잘 몰랐고,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는 생각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영화를 몇 편 보면서는 이것저것 찾아보게 된 것 같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내가 알게된 것만큼 조금은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부분도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일다에서 스크린 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 생각하니 반갑네요. 영화들도 다 남자들이 주요 인물들이라서 동일시하는 대상중에도 여자 캐릭터는 없었는데, 앞으로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08/03/11 [15:31] 수정 삭제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을 더 얻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박하 08/03/16 [14:29] 수정 삭제  
  재일조선인 여성의 삶이 어떠했는지, 현재는 어떠한지, 경계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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