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 나서 하면 좋은 결과는 따라올 거야

인형 만드는 사람 이정하

박희정 | 기사입력 2008/03/26 [22:09]

신명 나서 하면 좋은 결과는 따라올 거야

인형 만드는 사람 이정하

박희정 | 입력 : 2008/03/26 [22:09]
▲ 인형 만드는 사람 이정하
“쓸모 없어 버려진 인형들. 세상에 상처 받은 마녀는 인형을 고쳐서 새로운 생명을 주고, 그 과정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는다. 멈춰있던 마녀의 회전목마는 빛을 내고 다시 돌기 시작한다.”

 
인형 작가 이정하씨는 첫 번째 개인전 <회전목마>의 전시내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마녀가 나에 대한 이야기야. 인형작업을 통해 내가 변화된 과정을 담은 거지.”
 
첫 인형전 <회전목마>가 본격적인 준비에만 2년 반 정도 걸려, 전시가 임박할 무렵에는 몸이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하루에 세네 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눈에 비친 정하씨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내가 거울을 봐도 그래 보였어.”
 
마음을 치유하는 인형
 
처음 정하씨를 만난 건 10여 년 전, 내가 대학 새내기 시절이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리는 미대생, 대학 내 밴드의 유일한 여성 드러머로 활약하던 모습이 마치 만화가 이빈의 작품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이 보였다.
 
배려심 많고 착한 성격 이면에 언뜻 비치던 서늘하고 날 선 느낌.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정하씨에게선 여유롭고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마냥 인형이 좋아서 시작을 했어. 그런데 인형작업이 정말 섬세한 노동이야. 무아지경에 빠지기도 하고, 사람과 닮은 형상 때문에 감정이입이 더 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복합적으로 내 마음이, 굳이 상처만이 아니라 일그러져 있던 마음이 고행 같은 작업을 통해 치유가 되었던 것 같아.”
 
▲ 인형전 <회전목마> 중에서 "그녀의 쓸쓸한 왕국 II"
서양화를 전공한 정하씨는 예전 작업에 대해 ‘내가 봐도 장난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림을 보고 엄마가 ‘귀신 대가리’만 그린다고 했어. 사람 같지않은 것만 그린다고. 밤 되면 사람들이 가위 눌린다고 내 작업실에 오기 싫어할 정도였지.” 그 때는 그걸 안 그리면 미칠 것 같았다고 한다. “안 그리면 꿈에 나왔거든.”

 
인형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자, 다른 사람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마치 전도사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을 보면 ‘인형 좋아해?’ ‘인형 한번 만들어 보지?’하고 말할 때도 있다”며 웃는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3명의 학생에게 토요일마다 인형 만들기를 가르치고 있다. 공개된 강좌는 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카데미를 열어 인형을 상품화하게 되면서 더 이상 자기 작품을 만들지 않게 되는 작가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가르친 지 3년 다되어 가는데 너무 즐거워. 그 사람들이 와서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기분으로 인형을 만들고 기뻐하는 걸 보면 너무 좋아. 나 혼자 인형을 만들며 기뻐하는 것도 좋은데, 그 사람들이 기뻐하는 걸 보는 것도 좋더라고.”
 
고행과도 같은 수공예 인형 만들기
 
정하씨의 작업은 창작인형과 앤틱인형으로 나뉜다. 창작인형은 점토와 비스크인형이 있는데 점토인형은 지점토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점토를 원하는 형태로 빚어서 말린 후 표면을 갈아서 모양을 다듬는다.
 
▲ 이정하씨의 작품들
비스크 인형은 작업 공정이 훨씬 섬세하고 복잡하다. 원형을 만들고 석고로 틀을 뜬다. 틀 안에 유액 같은 특수 액체를 부어서 2~3mm의 막이 생길 정도로만 굳힌 후 따라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형을 섭씨 700~800도 온도로 가마에서 구워낸 후 사포로 표면을 다듬는다. 그리고 1200~1300도 정도로 다시 굽고 나면 찻잔 정도의 강도를 지닌 비스크 상태가 된다.

 
복잡한 공정이 끝났지만 본격적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채색을 한다. 저화도 안료를 이용하는데, 한 색을 칠할 때마다 가마에서 구워준다. 그래야 착색이 된단다. 채색과 굽기는 보통 3~4번에서 많으면 7~8번까지 반복된다.
 
여기까지의 ‘기본과정’이 끝나면 안구를 심어주고, 머리카락을 만들어 붙인 후 헤어스타일을 다듬어 주고, 의상까지 만들어 입혀야만 하나의 인형으로써 완성이 된다.
 
머리카락을 만들 때는 풀이 먹여진 스타킹 같은 재질의 가발바탕을 인형의 머리에 붙이고 인형용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박아준다. 정하씨는 “가발 만드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
 
“머리를 다 심으면 원하는 스타일로 컷트를 하고 롯트를 말아서 파마를 해 줘. 이미 만들어진 몸에 흠이 안 가게 해야 하니까 손수건으로 마치 사람이 미용실에서 하는 것처럼 몸을 둘러주거든. 손수건을 두르고 머리에 롯트를 감고서 나란히 앉아 있는 인형들을 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인형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짜릿한 기쁨을 준다는 말이다.
 
“특히 안구를 끼울 때도 짜릿한데 눈이 생기는 순간 생명이 확 생기는 느낌이거든. ‘사람’으로 보여지기 시작하니까 완성된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손이 빨라져.” 인형에 대해 말하는 정하씨의 눈도 생명력으로 반짝거렸다.
 
추리하고 흉내 내며 독학으로 파고든 길
 
1997년 즈음 일본에서 비스크 인형을 보고 놀라운 디테일에 눈이 휘둥그래졌다는 정하씨는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인형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가 없어서 모든 것을 혼자서 시작해야 했다.
 
“처음에는 막막했지. ‘생쑈’를 했어. 서양복식사 책을 보면서 의상 종류와 패턴 같은 걸 공부해서 만들어보기도 하고, 외국 사이트에 인형 숙련공 모임이 있는데 거기 가입해서 잡지도 구독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정보를 얻어갔지.”
 
외국 작가의 홈페이지를 매일같이 드나들며 제작일기 같은 걸 통해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추리해서” 흉내를 냈다고 한다.
 
“가발의 가르마가 아무리 해도 사람처럼 깔끔히 넘어가지 않는 거야.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다가 두피 부분을 파서 안에서부터 머리카락이 나오게 했는데 나중에 외국 작가의 설명을 보니까 맞았더라. 그럴 때 ‘심 봤다’는 느낌이야.”
 
이렇게 정성과 마음을 담아서 만든 인형에 대해 사람들이 무조건 돈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게 아쉽다고 한다. 특히 수공예 인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에 가격을 듣고 “미쳤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가격은 이미 시장이 형성된 외국의 선례를 참고해 책정하는데, 듣자마자 ‘인형이 이렇게 비싸요?’라고 기함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상처를 받는다.
 
“일본만 해도 ‘손으로 만드는 작업에 대한 가치’를 높게 쳐주거든. 굳이 살 것이 아니라면 ‘비싸다, 싸다’ 말하지 않아줬으면 싶지.”
 
한국에서 인형으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옛날보다는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인식도 나아졌고 2차례의 개인전도 가졌지만, 아직 인형에 대한 인식은 척박하다. 미술 쪽에서는 공예로만 보고, 공예 쪽에서는 공예로 보기에는 너무 ‘흉물스럽고’ ‘팔리지 않는다’고 외면한다. 일반적인 인형 시장에서는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주목 받지 못한다.

블로그에 올려진 창작인형 사진을 보고 거의 그대로 카피해 대량 제작해서 싼 값에 판매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과 법적 환경이 부족한 탓에 소송을 알아보다 포기했다고 한다.
 
“풍족이라는 말 자체를 믿지 않아” 

▲ 이정하
제작도구나 재료를 외국 사이트를 통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점도 힘들다. 재료비가 많이 드는 것에 비해 판매처가 부족한 탓에 경제적으로는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지금은 일본 옥션을 통해 작품을 판매한 것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작업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공방을 열고 대량생산해서 돈을 벌고, 방송에 소개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지만 정하씨는“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단언한다.
 
“어릴 때라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도 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지금 내가 한복을 배우고 있는 무형문화재 선생님도 돈을 원했다면 한복집을 했어야 했을 거야. 그러나 그 선생님은 ‘젊은 사람들한테 제대로 된 한복이 무엇인지 알리고 싶다’는 신념을 지켰고, 그게 지금 선생님의 위치를 만들 수 있었지. 나는 그게 ‘바른길’이라고 봐.”
 
정하씨는 “돈이 풍족할수록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풍족’이라는 말 자체를 믿지 않는단다. “상처가 될 정도로 부족하지만 않다면” 경제적인 문제는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에너지를 잃는 것’이다.
 
 “뭔가를 신명 나서 하고 그 에너지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지나치게 고민하는 것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
 
아직은 그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점에 대해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는 정하씨는 ‘나누는 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내 창작 인형이 일반적으로 예쁜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아.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최고로 예쁜 얼굴로 만들고 있는 거지. 얼굴 작업을 하면서 얼굴이 훼손된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특히 얼굴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의 고통이 끔찍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상은 흉터로 인한 심적 고통뿐만 아니라 화상부위의 물리적 고통도 심하다고 한다. 그 이후 작품 판매금액의 일부를 얼굴 화상 환자에게 후원하고 있다.
 
“처음부터 욕심을 내고 중간에 감당하지 못해 후원을 관둬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생각해. 끈질기게 평생 꾸준히 하고 싶어. 나중에 여유와 연륜이 생기면 공개적으로 후원금을 조성하고 싶기도 하고.”
 
독학으로 인형을 배울 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인형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보를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소망도 있다. “주변에서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 그래도 꿈이야 꿀 수 있는 거니까.”
 
인형을 통해 치유 받은 마녀의 회전목마는 힘차게 빙글빙글 돌고 있다. 반짝거리는 빛을 잃지 않고.
 
▷이정하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merry_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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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8/04/09 [00:30] 수정 | 삭제
  • 인형과 작품들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이렇게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열정을 글로 소개받을 수 있어서 금상첨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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