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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시간이 너무 잘 가”
농사와 목공 일을 배우는 여준민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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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부근 전경  © 윤정은
“참, 준민씨는 요즘 뭐해요?”
장애운동을 열심히 하던 사람이었는데 최근에는 통 얼굴을 본 적이 없다며, 나에게 준민의 안부를 물어오는 분이 있었다. 준민은 이태 전 서울을 떠나, 홍성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농사일을 배우는 중이래요.”

 
나도 준민을 본 지가 2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해 여름이었던가. 그의 소재가 궁금해하던 차에 준민으로부터 ‘콩밭을 메는 중’이라며 ‘홍성으로 놀러 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는 통화를 한번 했던 걸로 기억한다.

 
농사일을 배우려고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로 가서 환경농업전문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몇 년 전에 몇 번이고 내게 풀무학교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2년제인 학교에 지난해 들어갔으니, 이제 2학년이 됐다.
 
그가 그 동안 자기 자리를 비운 새 이렇게 그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럴 때마다 “농사 배우고 있대요” 라고 대답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한번 찾아가 봐야 하는데’ 라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 지내냐?”고 전화 통화한 김에, “한번 놀러 오라”는 부추김을 뿌리치지 않고 냅다 홍성으로 달려갔다.
 
몸을 쓴다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흰 벚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작은 논둑으로 접어들자 모자를 눌러쓰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마중 나와 있다. 햇볕에 얼굴이 많이 그을렸구나. 그렇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하지 않다. 하루 일과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여, 그가 작업하는 있다는 곳을 따라가봤다.

 
▲ 여물을 썰기 위해 작두질하는 모습
해 떨어지기 전에 일을 마감하느라 모두들 손이 바빠 보였다. 벽돌을 이용해 마당에 화단을 만들고 있었다.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높은 화단을 만들고 있기에 조금 의아해하던 차였다. 그 옆에 전동휄체어를 탄 분이 인사를 건넨다. 설명을 들으니, 이 분이 채소를 가꿀 화단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구나, 준민은 여기에 와서도 장애운동과 관련된 일이랑 떨어져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장애)시설 문제를 건드리는 활동하면서, 매일 거리에서 농성하면서 살다시피 했지요. 매일 투쟁인 데다가, 몸이 약한 사람들이 다치는 것들을 보면서, 나는 그런 거 잘 견뎌낸다고 자신이 있었는데, 언제부터는 내가 많이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떠났다. 그러나 아예 떠난 건 아니다. 동료들에게도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했고, 자기 자신에게도 잠시만 자리를 비우는 것이라고 하고 떠났다. 학교에 왔더니 동기 중에도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다. 같이 수업에, 농사일을 하면서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을 몸으로 익히고 있는 중이다.
 
“정말 몸을 쓴다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어요. 일이 고되고, 몸이 녹초가 되는데도 시간이 너무 잘 가. 이런 경험들을 몸으로 익히고 나면, 다시 돌아가더라도 몸으로 한 경험들이 내게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정말 농사일과 목공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듯 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느라 파김치가 됐을 텐데도 그는 즐거워 보였다.
 
학교에 와서, 소에게 여물을 주는 당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축사로 바삐 걸어갔다. 그가 내려오는 걸 보고, 소가 “움메~ 움메” 골짜기가 떠나가도록 울었다. 소가 울 때마다 그는 “알았어, 기다려~”라고 화답을 하며, 바삐 몸을 움직였다.
 
작은 호프집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 

▲ 어미소에게 여물을 주는 준민
저녁을 먹고, 샤워를 마친 뒤 그와 함께 도로 길로 나섰다. 어두운 도로길 옆으로 하얗게 핀 벚꽃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면사무소가 있는 곳까지 가면, 시원한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곳이 있단다.

 
일층이 슈퍼가 있는 건물이었다. 이층은 상가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계단 옆으로 보일 듯 말 듯한 간판을 확인하고 올라갔더니, 시원스레 뚫려 “미팅하기에 좋은” 호프집이 나왔다. 겨울을 지나 농번기가 시작되어 바쁘긴 바빴나 보다. 그 동한 걸음이 뜸했던지 주인을 보자마자 “출근 도장 찍어야 하는데…”라고 인사를 건넨다.
 
“앉아 있다 보면, 다른 테이블에서 부킹이 들어와요. 재밌어. 여기서 만난 동네 분들이 꽤 많아.”
 
우리가 첫 손님이었는데, 밤이 무르익자 테이블이 꽉 찼다. 그의 말처럼 정말 조금 있으니 모자를 쓴 여성 한 분이 우리 테이블로 건너왔다. 여기, 풀무생협에서 사무국장으로 있는 분이란다. 지난번 부킹을 해서 인사를 나눈 사이라고 했다. 생협에 대한 이야기, 풀무학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농사 짓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밤이 깊어갔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자 그의 바쁜 일과가 다시 시작됐다. 바쁜 와중에 그가 잠깐 나와서 학교 농장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 함께 올랐다. 아침에 산책하러 이곳을 오른단다. 이 농장을 내게 보여주고 싶어서 이리로 오자고 했다고, 마치 자기 땅인 양 설명한다. 

▲ 무인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풀무학교 생협 '갓골 작은가게'
‘오리 농법’이니, ‘유기농’이니 설명을 듣는데, 옆으로 구릿빛 얼굴을 한 준민의 얼굴을 힐끔거리다가, 땅을 내려다 보다가를 반복했다. 괜히 숙연해지고, 이상하게 마음이 든든했다. 그는 매일같이 이 언덕에 올라와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논과 밭이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모습을 담고 싶다고.

 
우리는 바로 그 언덕에서 헤어졌다. 그는 다시 학교와 일터로 돌아갔고, 나는 서울로 돌아오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헤어지기 전에 한 부탁 때문에 서울로 돌아와 시청 앞을 찾았다. ‘사회복지시설 시설 비리와 시설생활인 인권 침해’ 문제로 서울시청 앞에서 한 달여 동안 농성 중인 동료들을 찾아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지금도 아스팔트 위에서,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들을 한시도 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아침에 생협 가게를 찾아 우리밀로 만든 빵과 요구르트 등을 박스로 사서 내게 전달했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보양식 전해줘서 고맙다” 한다.

살면서 가슴 먹먹해지는 때가 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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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4/21 [18:26]  최종편집: ⓒ 일다
 
^^ 08/04/22 [18:04] 수정 삭제  
 
아스팔트가 아닌 흙이 주는 기운, 금붙이나 컴퓨터가 아닌 생명의 움틈이 주는 에너지, 그런 것들과 교감하면서 지난 시간과 경험은 평생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흙에서 놀게 하라고, 도시에서 키우면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도 일면 타당하다고 고개 끄덕이게 되곤 하지요.)

농사일도, 목공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참 좋겠네요. 다 기능이 필요한 작업들인데, 쉽게만 생각해온 것 같기도 해요.
귀농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텃밭 일구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스머프 08/04/23 [00:25] 수정 삭제  
 
희멀건 한 피부에 말랑말랑한 손, 그런 것이 예뻐 보이던 때는 이제 지났습니다.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게지요. 이제는 햇볕 많이 본 얼굴과 흙을 만지는 손이 가장 건강하게 보이고, 예뻐 보이고 그러네요.

친구의 옆 모습을 보며 든든하고 뭉클한 마음이 느껴졌다는 게 저도 공감이 가네요.

호호아줌마 08/04/29 [12:17] 수정 삭제  
  잘하셨네요. 좋은 기운 많이 받고 오신 것 같아 반가워요. 그곳에 휠체어 타고 농사 짓는 분도 계시다고 하니 더 반갑구요.사실 전 준민님 얼굴도 모르지만, 참 좋을 분일 것 같다는 느낌,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함 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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