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부장애’

[이희연이 만난 장애여성] 신장장애를 가진 은이

이희연 | 기사입력 2008/03/31 [23:21]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부장애’

[이희연이 만난 장애여성] 신장장애를 가진 은이

이희연 | 입력 : 2008/03/31 [23:21]
은이와 만났을 때 물어봐야 할 말들을 정리하면서, 내가 참 이 친구에게 궁금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알게 된 지는 5년 남짓 된다. 그를 통해 ‘내부 장애’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그냥 ‘조심스러운 사람이구나’라는 것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모처럼 한가한 주말 저녁에 만나 그녀와 5시간에 걸쳐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다는 아닐 텐데”
 
그녀의 장애는 신장 장애, 정확히는 신장 장애 5급이다. 중 3때 병원에서 신부전증으로 판명 받았으나, 그때는 무리만 하지 않으면 약으로 치유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생활 반경은 늘어났고, 공부에 대한 부담도 가중되면서 몸에 무리가 갔는지 병이 깊어졌다. 결국 신장이식을 받았고, 장애 5급 판정을 받게 됐다.
 
“장애등급이 낮네?”
“응. 보통 내부장애인들은 3급에서 5급의 장애를 받아. 나 같은 경우 투석을 받지는 않으니 그런대로 생활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5급으로 판정하더라.”

“그럼 복지혜택이 좀 적겠다.”
“언제는 많이 있었나? (나를 쳐다보며) 언니 보니까 장애등급 높아도 별거 없더라, 뭐. (호호) 그냥 일반적인 할인 있지? 지하철 무료, 전기료 할인 같은 거. 그런 것만 겨우 돼.”

“병원비 많이 들 텐데 혹시 그런 혜택이 좀 없을까?”
“설마…. 안 그래도 수술 받고 정말 병원비가 엄청 나와서 이것저것 알아보긴 했는데 방법이 없더라.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나라도 수급권자가 되면 어떨까 해서 알아봤는데, 내가 가진 장애는 일을 할 수 있는 장애라 적용이 안 된다네. 일반 직장 생활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리고 부모님도 계시고 오빠가 있다고 해서 더욱 안 되고. 허긴 장애수당 같은 경우도 월수입 40만원 이하의 사람에게만 장애수당을 주는데 난 그것도 3만원이야. 그런데 40만원으로는 요즘같이 물가가 비싸면 생활이 안 되잖아. 복지혜택 같은 거 좀 실질적으로 생각하고 정책을 냈으면 좋겠어. 병원비나 부담이 덜 된다면 좋을 것 같아. 내부장애인들에겐 병원비를 지원해주면 안되나? 평생 병원을 다녀야 하는데.”

 
그녀의 몸은 매우 약하다. 평생 관리가 필요한 몸이다. 절대 무리를 해서는 안 되고, 사람들이 피곤하면 흔히 걸리는 감기도 그녀에겐 치명적이다. 잠을 못 자면 더더욱 안 되고, 먹는 것을 소홀히 하면 매일 복용하는 독한 약으로 인해 몸이 쇠약해진다. 거기에 살이 쪄도 안 된단다. 만약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투석을 받아야 하고, 재수술의 가능성도 있다. 남들보다 피로를 빨리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남들이 가볍게 생각하는 운동도 그녀의 몸엔 독이 될 수 있다. 생활의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 그림: 박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가진 장애에 대해 이해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것이 내부장애의 또 다른 어려움이다.

 
“가끔 몸이 죽도록 힘들 때가 많아. 그때는 온몸에 힘이 빠지거든. 근데 그럴 때 만약 지하철에 있으면 노약자석에 못 앉아. 아무리 힘들어도 그 자리엔 절대 못 앉아. 거기 앉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정말 큰소리로 뭐라 하셔. ‘젊은 것이, 멀쩡한 것이 거기 앉았다’고. 휠체어 탄 사람과 같이 갈 때도 노약자석에 앉으면 ‘넌 장애인이랑 같이 가니까 여기 앉는 거냐’ 라고 대놓고 야단치시니까 이젠 노약자석은 앉을 생각도 안 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다는 아닐 텐데 말이야. 지하철 같은 데서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일단 할아버지 할머니들 눈치를 한번 봐야 해. 이상하게 선뜻 타게 되지 않더라고. 노인전용이 아닌 엘리베이터인데 말이야, 호호호.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니까.”
 
털이 많은 그녀의 팔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녀와 같이 다니면 사람들은 내가 그녀의 도움을 받는 줄 안다. 사람들의 눈에 그녀는 그냥 비장애여성일 뿐이다. 그런데 조금 관심 있는 시선으로 보면, 그녀의 체력이 보통 사람들보다 정말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부장애는 드러나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어쩌면 어려운 점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래서 배려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약을 평생 먹어야 하는데, 그 약에 남성호르몬 성분이 강해서 털이 좀 많아. 여름엔 참 힘들어. 더운 거, 땀나는 것도 힘든 데다가, 짧은 옷을 입으면 사람들이 굉장히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많이 있어서….”
 
자신의 팔이 닿으면 굉장히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단다. 그녀는 여자도 털이 많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한동안은 상처였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고. 장애여성들은 언제쯤 호기심 어린 시선에서 좀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라면 좋을 텐데…. 사람들은 아직도 장애에 대한 시선을 넓혀보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면 사람들이 나를 굉장히 어렵게 대해. 그것 때문에 대인관계를 적극적으로 못한 것 같은데, 지금은 많이 나아지고 있어. 사람들이 장애 사실을 알면 좀 과잉친절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도 익숙해지면 배려를 해줘. 처음 일을 할 경우에 엠티나 밤샘 회의 같은 거 많잖아. 처음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나도 가끔 무리하기도 했어. 근데 익숙해지니까 알아서 하기도 하고, 먼저 자라고 주위에서 미리 말해주기도 해. 사람은 역시 같이 지내봐야 한다니까.”
 
그녀는 지금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연극팀의 배우로, 간사로 일을 하다 지금은 단체의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다. 베이커리 일이 워낙 체력소모가 많아서 걱정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요리를 좋아했어. 그러다 기회가 되어 이 일을 하게 된 건데 일 자체는 재미있어. 그런데 체력 소모가 생각보다 많아. 도구들도 무겁고, 왜 이런 건 이렇게 무겁게 만드는지 몰라. 건장한 비장애인 남자라도 몇 시간 들고 일하면 힘들 것 같은데 말이야.”
 
제과제빵도구들은 실제 매우 무겁다. 그리고 종일 오븐 옆에 있는 작업이라 여름에는 살인적인 더위와 싸워야 한다. 좀더 가볍고 실용적인 도구들을 개발한다면 장애여성들도 손쉽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제빵사로 일하지만,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특히 그녀가 관심 있는 분야는 연극과 영화 그리고 분장이다. 실제로 메이크업을 배우기도 한 그녀는 장애여성공감 ‘춤추는 허리’ 연극팀의 분장을 맡기도 했다.
 
“분장은 나중이라도 꼭 배우고 싶어. 특히 일반 분장 말고 특수 분장, 참 재미있을 것 같아. 내가 해준 분장들이 무대에서 보여지고, 스크린으로 보여져서 사람들이 분장 참 잘했구나 라고 한다면 참 뿌듯할 것 같아. 연기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지. 나중에 차근차근 배우고 싶은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은데 그때까지 여러 준비를 해야겠지? 하나하나 조금씩 준비해 나가야겠어.”
 
무대와 춤, 분장… 변신하고 싶어하는 은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또랑또랑 말하는 사람이지만 평소에는 상당히 조용한 성격이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거나, 춤을 추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몸은 힘들고 코피가 터지고 입술은 부르터도, 일을 끝내고 설사 일주일을 앓는 한이 있어도, 그녀는 하고 싶은 일에 있어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처음 무대에 선 그녀를 보고 평소의 조용한 모습과는 딴판이라 놀랐던 기억도 있다.
 
“평소엔 소극적 성격이지만 무대에서는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연기를 하면서 그 역할에 따라 여러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좋아. 연극을 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내 안에서 변화되고 있다는 기분도 들고, 그리고, 연극을 하면서 내 꿈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아. 그래서 분장도 배우게 된 거고. 기회가 되면 본격적으로 뮤지컬 공부도 해보고 싶어. 뮤지컬 같은 경우엔 춤이 들어가니까 음악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게 너무 좋고, 그리고 사람들 움직임이 참 예쁘다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직접적인 카메라는 싫어. 카메라만 돌아가면 좀 부담스러워져.”
 
적극적인 그녀에게도 학교는 굉장히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신장이식을 받고 검정고시를 선택했다. 병 때문에 1년 휴학했지만, 고등학생의 휴학이 보편화 되어있지 않은 시기라 학교에서는 쉽사리 그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반 아이들 역시 그녀를 대하기 어려워했다. 게다가 감기예방을 위해 좀더 두꺼운 옷을 입거나 털방석 등을 사용하는 그녀를 어떤 아이들은 ‘다른 아이’ 식으로 여기고, 약간의 ‘왕따’ 경험도 있었다. 결국 그녀는 학교를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봤다. 그녀는 그땐 아직 어려서 그런 시선을 감당 못하겠더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공부도 힘들고.
 
지금이라면 글쎄? 그냥 무시할 수 있을까? 과연 그때 그 아이들과 선생님이 특히 심했던 것일까.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양한 몸을 인정하지 않는 시선은 지금도 계속되는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장애가 장애만은 아니다. 몸이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지원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그럼 내 자신은 다른 장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다른 장애에 대해서는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고,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서로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좀더 배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 한다.


신장장애란: 신장의 이상으로 투석을 받거나 신장이식을 받게 되면 장애판정을 받는다. 체력적으로도 남들보다 쉽게 지치고 피로도 빨리 느낀다. 이식을 하면 병세는 호전되지만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남은 여생 동안 약을 먹어야 하고, 규칙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검사를 받아야 한다. 또한 신장을 이식 받은 자리에는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일상생활 어디서나 조심해야 한다. 특히 몸에 열이 나면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장애가 아니기에, 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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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속의별 2008/04/15 [19:47] 수정 | 삭제
  •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 더욱 배려가 없고,
    장애를 가진 것을 드러내면 불편하게 대하며 때로 과잉친절을 베풀려 하고.
    "사람은 역시 같이 지내봐야 한다니까" 맞아요.
    같이 지내보고, 같은 교실에서 배워보고, 대화하면서 차이에 대해 알아가고,
    그래야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간극이 허물어지겠죠.
    있어도 없는 듯한 존재가 아니라, 다양하게 존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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