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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간”
영화 <너를 보내는 숲>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윤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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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너를 보내는 숲>
“모가리”(殯).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시간, 또는 그 장소.

 
바람에 몸을 떠는 고요한 숲 사이로 낮고 조용한 곡조가 들려온다. 온통 푸르른 들판 사이로 서서히 나타나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장례행렬. 쉼표를 찍듯 이어지는 잠시 간의 암전 후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연못에 떨어지는 한 방울 빗소리마저 크게 울리는 고요하고 깊은 숲이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 깊은 상처가 치유될 것만 같은 풍경들 뒤 또 한 번의 암전을 지나, <모가리의 숲>(殯の森)이라는 글자가 스크린에 새겨진다. 죽음, 자연, 그리고 ‘모가리’. 97분의 상영시간 동안 이 영화가 들려줄 이야기는 이 세 가지다.
 
살아있는 죽음, 죽어있는 삶
 
사고로 아들을 잃은 마치코는 그 충격과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한 시골마을 요양소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한다. 서툴고 어색하지만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으니까”라는 동료의 격려 속에 차츰 그곳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 시게키라는 이름의 한 노인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마치코’라고 쓴 그녀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갑자기 붓으로 짓이겨버린 치매노인. 가운데 글자가 지워진 그녀의 이름 ‘마코’는 33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부인의 이름이었다.
 
▲ 영화 <너를 보내는 숲>
항상 멍하니 정신을 놓아버린 듯한 시게키가 처음 입을 열어 하는 말은 “나는 살아 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각자의 긴긴 삶의 무게를 가슴에 담은 채 눈앞에 다가온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요양소의 노인들,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를 이야기하는 그들의 풍경은 너무나 고요하고 정적이라 그 자체로 죽음과 닮아 있다.

 
그 속에서도 삶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노인 시게키는 벌써 33년 째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만을 가슴에 담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이미 죽은 아내를 만나는 환상 속의 순간들뿐. 하지만 33년 전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아내와 조우하는 순간 시게키의 얼굴에 나타나는 꿈결과도 같은 표정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여서, 삶 너머의 세계에 머물며 영원히 아내를 기억하고픈 그의 마음을 응원하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잊지 않고 돌아오는 그의 생일이 말해주듯, 그는 살아있고 아내는 이곳에 없다. 갖고 싶은 생일선물이 무어냐는 물음에 ‘마코, 마코’라는 말만 되뇌는, 이 끝나지 않는 애도 속에 죽은 자는 살아 있고, 산 자는 죽어 있다.
 
서로를 보듬는 산 자들의 위로
 
▲ 영화 <너를 보내는 숲>
떠난 아내를 향해서만 달려가는 시게키의 마음을 삶의 영역으로 붙잡는 것은 그 역시 떠난 아들을 가슴에 품고 있는 마치코이다. 끊임없이 도망치고 숨는 시게키를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어가 붙잡는 마치코의 ‘술래잡기’는 ‘그래도 산 자는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설득의 몸짓이다. 아내의 무덤을 찾아 폭우가 쏟아지는 숲 속으로 향하려는 시게키의 등 뒤에서 “안돼요, 제발 가지 마요! 부탁이에요!”라고 외치는 마치코의 절규는 시게키로 하여금 아내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바라보고 보듬게 한다.

 
떠난 자들의 기억, 돌아올 수 없는 시간 속에 머문 채 계속되는 죽음과도 같은 삶은 곁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기에, 또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을 떠났지만 보내지 못한 사람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기에 마치코는 온 힘을 다해 시게키를 붙잡는다.
 
퍼붓는 비속에서 아들을 잃은 순간의 악몽이라도 떠오른 듯 “안돼요!”를 외치며 오열하는 마치코에게, 시게키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려 다가온다. 그가 투박하지만 따스하게 두 손으로 그녀의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을 때, 이제 위로받고 보호받는 사람은 시게키가 아닌 마치코이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를 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시게키의 말처럼 떠난 자들도, 지나버린 시간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시게키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오랜 시간 가슴에 품어온 아내를 이제 떠나보내기 위해 발길을 재촉한다.
 
시게키와 마치코는 이제 서로의 체온으로 차갑게 식은 몸을 덥히고, 서로의 짐을 나눠지며 ‘모가리’의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한 길을 다시 떠난다. “나는 살아 있습니까?”라는 시게키의 물음이 “우리, 살아 있죠?”라는 마치코의 물음으로 반복될 때, 시게키는 마치코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응, 살아 있어. 살아 있고말고.”
 
자연과 하나되는 ‘모가리’의 시간
 
▲ 영화 <너를 보내는 숲>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모가리’라는 말을 풀어 쓴 이 영화의 한국 개봉 제목(너를 보내는 숲)이 말해주듯, 영화 내내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 일본 나라 현의 아름다운 자연이다. 죽음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 품에 끌어안은 자연은 그 자체로 삶이고 죽음이다.

 
마코의 무덤가에 남은 한 그루 나무에 얼굴을 부비며, 아내의 품속을 파고들듯 흙 속에 몸을 누이는 시게키의 모습은 자연이 산 자의 영역과 죽은 자의 영역을 잇는 매개가 됨을 보여준다. 아내와 함께 자연의 품에 안긴 채 눈을 지그시 감은 시게키의 얼굴에는 이제 그도 아내를 떠나보낼 준비가 된 듯 평화로운 표정이 떠오른다.
 
“오랜 시간 동안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라는 그의 독백은 지난 33년간의 애도에 담긴 고통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참 길었던 ‘모가리’의 시간 끝에 함께한 시게키와 마치코는 서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화면 가득한 숲의 전경으로 시작해 우거진 나무들 한 구석에 무릎 꿇은 마치코와 흙을 베고 누운 시게키의 모습으로 영화를 끝맺는 카메라의 시선은 인간의 삶과 죽음마저 보듬는 자연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임을 말해 준다. 그 안에서 인간은 슬픔도, 고통도 내려놓은 채 떠나버린 소중한 사람들을 영원히 가슴에 묻는 ‘모가리’의 시간을 살아 낸다.
 
영화를 통한 ‘모가리’, 감독 가와세 나오미
 
<너를 보내는 숲>의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필모그래피는 감독 자신의 ‘모가리’의 기록이라 할만하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진 후 친척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가와세 나오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는 과정(따뜻한 포옹),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의 모습(달팽이: 나의 할머니)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의 영화인생을 시작했다.
 
최근작 <너를 보내는 숲> 역시 어머니이자 아버지,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던 할머니의 치매를 겪으며 탄생한 영화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이 요구한 ‘모가리’의 시간은 그녀에게서 몇 편의 영화들로 다시 태어났다.
 
떠나보내야 할 존재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 그녀만의 ‘모가리’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전국 <아트 플러스> 상영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을 추천하고 싶다.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 상영일정
대전아트시네마 5/8~5/13
시네마상상마당 5/15~ 5/21
광주극장 5/23~ 5/29
대구 동성아트홀 5/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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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4/28 [10:36]  최종편집: ⓒ 일다
 
bird 08/05/06 [22:41] 수정 삭제  
  이 영화, 한 번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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