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확인해가라"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

윤수진 | 기사입력 2008/03/24 [18:26]

"너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확인해가라"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

윤수진 | 입력 : 2008/03/24 [18:26]
우리가 기억하는 마녀의 모습이란 무엇일까? 스산한 달빛 아래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빗자루 위의 그녀, 무언가 불쾌한 것들이 가득 들어있을 듯한 가마솥을 휘저으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는 모습, 혹은 마녀사냥의 불길 속에 산채로 타 죽어간 수많은 여성들.
 
▲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
우리가 기억하는 마녀의 모습이 어떤 것이든, ‘마녀’들을 ‘마녀’로 만드는 것은 무언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그녀들의 ‘해독불가능성’일 것이다. 마녀들은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지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기댈 수밖에 없는 초월적인 존재인 동시에, 여전히 어딘가 불길하고 두려운, 따라서 사라져야 할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이때 그녀들이 위험한 이유는 그녀들이 정말 기존의 체계를 무너뜨릴 만큼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들이 ‘알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인식 틀과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낳은 억압적인 폭력과 파괴의 결과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미 수없이 보아왔다. 역자의 말에서처럼 마녀사냥이 “‘암흑시대’로 불린 중세시대보다도 종교개혁, 과학혁명, 인본주의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크고 격하게 벌어지게 된 것”은 그 시대가 ‘마녀들의 세계’를 품을 수 없는 이성, 합리, 과학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아주 오래 전... 마녀가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옛이야기 속의, 이제는 사라져버린 마녀들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장면들이다. 마녀들은 이제 서구의 개발논리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아마존의 밀림 속에서, 과학기술의 끝없는 발달로 우주를 향해 뻗어나가는 탄도미사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개발과 진보만을 부르짖는 언어에 이미 너무 깊이 매몰되어버린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마녀는 어쩌면 현대에 더욱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만화 <마녀>는 이성과 합리, 과학의 언어 속에 사라지고 파괴되어 가는, 그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니 ‘보여주는’ 만화이다.
 
두 세계를 잇는 자, 마녀
 
네 장으로 구성된 단편 모음집인 <마녀>에서 전체 스토리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언어’이다.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의 한계를 보지 못하는 인간에게 <마녀>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할 것을 요청한다.
 
“언어로 생각하는 당신은, 언어를 넘어서는 생각은 할 수 없어요. 당신보다 커다란 것을 당신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당신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는 있겠지만 당신 밖으로는 나갈 수 없어요.” <스핀들> 中
 
이 때 인간의 세계를 한정 짓는 언어란 우리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 합리, 과학의 언어일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인식 틀, 언어의 영역 속에 갇혀 사고하고 행동할 때 간과하게 될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것들—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 자연과의 교감, 소중한 존재들에 대한 사랑 등—은 마음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어낼 때에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책을 통해 배우는 지식이 아닌 “자신의 몸에 상대를 받아들이는” 체험을 통해 알게 되는 진실은 우리에게 언어의 영역 속에 있으면서도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는 균형을 제공한다. <페트라 게니탈릭스>에서 “왜 책을 읽으면 안돼요?”라고 묻는 알리시아에게 “넌 경험이 부족하니까. ‘체험’과 ‘언어’는 함께 쌓아나가야 마음의 균형이 맞는 법이야”라고 대답하는 마녀 말리는 언어의 영역과 언어 밖의 영역을 중재하는 “두 세계를 잇는 자”이다.
 
개발과 진보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파괴와 폭력
 
▲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
그러나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에서 현대의 마녀들이 살아가는 이 땅의 풍경은 “두 세계를 잇는 자”인 마녀들조차 살아남기 힘들만큼 폭력적이며 이성, 합리, 과학의 언어를 넘어서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닫힌 공간이다.

 
마녀 쿠마리와 숲의 정령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아마존의 숲은 군대의 폭격으로 이미 초토화되었고(<쿠아루푸>), 우주의 영역까지 뻗어나간 인간의 끝없는 확장욕과 정복욕이 불러온 재앙은 여전히 그 해결방법을 “파괴, 포격, 핵병기”에서 찾고 있는 인간들의 능력으로는 그 해결이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페트라 게니탈릭스>).
 
서구 몇몇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행된 3세계의 밀림 ‘개발’과 인류에게 행복과 편리를 가져다 준다는 미명 아래 ‘더 멀리, 더 빨리’ 뻗어나가려는 인간의 확장욕. 이 둘은 모두 그 안에 수많은 생명의 ‘파괴’와 ‘희생’을 담고 있으며, 이는 개발과 진보의 논리로는 절대 포착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편안함’의 대가는 반드시 누군가가 대신 떠맡고 있기 마련이지. 커다란 기술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건 정말로 무서운 일이란다.” -<페트라 게니탈릭스> 中
 
파괴된 숲의 땅에서 자란 식물과 동물들이 다국적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햄버거 재료로 쓰이고, 그 속에서 숲의 정령들이 “우리를 먹지마!”라고 절규하는 소름 끼치도록 절박한 <쿠아루푸>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현재 소비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파괴’와 ‘약탈’의 산물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마음의 눈으로 이성의 언어 너머를 보라
 
이런 끔찍한 현실 속에 마녀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생각하고 따지고 재보기 이전에 먼저 느끼고 체험하고 행동한다. “온몸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는” 존재인 마녀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내려지는 재앙 앞에 어떤 이들처럼 말만을, 논리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들이 불행해졌을 때, 하는 수 없다고 체념하는 사람을 넌 좋아할 수 있겠니? ‘마녀’는 생각하지 않아. 마녀는 그저 알고 있는 거야.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난 두 개의 세계를 잇는 자, 언어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의... 당신들의 언어는 온갖 가능성을 특정한 성질로 구분해 버리는 나이프, 자기들 입맛대로 세상을 썰어대는 도구.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우리는 언어를 알면서도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자들.” -<페트라 게니탈릭스> 中

 
개발과 진보의 언어로 재단된 세계의 재앙을 온몸으로 품는 것은 결국 마녀이다. 우주 먼 곳에서 날아온 생명/파괴의 돌을 자신의 ‘몸’속에 품고 미사일에 몸을 싣는 마녀 말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지만, 그 순간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음탕한 것”, “존재 자체가 모독”이라며 손가락질한다. 이성과 합리의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그 안에서 사라지고 파괴되어 가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온몸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미소 짓는 마녀의 모습은 “자기들 입맛대로 세상을 썰어대는” 언어의 영역에 갇힌 이들에게는 여전히 ‘해독불가능’한 것이다.
 
마녀 말리가 알리시아에게, 그리고 알리시아가 또 다른 꼬마마녀에게 대를 이어 전하는 “너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확인해가라”는 충고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 그 안에서 배제되고 침묵되는 존재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확인하라는 명령이다.
 
“한 번도 하늘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맑은 하늘은 푸르다’고 해 봤자, 말은 틀리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거짓”이라는 알리시아의 말은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그리고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일깨운다. 결정적인 순간 말을 아끼며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들로 페이지를 채움으로써 독자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체험하기’를 요청하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그림 역시 이러한 메시지의 일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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