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거리발령 “주부에겐 해고나 다름없어”

240명 전환배치, 발매원들 부당전직구제신청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8/03/18 [06:56]

원거리발령 “주부에겐 해고나 다름없어”

240명 전환배치, 발매원들 부당전직구제신청

조이여울 | 입력 : 2008/03/18 [06:56]
얼마 전까지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장, 경정장에서 발권을 하는 발매원으로 일해온 이미희(45)씨는 지난 달 갑작스럽게 퇴직을 했다. 이유는 작년에 부천지점에서 일하던 미희씨를 사측이 올해 수원으로 발령을 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2004년 8월 뇌출혈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총무과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집이 인천인데 수원지점에 가려면 차를 네 번 갈아타야 해요. 출근하는데 2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거예요. 회사에 도착하면 벌써 지친 상태니까. 도저히 안되겠어 그만 두었어요.”
 
뇌수술까지 받은 적이 있는 직원을 굳이 집에서 가까운 지점이 아닌 원거리로 발령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희씨는 발령을 받기 이전부터 소문이 돌았다며,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발매원들 ‘노조활동 방해하려는 부당노동행위’
 
▲부당전직구제신청 관련 문건을 검토 중인 발매원들
이미희씨를 비롯해, 국민체육진흥공단 발매원으로 일하는 45명의 여성들이 최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전직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이들은 2007년 초에 가입한 일반노조(한국노총 비정규직 노조)를 탈퇴하고 상급단체를 변경해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노조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2월 26일에 총회를 열어서 공공노조에 가입했는데, 12월 말일 되어서 전환배치 공고가 붙었고 그 전엔 전혀 얘기도 없었어요. 240명 정도 전환배치 되었는데, 총회에 참석한 사람들에 대한 보복성인 거라고밖에 볼 수 없어요. 그 전에도 사측에서 지점장이나 사람들 써서 방해를 했거든요. 원거리 발령 낸다는 협박도 들은 사람이 있고요.”
 
김성금 공공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지부 사무국장은 “근무하는 분들이 90% 이상 가정주부”인데 원거리로 발령을 내는 것은 “해고나 다름 없다”며 이번 전환배치가 부당노동행위라고 못박았다. 여성노동자들의 단결권 행사를 막기 위해 “최대 약점”을 이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공단 측 ‘고객과 결탁, 여성들 편가르기 때문’
 
반면, 국민체육진흥공단 측은 “업무상 필요성”이 있어서 근무지 변경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사측이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장기간 동일 지점에 근무하여 온 근로자와 해당 지점을 이용하는 특정고객과의 결탁에 의해 고객의 구매상한 이상의 경주권 발권 우려”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동일지점에 장기 근무함에 따라 발매원들인 여성근로자들 상호간 편가르기에 따른 대인관계 문제 발생가능성”이 있고, “지점장이 업무적으로 권위를 갖고 지휘, 감독할 수 있는 여건 조성”과 “순환근무” 필요성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박성우 노무사(민주노총 노동법률지원센터)는 “부당노동행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법리기준은 경영상 필요성과 합리성, 그리고 당사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를 비교하는 것”이라며 사측의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40,50대 여성들이 표 파는 업무를 오래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긴다거나, 여성들이 편 가르기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경영상 필요성이라고 보기 어려운 주장이고, 반면 “출퇴근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노동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가 크기 때문에” 부당전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좀 나아질까요?”
 
이미희씨는 퇴사를 한 이후로도 남아있는 발매원들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마음 속에는 또한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권리를 지켜주지 못한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자리잡고 있다. 이씨는 일반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라고는 해도, 실제로는 고용이 안정되어있는 상용직 조합원들 중심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다수를 차지하는 일용직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소외되었다고 말한다.
 
“노조에 가입했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이뤄질 거란 생각은 안 했어요. 그래도 우리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원 비례해서 주는 대의원 자리도 발매원들은 4~5명밖에 안 주고. 최소한 집행부가 회사 측과 협의를 봤는지 알려주고, 시간이 필요한 거면 그렇다고 설득력 있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알려준 게 없어요. 발매원들을 위해 말이라도 좀 시원스럽게 해주는 게 없었어요.”
 
일반노조가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판단한 발매원들은 작년 12월 26일 400여 명이 모여 노조탈퇴를 결정하고 상급단체를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조로 옮겼다. 그러나 총회 참석인원이 과반수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사측과 일반노조는 발매원들의 자체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복수노조가 인정되지 않는 현실에서 사실상 많은 어려움과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주화에 맞서서 다 뭉쳐도 될까 말까 한데, 정말 아쉽죠. 사측 압박이 심하니까 해고되거나 원거리 발령 날까봐 중도 하차한 사람도 많고, 공공노조(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지부)에서 빠져나간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길게 보고 갈 겁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좀 나아질까요?” (김성금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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